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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두꺼비와 광양 매실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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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곽정식 수필가

곽정식 수필가

지난 주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발원해 광양만에 이르는 5백 리 길 섬진강을 둘러봤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차 있는 섬진강은 자잘한 민물조개인 제첩으로 유명하다. 이 제첩을 삶으면 희뿌연 국물이 나오는데 여기에 잘게 자른 부추를 넣어 마시면 간에도 좋다. 이날도 동행자들과 제첩 국물을 마시면서 섬진강을 따라 내려갔다.

동행한 분 중에 서재석 선생이 있었다. 그는 섬진강 상류에서 태어나 지금은 섬진강 하류에 사는데 섬진강(蟾津江)에 두꺼비 섬(蟾)자가 붙은 연유를 말했다. “고려 말 강 하구에 왜구가 침입하자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몰려와 울부짖자 왜구들이 소름이 끼쳐 혼비백산해 물러났답니다. 이 말을 들은 우왕(禑王)이 ‘섬진강(蟾津江)’이라는 이름을 내렸답니다.”

두꺼비가 보이는 ‘정중동’ 지혜
제대로 익어야 제맛 내는 매실
리더는 조직 방향 잘 잡아가야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두꺼비 설화를 들으면서 섬진강을 내려가는데 갓길에 주먹만 한 것들이 듬성듬성 눈에 띄었다. 차를 멈추고 자세히 보니까 두꺼비였다. 길을 건너려던 두꺼비들이 긴장했는지 꼼짝도 안 하고 이따금 눈만 껌벅였다.

두꺼비는 개구리보다 우리 눈에 덜 띄어도 개구리보다 더 친숙하다.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의 램프’가 아님에도 우리는 소원을 빌 때 곧잘 두꺼비를 찾고, 전기하고 하등 상관이 없지만 전기 분전함을 두꺼비집이라고 부르며, 술하고 관련이 없는데도 소주병에 두꺼비 상표를 붙이기 때문이리라. 이렇듯 두꺼비의 이미지는 긍정적이다.

그런 두꺼비를 이리저리 뜯어 봐도 생김새는 ‘어글리’하다. 짧은 목과 다리, 큰 머리통, 울퉁불퉁한 검은 돌기로 덮인 등 짝, 어기적거리는 모습, 길게 찢어진 주둥이에 이르기까지 두꺼비의 외관은 ‘비호감’이지만 살아가는 방식만큼은 지혜롭다.

두꺼비는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굴을 파고 들어가 여름잠을 자고, 겨울에는 추위를 피해 겨울잠을 잔다. 또 평소에도 불필요한 행동을 자제하며 에너지를 비축한다. 이런 식으로 몸을 잘 구완하는 두꺼비는 양서류 중 60년을 사는 도롱뇽에 이어 두 번째로 긴 30년을 산다.

그렇게 굼뜬 두꺼비지만 늘 ‘슬로우’ 모드는 아니다. 벌레나 곤충이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이를 삽시간에 먹어 치운다. 어리숙하게 보이는 두꺼비가 사냥에 성공하는 비결은 정중동(靜中動), 즉 고요함 속의 움직임에 있다. 먹이가 있는 방향을 파악하면 일단 정(靜)의 모드로 들어간다. 그러다가 먹이가 사정권에 들어오는 순간 동(動)의 모드로 급전환한 후 정확한 거리만큼 혀를 뻗어 먹이를 낚아챈다. ‘두꺼비 파리 채 먹듯이’라는 말도 이런 연유에서 나왔을 것이다.

섬진강의 모습. 고려 말 섬진강 하구에 침입했던 왜구들이 두꺼비가 우는 소리를 듣고 혼비백산하여 물러나 우왕(禑王)이 두꺼비 섬(蟾)자를 사용하여 '섬진강(蟾津江)'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한국관광공사

섬진강의 모습. 고려 말 섬진강 하구에 침입했던 왜구들이 두꺼비가 우는 소리를 듣고 혼비백산하여 물러나 우왕(禑王)이 두꺼비 섬(蟾)자를 사용하여 '섬진강(蟾津江)'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한국관광공사

두꺼비 이야기가 마무리될 무렵 우리 일행은 순천에 도착했다. 저녁 식사는 향토 음식이 나오는 식당을 찾았는데 반찬으로 매실 장아찌도 나왔다. 오랜 세월 이 식당에서 매실을 담갔다는 정영란 선생은 “매실은 광양 청매실을 쳐주는데 청매실은 수확 시기가 짧습니다. 6월 초에 수확한 것으로만 장아찌를 담급니다. 매실 장아찌는 수확하기 전 땅에 떨어진 것이나 늦게 딴 것으로 담그면 제맛이 나지 않아요.”

정 선생의 매실 이야기를 들은 후 직장생활을 오래 한 서 선생에게 어떤 분들과 근무할 때가 가장 좋았는지 물었다.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싱겁게 대답했다. “저는 과단(果斷)성이 있는 상사와 착실(着實)한 직원들과 근무할 때가 좋았습니다.”

언뜻 싱겁게 들리는 서 선생의 말에는 매실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매실이 제대로 익기 전까지는 나무에 제대로 붙어 있어야(着實) 하고, 익으면 떨어져야(果斷) 한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다. 직장상사는 착실해야 할 초년병의 과감한 말과 행동이 때로는 불편하겠지만, 직원들에게는 맺고 끊지 못하는 상사가 시시콜콜한 것까지 챙기는 게 괴로운 일이다. 『채근담(菜根潭)』이 소개하는 ‘응립여수 호행사병(鷹立如睡 虎行似病, 매는 평소 조는 듯이 앉아 있고, 호랑이는 병든 듯 걷는다)’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리더는 평소에 쓸데없이 힘 빼지 말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두꺼비는 단연 최고다. 정과 동의 의미를 잘 알아서다.

전남 광양 청매실농원의 알알이 영근 청매실. 중앙일보

전남 광양 청매실농원의 알알이 영근 청매실. 중앙일보

다음날 광양제철소를 근무하며 인상 깊은 사진들을 남긴 황일문 선생에게 그동안 찍은 사진 중에서 어느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었다. 그는 뜻밖의 답을 했다. “결연한 표정의 경영자가 지휘봉으로 뭔가를 가리키는 사진입니다. 경영자의 시선과 지휘봉의 방향이 일치된 사진이지요. 저희에겐 그 방향에 폴라리스, 바로 북극성이 있었습니다.”

방향이 정해진 조직에는 공감대가 쉽게 형성된다. 그런 조직의 구성원들에게는 모두 ‘한솥밥’을 먹는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컴퍼니(Company)’란 말의 어원도 라틴어의 ‘함께(com) 빵(panis)을 먹는다’에서 나왔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회사의 직원들에게 잔소리나 캠페인 따위는 필요 없다. 모두가 동고동락하며 정과 동의 의미를 깨우쳤기 때문이다.

곽정식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