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헛발질은 할 만큼 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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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4호 30면

정영재 문화스포츠에디터

정영재 문화스포츠에디터

내가 축구선수 김도훈을 처음 본 건 1999년 3월 28일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다. 그날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브라질과 대한민국 대표팀이 평가전을 벌였다. 축구담당 기자로 처음 A매치를 취재한 그날은 바람이 강하게 불고 몹시 추웠던 기억이 난다.

호나우두·히바우두·카푸 등 당대 최고 선수들이 출전한 브라질을 맞아 한국은 용감하게 싸웠다. 0-0 무승부가 예상되던 후반 추가시간, 이기형의 스루패스를 받은 김도훈이 수비 두 명 사이에서 슬라이딩하며 터닝슛을 날렸다. 공은 그물을 흔들었고, 아시아 국가 최초로 축구제국 브라질을 꺾는 역사가 이루어졌다.

축구대표 ‘임시감독 시리즈’ 종료
소통·원칙 겸비한 적임자 뽑아야

경남 통영 출신인 김도훈은 울산 학성고-연세대를 거치며 당대 최고 골잡이로 성장했다. K리그에서 두 차례 득점왕에 올랐고, 257경기에서 114골을 터뜨렸다. 경기당 득점(0.44골)은 통산 득점 1위 이동국(경기당 0.42골)보다 앞선 국내 선수 1위다.

김도훈은 A매치 72경기에서 30골을 넣었지만 월드컵과는 인연이 멀었다. 히딩크 감독이 이끈 2002 월드컵에서는 황선홍·최용수·안정환에 밀려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했다.

감독으로서도 그리 잘 풀리진 않았다. K리그 울산 현대를 맡았던 2020년에는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고도 국내 리그 우승을 놓쳤다는 이유로 재계약에 실패하며 물러나야 했다.

김 감독은 평소에는 온화하지만 경기장에서는 ‘욱’ 하는 기질이 있다. 이를 상징하는 게 ‘시계 풀기’다. 2019년 8월 K리그 경기 중 심판 판정에 항의하면서 시계를 풀어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중징계를 받았다. 싱가포르 라이언시티를 맡고 있던 2022년 7월에도 상대 팀 코치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시계를 풀었다가 경질됐다.

김 감독은 축구사에 유례를 찾기 어려운 ‘국가대표팀 땜방 감독 시리즈’의 두 번째 주연을 맡았다. 지난 3월 황선홍 임시감독에 이어 6월 A매치 2경기(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를 지휘했다. 다행히 두 임시감독이 3승1무(황선홍 1승1무, 김도훈 2승)를 거두며 한국은 사실상 최종 예선인 3차 예선(9월 5일 시작)에 진출했다.

정식 감독을 선임할 시간이 많지 않다. 대한축구협회는 어설픈 협상력으로 유력 후보 제시 마쉬(캐나다 대표팀 부임), 헤수스 카사스(이라크 대표팀 잔류) 등을 놓쳤다. 외국인만 찾던 축구협회의 스탠스도 슬며시 바뀌었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은 “(국내파든 해외파든) 모두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대표선수들은 외국인 감독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훈련 프로그램이나 팀 운영 방식이 확실히 다르다”는 게 공통된 목소리라고 한다. 반면 선수들이 외국인 감독의 ‘상대적으로 느슨한’ 팀 운영에 익숙해졌다는 얘기도 있다. 대표팀 사정에 밝은 한 축구인은 “2018년부터 5년간 대표팀을 맡았던 벤투 감독은 선수 구성을 거의 바꾸지 않았고, ‘단골 대표선수’들이 끼리끼리 파벌을 지었다. 클린스만도 이런 분위기를 방치하는 바람에 ‘손흥민-이강인 탁구장 사태’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중국전(1-0 승) 이틀 뒤인 13일에 김도훈 감독과 어렵게 통화가 됐다. 그는 “잠깐이지만 함께 생활해 보니 우리 선수들이 정말 프로페셔널이었다. 선수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합리적인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원칙과 질서를 세워 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꿩 잡는 게 매’다. 국내파든 외국인이든 3차 예선 조 2위 안에 들어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달성하면 된다. 헛발질은 할 만큼 했다. 전력강화위원회가 냉정하고 객관적인 기준과 절차에 따라 적임자를 뽑아야 할 때다. 단, 이 과정에서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빠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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