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기 뜨거워도, 식어도 달러는 '스마일'…원화값 하락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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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화는 미국 경기가 뜨거우면 뜨거운 대로, 차갑게 식으면 식는 대로 가치가 오르는 경향이 있다. 현재는 미국 경기가 순항하는 만큼 ‘킹(king) 달러’의 위세가 거침없다. 한국은 미국 경기가 ‘적당히 따뜻한’ 상태로 접어들기만 기다리는 모양새다.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리는 건 현재로썬 선택지 밖이다. 달러 당 원화값이 1400원대를 넘을까 우려해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최근 외환시장에서는 이른바 ‘달러 스마일(Dollar smile)’ 이론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 경제가 호황과 불황 양극단일 때 달러가 강세를 띈다는 이론이다. 미국 경제가 좋으면 미국 달러는 당연히 비싸진다. 미국 경제가 나쁘면 세계 경기 침체 우려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몰리면서 달러의 몸값이 오른다. 경기가 좋으나 나쁘나 세계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와 국채에 대한 수요가 늘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경기 침체를 우려할 경우 해당 국가의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경향과 다른 움직임이다.

스마일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그래프의 가로축을 경기 상황, 세로축을 달러 가치로 뒀을 때 가로축 끝단으로 갈수록 달러 가치가 올라가는 모양이 웃는 모습과 닮아서다. 모건스탠리의 경제 분석가였던 스티븐 젠(Stephen Jen)이 주장한 이론이다.

달러 스마일 이론에 따르면 미국 경제가 그래프 중간(적당한 연착륙)에 접어들어야 킹 달러 기세가 수그러든다. 다시 말해 ①미국에서 경기 침체 신호가 나타나고 ②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내렸을 때 ③경기가 크게 둔화하지 않는 ‘절묘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외부 변수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끝날 경우에도 달러 선호가 줄어들 수 있다. 킹 달러의 시대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의 배경이다.

하지만 달러만 웃을 뿐 다른 국가 통화는 웃지 못할 상황이다. 통화가치 하락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이 약 2년 만에 기준금리를 기존 4.5%에서 4.25%로 0.25%포인트 내렸다. 경기 침체를 더 심각한 문제로 판단해서다. 블룸버그는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급격한 인플레이션 억제라는 하나의 과제를 위해 단합했던 코로나19 사태 직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현재는 국내 문제와 지역 성장 동력이 우선순위를 차지하게 됐고 미국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Fed보다 10개월 앞서 기준 금리를 올린 한국은 여전히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신중하다. 기획재정부 외환 당국 관계자는 “한국이 미국보다 선제적으로 피벗 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환율이 위험 수위를 넘길 거란 우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고환율(자국 통화 약세)은 무역 수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한국은 최종 소비재인 자동차를 제외한 주력 수출품 대부분(반도체·철강·석유화학)이 중간재라 고환율을 상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어려운 수출 구조다. 고환율로 수입품 가격이 오를 경우 가까스로 다잡은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들 가능성이 있다. 먼저 피벗 할 경우 부작용만 더 클 수 있다는 얘기다.

한미 기준금리 추이(0523)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은행, 미국연방준비제도]

한미 기준금리 추이(0523)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은행, 미국연방준비제도]

원-달러 환율 1300원이 ‘뉴노멀(새로운 표준)’인 상황에서 외환당국이 지켜내려는 마지노선은 환율 1400원이다. 지난 4월 장중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서자 외환당국이 개입해 환율 방어에 나선 전례도 있다. 환율이 1400원을 넘겼던 건 1997년(외환위기), 2008년(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레고랜드 사태+미국 금리 인상) 정도다. 국내 혹은 글로벌 경기가 매우 좋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난달 16일 달러당 1351원까지 올랐던(환율은 하락) 원화가치는 다시 내림세를 타더니 12일1376원대에서 거래됐다. 정부 우려가 무색하게도 하반기 환율 1400원대를 위협할 변수가 도처에 있다. 외환 전문가들은 중동 전쟁 확전 여부, 11월 미국 대선,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의 약진에 주목한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금리 인하 연기는 이미 상수가 됐다”며 “환율이 1400원대로 진입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전망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도 “현재도 미·중 공급망 갈등의 골이 깊은 데다 ‘두 개의 전쟁’을 치르는 등 경제를 둘러싼 리스크가 크다”며 “한국은행이 선제적으로 피벗할 입지가 더 좁아졌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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