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우리 곁에서 사라진 것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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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4호 31면

죽물 시장, 전남 담양, 1978년 ⓒ김녕만

죽물 시장, 전남 담양, 1978년 ⓒ김녕만

담양 죽물(竹物) 시장에는 말이 많았다. 담양 천변에는 자동차가 주차하듯 짐을 내린 말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곤 했다. 방금 도착한 마차에서도 짐을 부리는 중이다. 도대체 마차 한 대에 이 많은 채반을 어떻게 다 실었을까? 장날 이른 새벽에 집채만 한 죽물을 지고 오는 모습에 호랑이도 무서워 도망친다는 말이 실감 난다. 부피에 비해 가벼우니 지게에 잔뜩 쌓으면 집 한 채가 걸어오는 것처럼 보였을 법하다. 지게든 마차든 호랑이가 겁먹을 정도로 엄청나게 싣고 다닌 것은 겁나게 수요가 많았다는 뜻이다.

죽물 시장의 전성기였던 1960년대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전국의 장꾼들이 담양 오일장으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대나무로 만든 소쿠리와 채반, 바구니는 가볍고 깨지지 않고 크기도 다양해서 각 가정에서 아주 요긴한 생활용품이었다. 봄에는 소쿠리 들고 봄나물 캐러 가고 여름에는 쥐나 벌레를 피해 보리밥을 소쿠리에 담아 공중에 매달았다. 가을에는 김장 배추를 씻어 커다란 채반과 소쿠리에 받혀 물기를 뺐고 명절에는 전을 부쳐 대나무 채반에 펼쳐놓았다. 대나무의 차가운 성질은 음식물을 덜 상하게 했다. 그러나 플라스틱 용기가 등장하면서 점차 대나무 제품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냉장고의 등장이 더 결정타였는지 모른다. 대나무의 찬 기운에 의지할 필요가 없어진 데다 냉장고 저장 용기로서도 적합하지 못했다.

지금도 담양에 가면 곳곳에 대밭이 싱그럽다. 대나무는 백 년에 한 번 꽃이 핀다는데 우리가 좀처럼 대나무꽃을 보기 어려운 것은 대나무가 백 년을 살기 전에 꺾이거나 베어져서일까, 아니면 우리 역시 백 년을 살아내지 못하고 사라지기 때문일까. 놋쇠 방울 딸랑거리고 말발굽 소리 딸각거리며 시골길을 달리던 마차도 사라지고, 대나무 용품들은 관광상품 정도로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소유하고 있음에도 사라진 것들은 늘 아쉽고 그립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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