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왕조 집성촌 있던 곳…봉화에 'K-베트남 밸리'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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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3일 경북 봉화군 충효당 일원 K-베트남 밸리 조성지를 방문해 충효당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3일 경북 봉화군 충효당 일원 K-베트남 밸리 조성지를 방문해 충효당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베트남에서 직선거리로 3000㎞ 이상 떨어진 한국의 작은 도시 경북 봉화군에 ‘베트남 마을’이 만들어진다. 이른바 ‘K-베트남 밸리’다. 지금까지 지자제 차원에서 추진되어온 이 사업은 앞으로 국가 차원의 문화교류협력 사업으로 규모를 키워갈 전망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13일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서 열린 ‘K-베트남 밸리 조성 사업 현장 간담회’에서 경북도가 추진 중인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유 장관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부호(Vu Ho) 주한베트남대사, 지역구 국회의원인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 베트남 리 왕조의 화산 이씨 후손 등이 참석했다.

“마을 스토리텔링으로 콘텐트 제작”

유 장관은 “화산 이씨의 뿌리가 있는 마을인 만큼 이곳이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친선 및 교류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라며 “마을에 얽힌 이야기를 잘 스토리텔링 해 영화나 드라마, 베트남과의 관계를 잘 나타낼 수 있는 여러 콘텐트로 재생산 해 두 나라 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경북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서 열린 ‘K-베트남 밸리 조성 사업 현장 간담회’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른쪽)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베트남 전통 모자 '논 라'를 쓰고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 경북도

지난 13일 경북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서 열린 ‘K-베트남 밸리 조성 사업 현장 간담회’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른쪽)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베트남 전통 모자 '논 라'를 쓰고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 경북도

유 장관이 이날 봉화에 방문한 것은 지자체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베트남 마을 조성 사업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경북도의 건의가 받아들여진 결과다. 앞서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한-베 수교 이후 30여년간 동반성장 중인 베트남과의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K-베트남 밸리 조성 사업을 ‘국가 대 국가 문화교류 협력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정부와 베트남 측에 건의했다.

인구 3만 명 남짓한 소도시에 베트남 마을을 만들기로 한 이유는 뭘까. 경북 봉화군과 베트남의 관계를 찾기 위해선 12세기 베트남 역사부터 살펴봐야 한다. 베트남 국명이 대월(大越)이었던 시기에 제6대 황제 영종의 7남 이용상(1174~?·李龍祥·베트남어로 리롱떵)이 태어났다. 베트남 최초의 통일왕조이자 장기집권 왕조인 리(Ly) 왕조(1009~1225)가 쇠퇴의 길을 걷던 시기였다.

1220년대 베트남 왕족 봉화에 정착  

이용상의 조카인 혜종이 제8대 황제에 오른 뒤인 1210년, 왕조의 외척이었던 진수도(1194~1264·陳守度)가 국정을 위임받아 운영하게 됐다. 이는 리 왕조 몰락의 시작이었다. 진수도는 혜종의 딸을 임금에 앉힌 뒤 자신의 조카와 결혼시키고 왕위를 남편에게 넘기도록 하는 방식으로 역성혁명을 일으켰다. 왕조가 이씨에서 진씨로 넘어가자 대규모 살육이 이뤄지고, 이씨 가문의 후손들은 대부분 멸족을 당했다.

이용상은 숙청에서 가까스로 도망칠 수 있었다. 당시 대월을 떠난 이용상은 1126년 지금의 황해도 옹진군 화산포에 이르렀다. 베트남 왕자가 표류해 왔다는 소식을 들은 고려 조정에선 크게 환영하며 그가 고려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화산 이씨(花山 李氏) 성씨도 조정이 하사했다. 화산 이씨 시조가 된 이용상의 둘째 아들인 이일청이 안동부사로 부임하면서 후손들은 이후 안동과 봉화 일원에서 세거지(世居地·동족 부락)를 이루고 살았다.

화산이씨 시조 이용상이 베트남(대월)에서 고려로 이동한 경로. 자료 박순교 3사관학교 교수

화산이씨 시조 이용상이 베트남(대월)에서 고려로 이동한 경로. 자료 박순교 3사관학교 교수

한편 봉화군 봉성면에는 이용상의 13세손인 이장발(1574~92)의 충효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충효당이 있다. 이장발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9세의 어린 나이로 전장에 달려가 문경새재에서 혈전 끝에 생을 달리한 인물이다.

지자체→국가 차원 사업 덩치 커져

애초 봉화군은 충효당 일대 3만8350㎡ 규모 부지에 베트남 마을을 조성하려고 했다. 베트남 전통 마을과 리 왕조 유적지 재현 공간, 연수·숙박시설 등을 조성해 충효당을 관광 명소화하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베트남 마을 조성 사업이 국가 간 문화교류협력 사업으로 확대되면서 사업 규모 역시 더 커질 전망이다. 경북도는 내년 핵심 사업으로 ▶유적지 인근 창평저수지를 활용한 이색관광 활성화와 상업 특화 거리 조성을 위한 관광 개발사업, ▶봉화 화산이씨 문화원형을 활용한 역사 문화 콘텐트 개발과 디지털 복원 사업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지난 13일 경북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서 열린 ‘K-베트남 밸리 조성 사업 현장 간담회’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경북도

지난 13일 경북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서 열린 ‘K-베트남 밸리 조성 사업 현장 간담회’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경북도

이 지사는 “K-베트남 밸리는 양국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문화교류 협력의 거점”이라며 “경북에서 시작한 국가 차원의 문화 콘텐트를 확대해 지방소멸과 저출산에 대응하고 미래 이주 사회 공존을 실현할 수 있는 선도모델로 만들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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