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원곤의 퍼스펙티브

혈맹이라고? ‘편의’ 따라 오락가락하는 북·중 관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이상징후 포착된 북·중 관계 분석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지난 11일 중앙일보가 1면에 게재한 사진과 관련 보도는 최근 북·중 관계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중국이 지난 2018년 5월 중국 다롄(大連)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함께 산책하며 친교를 나눈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했던 ‘발자국 동판’을 제거했다는 내용이다. 2018년 3월 김 위원장은 집권 후 처음으로 베이징을 찾아 시 주석을 만났다. 이어 두 달 뒤 다롄에서 성사된 두 사람 간 2차 정상회담은 소원했던 북·중 관계가 정상화됐다는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중국이 두 사람의 발자국을 새긴 동판을 제거한 건 일종의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북한과 중국은 1958년 2월 ‘북·중 수뇌 방문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고, 양국 관계를 최고지도자 간 회담으로 결정토록 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북한과 관련된 문제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최고지도자의 ‘소관 사항’으로 다룬다. 발자국 동판을 시진핑 주석의 재가 없이 함부로 제거할 수 없다는 의미다.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갈등
필요할 땐 양국 모두 혈맹 강조
중국 “신냉전 모든 시도 반대”
북, 러와 밀착해 대립구도 추구

북한의 자주노선은 중국 의식한 결정

리훙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 부위원장이 지난해 7월 방북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시진핑 주석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김 위원장 왼쪽은 러시아 대표단. [연합뉴스]

리훙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 부위원장이 지난해 7월 방북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시진핑 주석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김 위원장 왼쪽은 러시아 대표단. [연합뉴스]

북한과 중국은 서로를 피를 나눈 혈맹, 전쟁을 같이 수행하는 한 참모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의 순망치한(脣亡齒寒)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이런 선전과 달리 실체는 다르다. 6·25전쟁을 포함한 북·중 관계 연구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중국 동방사범대 평생 교수인 션즈화(沈志華)는 북·중이 결코 혈맹이 아닌 ‘동상이몽’ 관계임을 강조한다(“동상이몽: 한국전쟁 시기 중국과 북한의 동맹관계” 2023). 션 교수는 “중국이 한국 전쟁에 참전해 북한을 구하긴 했지만, 김일성 주석은 중국에 대해 엄청난 불만과 의혹을 가지게 되었고, 전쟁이 끝나자 양국 관계는 경색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김일성이 한국 전쟁 이후 중국군의 북한 주둔을 자신의 정권에 위협적인 요소라고 인식하고 철수를 종용했다는 게 대표적인 예다. 중국이 당시 중국 출신 연안파와 결탁해 김일성 권력에 도전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김일성이 중국을 믿지 못할 상대로 인식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56년 8월 종파 사건이다. ‘8월 종파 사건’은 김일성이 1956년 6월 동유럽 순방길에 나서 두 달 가까이 북한을 비웠는데 이때 중국의 지원을 받는 연안파 등이 공모해 그해 8월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일성과 당 지도부를 ‘공격’한 사건이다. 김일성은 사전에 이런 모의를 파악하고, 조기에 귀국해 반격하면서 관련자 모두를 당에서 축출하는 데 성공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권력을 다졌다. 그러나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은 김일성에 대한 연안파의 비판을 “대단히 옳은 일”이라 평가했고, 중국으로 도피한 4명을 사면·복권토록 북한에 압력을 가했다. 전후 복구를 중국에 의지하고 있었던 김일성은 결국 한 달 만에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다시 열어 이들의 징계를 철회하고 복권시켰다. 1963년 보드나라스 루마니아 대사를 만난 김일성은 당시 경험을 “조선로동당에 대한 모욕”이라며 중국 간섭에 대한 강한 불만과 반감을 표출한 바 있다. 이 영향으로 김일성은 1957년 12월 당 전원회의에서 “외부영향력을 벗어나 당의 독자노선을 추구할 것”을 공포하고, 대외관계에서 자주노선을 추구하기도 했다.

김정은, “러, 북한의 대외관계 제1순위”

2018년 5월 8일 중국을 방문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다롄 방추이다오 해변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던 모습.

2018년 5월 8일 중국을 방문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다롄 방추이다오 해변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던 모습.

중국에 대한 불신은 김정은 시기에도 발견된다. 첫 단추부터 어긋났다. 시 주석은 2012년 11월 공산당 총서기 취임 2주 뒤 당 정치국 위원인 리젠궈(李建國)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 격) 상무위 부위원장(부총리급)을 대북 특사로 파견해 김정은을 면담케 했다. 대표단 일원으로 공산당 대외연락부의 왕자루이(王家瑞) 부장도 대표단에 포함됐는데, 당시 김정은을 초청하는 시진핑의 초청장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특사가 귀환한 바로 다음 날 김정은은 장거리로켓 은하 3호 재발사를 예고함으로써 중국의 ‘호의’를 무시했다. 이에 대해 시진핑이 대로했다는 이야기가 당시 베이징에서 회자됐다. 당시 중국은 미국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한 핵과 장거리 로켓 발사에 반대하고 있었다. 그 결과 중국은 2013년 3월 7일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2094호에 찬성한다.

2017년에는 중국의 환구시보와 북한의 조선중앙통신 등 양국의 관영 매체 간에 공개 비난전을 펼치기도 했다. 중국이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찬성하자 2017년 5월 3일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배신과 반복으로 전략적 이익을 해치는 나라는 중국”이라고 중국을 공개 비판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다음 날 “북·중 간 이견은 공개논쟁을 통해 해결될 수 없다”는 경고를 환구시보에 실었다. 이러한 북·중 간 공개 논박은 이후 해당 매체에서 삭제되긴 했지만 양국관계의 ‘본질’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김정은 시대에도 북·중이 친밀한 적이 있긴 하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발표하면서 소원했던 북·중 관계는 급변했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에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찾았다. 미국이라는 ‘적성국’을 상대로 제재 해제를 받아 내려는 북한은 자신들을 지원해줄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고, 중국은 미·북 밀착이 자국의 동북아 전략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작동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북·중 양국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며 정상회담이 이뤄진 것이다.

좁히기 어려운 북·중의 이해관계

2022년에는 두 정상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혀 있던 산책로 동판이 자취를 감췄고(사진 왼쪽), 최근에는 검은 색 아스콘이 덮여 있다. [신화=연합뉴스, 대북 소식통]

2022년에는 두 정상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혀 있던 산책로 동판이 자취를 감췄고(사진 왼쪽), 최근에는 검은 색 아스콘이 덮여 있다. [신화=연합뉴스, 대북 소식통]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2023년 9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에서 공개된 모두 발언은 이런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김정은은 “조·로(북·러) 관계를 우리(북) 대외 정책에서 제1순으로, 제일 최중대시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중국이 북한의 대외 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뒷순위로 밀린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올해는 북한이 중국·러시아와 각각 수교한 지 75주년이 되는 해다. 금명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방북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반면, 2018년 ‘수시로’ 만났던 시진핑과 김정은의 정상회담은 기미조차 없다. 지난 4월 자오러지(趙樂際) 중국 인민대표자대회 상무위원장이 방북했지만 북·중 정상회담을 대신한 체면치레 수준이다. 지난해 북한 외무상으로 임명된 최선희는 지난 1월 러시아를 찾아 푸틴 대통령을 만나고 북·러 외교장관 회담을 했다. 그러나 아직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장과는 대면조차 못 했다.

북·중이 혈맹이라고는 하지만 국제문제를 바라보는 세계관은 확실한 간극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은 2022년 12월 당 중앙위 8기 6차 전원회의에서 “국제관계 구도가 신랭전 체계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된다”고 판단했다.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 진영을 구축해 외교고립에서 탈피하고, 지원을 획득하려 한다. 그러나 중국은 신냉전 진영 주의에 분명히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한·미·일 3각 협력이 더욱 공고한 관계를 꾸리는 것과 달리 북·중·러 협력에 중국이 선뜻 나서지 않는 이유다. 2023년 8월 21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회의를 비판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신냉전을 일으키려는 모든 시도에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진영대결을 추구하지 말 것”도 요구했다. 지난 3월 서울에서 열린 비공개 국제회의에 참석한 중국 관계자는 “중국은 한·미·일 대 북·중·러 진영화에 반대한다. 중국은 북·중·러 삼각관계가 아닌 북·중과 북·러 양자 관계를 중시한다”고 귀띔했다. 미국과 전략 경쟁이 심화할수록 유럽 국가와의 관계가 중요한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의기투합한 북·러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더불어 중국은 북한이 원하는 북·중·러 구도가 한·미·일 협력 강화에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중국은 기존 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미국을 넘어선 혹은 대등한 최강대국으로 등극을 원하지만, 북한은 러시아와 함께 현 질서를 거칠게 파괴하고 부인한다.

결국 북·중 관계는 가치를 공유하지 않고 단기적 편익에 따랐다는 게 역사적 경험이다. 중국이 추구하는 자유무역, 열린 다자주의, 핵확산 금지, 주권 존중과 같은 핵심이익은 오히려 한국의 그것과 같다. 한국은 능동적인 대중 관계 개선으로 북·중의 피상적 결속을 막고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향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