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에 47조원? "예산 착시효과…직접 연관 과제에는 절반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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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저출산 대응을 위해 정부가 예산 47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정작 직접 연관된 핵심 사업에는 절반만 쓰여 예산 재분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11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공동으로 연 ‘저출생 예산 재구조화 필요성 및 개선 방향’ 세미나에서 KDI는 자체 계량 분석을 통해 2023년 저출생 대응 예산사업을 재구조화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142개 과제에 쏟은 전체 예산 47조원 중 저출생 대응과 직결되는 핵심 과제 84개에는 23조5000억원이 쓰였다. 국제비교 기준으로 통용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족 지출에 포함되지 않는 주거 지원 예산이 전체의 45.4%(21조4000억원)을 차지했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장. 연합뉴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장. 연합뉴스

핵심 과제만 놓고 보면 양육 분야에 87%(20조5000억원)의 예산이 집중됐다. KDI는 “저출생 대응에 효과가 크고 정책 수요자의 요구가 높은 일·가정 양립에 대한 지원은 8.5%(2조원)에 불과하다”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대책과 직접 관련이 없거나 효과가 낮은 사업들이 포함돼 예산 착시효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정책 수요자 관점에서 예산을 다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석철 서울대 교수는 “경제 규모와 초저출생의 시급성과 예산 제약 등을 감안할 때, 저출생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인식되는 일·가정 양립 지원에 보다 많은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벤처기업 공동 직장어린이집 모습. 뉴스1

서울 구로구-벤처기업 공동 직장어린이집 모습. 뉴스1

이영숙 보건사회연구원 센터장은 “다양한 분야의 범부처 사업을 취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업기획부터 성과제고 및 재정운용까지 사업운용 전반을 책임지는 중앙정부 차원의 거버넌스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앙과 지자체 사업 간도 상호 보완되는 방향으로 개선해 효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철희 서울대 인구클러스터장은 “재구조화를 하면서도 미혼자나 자영업자 등 정책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 설계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는 “정책설계·집행 과정에서 정책 수요자 관점을 반영하고 만족도를 주기적으로 조사해 정책에 반영하는 정책 환류시스템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가장 많은 예산이 집중되어 있는 양육·돌봄 분야부터 심층평가를 진행하고 향후 여타 사업으로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조동철 KDI 원장은 환영사에서 “백화점식으로 나열되어 온 예산을 효율적으로 재구조화 할 필요가 있다”라며 “저출생 대응과 직결되는 과제를 중심으로 재편하고, 심층적인 사업 평가를 통해 정책 효과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저출생 대책과 직접 관련이 없거나 효과가 미흡한 과제는 과감히 도려내고, 효과 있는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라고 했다. 효과성이 없는 사업을 구조조정하고, 정책 사각지대 분야에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주 위원장은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의 3대 핵심 분야에 주력할 것”이라며 “사업설계는 적절한지, 전달체계는 합리적인지, 유사·중복사업은 없는지, 정책수요자의 만족도는 어떠한지 등을 심층 평가한 뒤 지속적으로 구조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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