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勇而無禮則亂(용이무례직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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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공자는 예(禮)와 악(樂)으로 교화함으로써 누구나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공손할 뿐 예를 모르면 수고롭고, 삼갈 뿐 예를 모르면 두려우며, 용감할 뿐 예를 저버리면 난동이 되고, 정직하되 예를 모르면 성급해진다”는 말도 예의 효용과 실천 방법을 명확히 밝힌 공자의 명언이다. 예를 모르면 바짝 긴장하여 필요 이상으로 공대하고, 조심하느라 수고롭고 두렵기까지 하며, 예를 모르는 용감함은 난동이 되고, 정직을 말한다는 이유로 예를 무시하면 성미 급한 소인배가 되고 만다는 게 공자의 생각이었다.

勇: 용감할 용, 禮: 예절 예, 亂: 어지러울 란. 용감할 뿐, 예의가 없으면 난동이다. 26x67㎝.

勇: 용감할 용, 禮: 예절 예, 亂: 어지러울 란. 용감할 뿐, 예의가 없으면 난동이다. 26x67㎝.

예는 사람을 억지로 통제하기 위해 누군가가 갑자기 제정한 것이 아니다. 인류가 서로 존중하며 사는 데 있어 가장 편하다고 여긴 방식들이 역사 속에서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예는 본래 편한 것일 뿐, 결코 수고롭거나 두려운 게 아니다. 예는 배를 자유자재로 떠가게 하는 물과 같다. 예를 모르는 사람은 맨땅에서 배를 끄는 것만큼이나 삶이 힘들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함께 추구할 가치로서의 예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삶은 ‘각자도생’의 난투극이라는 인식이 암암리에 만연하고 있다. 예를 무시한 채 용감하게 싸우기만 하는 어지러운 정치가 우리를 이처럼 사납게 한 게 아닐까.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