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진중권 칼럼

대표 결사옹위 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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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진중권 광운대 교수

진중권 광운대 교수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법정에서 9년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그에게 중형을 선고하며 판사는 그를 이렇게 꾸짖었다. “수사기관에서 법정에 이르기까지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비합리적인 변명으로 일관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원래 이는 그의 뜻이 아니었다. 처음에 그는 사실을 고백하고 재판에 협조함으로써 형량을 줄이는 합리적 선택을 했었다. 부인이 법정에서 난리를 치며 변호인을 해고했을 때에도 여전히 자신이 선임한 변호인에 대한 신뢰를 표명한 바 있다. 그랬던 그가 부인의 등쌀에 시달린 후 자신의 검찰 진술을 번복했다. 부인이 남편에게 사법적 자해를 강요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솔직히 소름이 쫙 끼쳤다. 아무리 정치에 환장해도 그렇지, 어떻게 당 대표를 구하려 제 남편을 희생시키나?

이재명 지키려 진술 번복한 이화영
당대표 위해 사법적 자해 저지른 셈
민주당은 대표 일인의 정당 돼버려
방탄 입법에 국가시스템까지 위협

이상한 재판이다. 변호인들 역시 피고인 이화영이 아니라 그 재판에 기소되지도 않은 이재명을 변호했다. 왜 그럴까? 이화영 측 김현철 변호사의 말이다. “이화영에 유죄가 선고된다면 이재명의 유죄를 추정하는 재판문서로 작용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게 이화영 재판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대표는 향후 대선에 출마할 것으로 예견된다. 유죄를 판결할 경우 공범으로 기재된 이재명의 유죄를 설시하려는 이유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 변호인들의 관심은 의뢰인이 아닌 이재명에 가 있다.

‘이화영이 유죄면 이재명도 유죄다.’ 이는 이화영 변호인 측도 인정한다. 그런데 법원에서 이화영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이 대표 역시 법정에서 무죄를 받기 어려워졌다는 얘기. 그렇다면 남은 것은 재판을 법정 밖으로 가져 나가는 것뿐.

민주당에선 대표 한 사람에 맞추어 당권 대권 분리를 명시한 당헌 25조에 예외규정을 첨가했다. ‘중대한 사유가 있을 경우.’ 뭐가 중대한 사유인지는 누가 규정하나? 당무회의에서 결정한다. 근데 그 당무회의의 장이 바로 이 대표다. ‘기소 시 직무정지’ 내용을 담은 당헌 80조는 아예 삭제했다. 이번 판결로 다시 기소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번 기소는 사실상 법원에서 결정한 것이다. 그러니 지난번처럼 예외규정을 이용해 ‘검찰의 정치적 기소’라는 변명으로 피해 가기도 뭐하잖은가.

한때의 자유주의 정당이 이렇게 대표 일인의 정당이 되었다. 대표를 결사옹위하리라, 개딸 백만이 총폭탄 되리라, 이재명 대표 목숨으로 사수하리라. 특히 이화영 재판은 ‘자폭용사가 되자’는, 어느 전체주의 국가의 섬뜩한 구호를 연상시킨다.

문제는 이 불순한 움직임이 그 당만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까지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기소검사 탄핵으로 수사를 방해하고, 그걸로도 모자랐던지 아예 ‘법왜곡죄’를 만든단다. 이 대표에게 유죄를 선고하면 판사까지 처벌하겠다는 겁박이다.

이 모든 광기에 나름 합리성이 있다면, 어차피 그들에게는 이재명의 대통령 당선이 이 모든 리스크의 종합적 해법이라는 것이다. 지금 재판을 받는 측근들은 중형을 피하지 못할 터, 대통령이 된 그의 사면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의 사법 리스크 역시 차례로 대통령이 되어 서로 사면해주면 풀릴 일. 그러니 이 대표를 대선에 출마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그게 이 대표가 사는 길이요, 또한 당이 사는 길이 아닌가.

이 야무진 꿈이 실현되려면 재판을 질질 끌거나, 아니면 대선을 앞당겨야 한다. 그래서 증거 부동의하고 수백의 증인을 신청하는 식으로 재판을 지연시키는 한편, 대선을 앞당기기 위해 국회에서 온갖 특검법을 남발하는 것이다. 물론 특검을 통해 대통령 탄핵으로 갈 사유와 명분을 쌓고, 대통령이 특검법을 거부하면 그 또한 ‘탄핵사유’로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달콤한(?) 회유도 있다. 대통령 스스로 ‘임기단축 개헌’으로 업적을 남기고 명예롭게 물러나라는 것이다.

똥줄이 타는 것은 이해 못 할 일이 아니나, 인생 잘못 살아 개인적 실존의 위기에 처한 범죄 혐의자들의 허황한 꿈이 우리가 어렵게 발전시켜 온 민주주의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다수당이 대표 일인의 사당이 되면 국회 자체가 그 당 대표의 사유물이 되기 마련. 지금 국회에서 얘기되는 법들을 보라. 10여 개에 이르는 특검법에 판사선출제, 법왜곡죄 등. 이게 대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국회가 ‘국민을 위한 입법’이 아니라 ‘대표 일인을 위한 입법’을 하는 곳으로 전락한 것이다. 민주당에선 법사위, 운영위, 과방위는 물론이고, 여차하면 18개 상임위 모두 가져갈 태세다. 그게 다 당 대표의 방탄을 위한 포석이다.

유권무죄 무권유죄. 권력을 가진 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처벌을 피하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잡아야 한다.’ 한 개인의 인생 철학이 벌써 이 사회의 시대정신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