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정민의 퍼스펙티브

“선거 판도 바꾸는 바람이 아니라 온도를 보여주는 온도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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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정민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조사인으로 살다 간 ‘박무익 평전’을 통해 본 여론조사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 땅에서 여론조사는 한국갤럽, 정확하게는 박무익(전 한국갤럽 회장)으로부터 비롯됐다. 여론조사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반세기 전 그는 “여론조사가 민주주의 발전의 뿌리”라는 신념으로 조사업에 투신했다. 오늘날 여론조사는 공기처럼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됐지만, 50년 전인 1974년 박 전 회장이 문을 연 조사회사는 “일거리가 없어 공치는 날이 많았던” 영세 벤처였다.

좋은 대학(서울대 철학과) 나와 좋은 직장(LG전자 전신인 금성사, 제일기획)에 다니던 잘나가던 엘리트 박무익, 그는 왜 탄탄대로를 마다하고 “회사 운영비는커녕 건물 관리비·생활비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전 직원 나정애) 험로에 뛰어들어 고난을 자초했을까. 여론조사 무용론이 나올 만큼 불신과 논란이 커지고 있는 현실은 거꾸로 이런 물음을 갖게 한다. 조사업체의 난립과 여론조사 흉내만 낸 날림 조사로 혼탁해진 풍토가 ‘조사인’으로 살다 간 박무익의 인생 여정을 되짚어보게 했다.

정치에 여론조사 기법 도입 효시
당락보다 예측 오차 줄이기 고심
중립성·객관성 이유로 투표 안 해
“언론도 조사품질 구분 역량 필요”

마침 한국갤럽 창립 50주년을 맞아 『박무익 평전-한국 여론조사의 대부』(저자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가 출간됐다. 과학적 여론조사를 통한 민주 사회 발전을 꿈꿨던 박무익과 함께 시간여행을 떠나 보자.

인생을 바꿔놓은 조지 갤럽

고(故) 박무익 전 회장은 ‘일류 리서처의 요건’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꼽았다. 보통사람들의 생각과 대화를 엿듣는 게 좋다며 주로 버스·택시를 이용했다. [사진 한국갤럽]

고(故) 박무익 전 회장은 ‘일류 리서처의 요건’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꼽았다. 보통사람들의 생각과 대화를 엿듣는 게 좋다며 주로 버스·택시를 이용했다. [사진 한국갤럽]

창업 4년 차이던 1977년, 박무익은 조지 갤럽 박사의 책 번역(『갤럽의 여론조사』)을 계기로 정치 여론조사에 눈뜬다. 민주주의 암흑기, 갤럽 박사가 던진 “한국에서도 정치 여론조사가 가능한 풍토인가?”라는 질문이 가슴속에 묻어뒀던 잠재 본능을 일깨웠는지 모르겠다.

여론조사의 창시자 격인 갤럽 박사는 공화당(앨프리드 랜던)의 우세를 점치던 미 대선(1936년)에서 민주당(프랭클린 루스벨트) 승리 예측을 적중시키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전문가다. 갤럽 박사와의 인연으로 박 전 회장은 갤럽 인터내셔널에 가입, 회사 이름을 KSP에서 한국갤럽조사연구소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갤럽 인터내셔널의 회원이 됐다는 건 여론조사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췄다는 의미다. ①정부·정치권·언론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고 ②공정한 표본 추출과 응답자 보호 등 윤리를 준수해야 하며 ③국민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조작을 해선 안 되며, 조사의 기본 자료를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평생 고수했다.

박 전 회장은 조사인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1987년 이래 투표를 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조사 비용을 깎거나 정부의 최저가 입찰 제안에 응하지 않은 건, 비용을 줄이면 신뢰하기 어려운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적중한 첫 대선 예측 조사

한국갤럽이 정치사에 등장한 건 1노(노태우)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경쟁했던 13대 대선(1987년)이다. 군중 집회 참석 인원수를 놓고 판세를 점치던 때, 박 전 회장은 대선 예측 결과 발표라는 도박을 벌였다. “노태우 후보 34.4%, 김영삼 후보 28.7%, 김대중 후보 28.0%, 김종필 후보가 8.4%를 득표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2%포인트입니다.”

예측은 적중했다. 정치에 여론조사를 도입하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그가 ‘여론조사의 대부’로 불리는 이유다.

여론조사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당시 야권에선 양김 단일화 실패로 55.1%(김영삼+김대중)를 득표하고도 정권을 놓치자 컴퓨터 부정선거 주장이 봇물 터지듯 했다. 분신과 장외 투쟁이 이어졌고, 국회 국정조사까지 했지만 의심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러자 한국갤럽이 선거기간 동안 진행해 온 비공개 데이터를 공개했고, 야권은 더는 부정선거 주장을 하지 못했다. “여론조사는 과학적인 절차에 따라 인간 집단의 생각을 측정해 양적으로 보여주는 유일한 도구”임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부정선거 시비가 더 큰 비극으로 확산하는 걸 막고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문화가 생긴 건 여론조사 덕분이었다.

김대중 축하 난의 리본을 떼다

15대 대선에서 한국갤럽은 김대중 후보 당선을 예측,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김대중·이회창 후보 간 격차가 1.6%포인트에 불과했던 당시 대선은 경쟁 조사업체들이 모두 예측 발표를 포기했을 정도로 초박빙이었다. 하지만 한국갤럽은 예측 조사(김대중 39.9%, 이회창 38.9%) 발표를 강행했다. 박 전 회장에게 ‘1%의 승부사’란 별칭이 붙은 건 이때부터다.

일화가 있다. 김대중 당선자가 한국갤럽에 축하 난을 보내왔는데, 박 전 회장은 직원에게 ‘김대중’ 이름이 적힌 리본을 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철저히 중립적이어야 할 조사회사에 특정 정치인, 특히 대통령 당선인의 이름이 전시되는 게 옳지 않다”고 판단해서다. 여론조사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매주 금요일 갤럽 주간 리포트

박 전 회장이 늘 승승장구한 건 아니다. 2000년 16대 총선과 2002년 대선 예측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치명상을 입었다. 2002년 노무현·이회창 후보 대결에선 선거 전날 밤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지지 철회의 영향을 과대평가한 탓에, 16대 총선 땐 완전하지 못한 출구조사 시스템을 과신하는 바람에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2010년대 들어 조사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무분별한 조사가 남발되면서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혼돈기에 접어들었다. 박 전 회장은 선거 때만 하는 조사가 아니라 매일 조사해 여론의 흐름을 측정하자며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시스템(2012년)을 만들었다. 한해 수억원의 생돈이 드는 일이지만 “당락을 맞히는 것보다 예측의 오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강행했다. 매주 금요일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 ▶정당 지지도 등을 담은 한국갤럽의 주간 리포트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박 전 회장은 평소 “여론조사는 선거의 판도를 바꾸는 바람이 아니라 조사 시점의 온도를 보여주는 온도계”라고 말하곤 했다. 동시에 ▶변동성이 높은 출구조사에 매달리는 조사업계 ▶신뢰성이 의심스러운 ARS 조사를 무분별하게 인용 보도하는 언론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를 인기 영합쯤으로 치부하는 정권의 태도에 실망했다. 2017년 작고하기 두 달 전 병상에서 구술로 집필한 회고록 『조사인으로 살다』를 남겼다. 냉소의 대상이 된 여론조사의 혼탁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곳곳에 녹아 있다.

의뢰자 의도에 맞춘 설문 설계가 문제

김동률

김동률

기자 출신 언론학자이자, 박 전 회장의 마지막을 지키고 평전을 쓴 김동률 교수에게 물었다.

부인 나초란 여사가 “지하에 계신 박 회장이 땅을 치고 한탄할 일”이라고 했을 정도로 여론조사가 불신받고 있다.
“여론조사가 불신받는 건 정치적·정파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행해지는 가짜 여론조사가 판치고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사가 정치적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사용되면 객관성·공정성을 잃고 합당한 성과를 얻을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생기나.
“제대로 된 여론조사를 할 수 있는 조사업체가 적은 탓이다. 동일 시점에 진행된 조사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건 조사 방법(전화 면접 vs ARS) 외에도 질문의 문구, 배열 순서, 조사원의 숙련도, 데이터 처리의 완벽성 등 조사 품질에 차이를 가져오는 여러 요인 때문이다. 같은 회사에서 한 조사도 책임자의 경험·능력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제대로 된 조사를 하려면 인적·물적 인프라를 갖춘 일정 규모 이상의 업체가 필요하다.”
영세 업체의 난립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해법은 쉽지 않다. 특히 의뢰자의 의도에 맞춘 조사 설계가 문제다. 객관성·공정성을 상실한 질문, 미숙련 조사원, 조사 결과를 제대로 해석할 능력과 경험 부족 등 여러 요인 중 하나라도 발생한다면 제대로 된 결과를 얻는 게 불가능하다. 보통 사람들은 이 과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긴 하지만, 소비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의뢰자는 조사 결과로 여론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진정한 여론을 파악하는 걸 우선시해야 한다. 언론의 책임도 크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라, 완성도 낮은 문제투성이 조사 결과도 그냥 가져다 쓴다. 언론도 조사의 품질을 구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 중구난방식 정제되지 않은 조사 결과 보도를 지양해야 한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여론 측정이 수월해졌는데도 공정성 시비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조사 방식은 가구 방문 면접→집 전화→휴대폰 조사로 바뀌고 있다. 다음 대선에선 휴대전화 100%가 아닌 다른 도구를 통한 조사가 혼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정성 논란은 여론 측정 도구의 문제가 아니다. 불순한 의도를 갖고 조사를 진행하려는 의뢰인의 영향이라고 봐야 한다. 특히 정치 집단이 단독으로 진행한 조사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조사업체도 의도성 있는 요구는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박 전 회장과 오래 교류했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한 시대를 앞서 살다 간 사람이다. 사람들은 ‘괴짜’라고 수군댔지만, 그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시대, 군부 독재의 압력 속에서도 공정하고 정확한 여론조사를 위해 생의 모든 걸 바쳤다. ‘여론조사는 자유민주주의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신념으로 외로운 조사인의 삶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