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아이, 4달째 검사도 못받아”…92개 환자단체 ‘휴진 철회’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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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이는 시술이나 치료는커녕, 그 앞 단계에 불과한 조직검사도 못하고 있습니다. 전공의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저희 아이는 영영 조직 검사를 못하게 되는 걸까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한국PROS환자단체 서이슬 대표의 말이다. 서 대표를 비롯해 환자 및 보호자 50여명은 이날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 92개 환자단체가 공동 개최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들은 18일로 예고된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전면 휴진과 17일부터 시작되는 서울대 의대 교수들의 무기한 휴진 결의가 “절망적인 소식”이라며 철회해줄 것을 촉구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중증아토피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등 환자 단체 회원들이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의료계 집단휴진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중증아토피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등 환자 단체 회원들이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의료계 집단휴진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 대표의 아이가 앓는 ‘PROS(PIK3CA 연관 과성장 증후군)’는 10만명 중 1명꼴로 발생한다고 알려진 희귀질환이다. 완치법이 없고, 써볼 수 있는 약도 아직 임상시험 단계에 있는 약물뿐이라고 한다. 서 대표는 “약물 사용을 시도해볼 수 있는 병원은 국내 단 한곳뿐”이라며 “그 전에 조직검사를 시행해야 하는데, 검사 일정이 4월에서 5월로, 다시 8월로 밀렸다. 조직검사가 그동안 전공의가 맡아온 영역이어서 그렇다고 한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저희 아이는 매일 출혈이 생기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원인 불명의 감염에 시달리며, 남들과 다르게 생긴 발과 다리 때문에 매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내야 한다”며 “당장 죽고사는 문제가 걸린 분들이 있는데, 희소질환자의 삶의 질 문제나 임상약물 접근권 같은 문제는 감히 어디 가서 ‘피해’라고도 말하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이 상황이 얼마나 괴롭고 참담한 일인지 아셨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중증아토피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등 환자 단체 회원들이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의료계 집단휴진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중증아토피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등 환자 단체 회원들이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의료계 집단휴진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회견에 참여한 환자들은 특히 의대 교수들의 휴진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진미향 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대표는 “그동안 현장을 지키며 탈진해 가는 좋은 의사들이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었기에, 환자들은 그분들을 생각하며 말을 아꼈다”며 “그런 환자들에게 이번 서울대병원 비대위의 전면 휴진 발표는 크나큰 상처를 줬다. 이제 우리는 ‘좋은 의사’는커녕, 그냥 의사조차도 볼 수 없을지 모른다. 그야말로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최승란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부회장은 “서울대병원 비대위는 대국민 입장문에서 ‘정부의 무도한 처사가 취소될 때까지 진료를 미뤄주길 부탁한다’고 썼는데, 이것이 환자들에게 부탁이랍시고 할 수 있는 말이냐”며 “부탁은 제자이자 후배인 전공의들에게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싸우더라도 현장에서 싸워야 한다고, 환자에겐 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중증아토피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등 환자 단체 회원들이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의료계 집단휴진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중증아토피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등 환자 단체 회원들이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의료계 집단휴진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환자단체들은 정부와 국회를 향해서는 의사 집단행동으로 인한 의료공백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화 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위태로운 법적 지위 하에 일하고 있는 진료지원(PA) 인력을 합법화하자”면서 “집단행동 시에도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는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관련 입법을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한국유방암환우 총연합회는 기자회견 후 의협과 서울대 의대교수 비대위를 직접 방문해 휴진 철회 호소문을 전달하기도 했다. 연합회는 호소문에서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애써주신 것에 무한한 감사를 느끼지만, 현재의 상황에 대해 묵과할 수 없다”며 “병원에 복귀해 고통 속에 절망하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적었다.

곽점순 연합회 대표는 “저는 2002년 수술받고 ‘내가 살면 다른 환자들을 위해 죽을 때까지 봉사하겠다’는 다짐 하나로 이 자리까지 왔고 지금도 사비를 들여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며 “그런데 의료진은 환자들이 고객이자 (병원이) 자기 직장인데, 환자들을 팽개쳤다. 환자들이 치료를 못 받아 불안에 떨고 있는데, 의료진은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인가”라고 목소리 높였다. 또 “종합병원이 휴진하면 (공백을) 다 국민 세금으로 보충해야 하는데, 왜 환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에 세금을 투입해야 되느냐”며 전공의 복귀를 촉구했다.

“‘죄송하다’로 우리 애 못 살려”…“휴진 현실화 않도록 설득”

환자단체들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간담회도 가졌다. 간담회 참석자 중 ‘코넬리아드랑게 증후군’이라는 희귀질환을 앓는 아이를 입양한 김정애씨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를 질타했다. 김씨는 “개혁을 하려면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고, 우리 아들딸들이 아무 탈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셔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에 정부도 원망했다”며 “정부도, 의사도 ‘죄송하다’고 하는데 그 ‘죄송’ 자가 우리 애들을 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정부는 의대 교수들과 개원의들의 집단휴진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의료계를 설득할 것”이라며 “강경한 소수는 집단 휴진을 거론하고 있지만, 침묵하는 다수는 환자 곁을 지켜주실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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