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대북 확성기 일단 멈춤…“북한이 수위 낮추자 숨 고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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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군인들이 이동식 확성기로 추정되는 차량 인근에서 작업하고 있다. [뉴시스]

10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군인들이 이동식 확성기로 추정되는 차량 인근에서 작업하고 있다. [뉴시스]

북한의 ‘오물풍선’ 도발 등에 비례적·단계적 대응 원칙을 정한 정부가 10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하지 않았다. 북한이 지난 9~10일에도 풍선을 살포하기는 했지만, 풍선의 내용물이나 북한의 공식 입장 등에서 미묘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비례성의 원칙을 ‘강 대 강’으로만 표출하는 게 아니라 태도 변화의 여지가 보일 때는 절제해 대응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군 당국에 따르면 이날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지 않는다면 실시하지 않는 쪽으로 오후쯤 가닥이 잡혔다. 이날 방송을 송출하지 않게 된 데는 사태가 악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분위기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처음 오물풍선 살포 때처럼 의도적이고 고의적인 피해 유발에 집중하지는 않는 기류가 읽히는 만큼 북한의 태도를 좀 더 지켜본 뒤 추후 행동에 나서도 늦지 않다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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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관계자는 “절제된 대응으로 북한에 신호를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봤다”며 “강 대 강 대치가 북한의 행보를 오히려 더 주목받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고 말했다.

북한이 오물풍선 도발을 계속하면서도 미묘하게나마 수위를 조절한다는 관측도 있다. 북한이 지난 8~9일(3차)과 9~10일(4차)에 살포한 오물풍선에는 폐지와 비닐 등이 실린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지난달 28~29일(1차)과 이달 1~2일(2차) 오물풍선엔 혐오감을 자극하는 담배꽁초나 거름이 담겼다. 당시에는 건전지로 작동하는 타이머까지 부착해 피해를 키우려 했다.

지난 9일 인천시 강화군 화점면에서 발견된 오물풍선 잔해가 불에 타고 있는 모습. [사진 인천소방본부]

지난 9일 인천시 강화군 화점면에서 발견된 오물풍선 잔해가 불에 타고 있는 모습. [사진 인천소방본부]

풍선 개수도 1·2차 살포 때 모두 약 1000개에서 3차 330여 개, 4차 310여 개로 줄었다. 이를 놓고 정부가 내세운 비례성의 원칙을 북한 역시 의식하고 있는것 아니냐는 추론도 나온다.

전날 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에서도 이 같은 기류가 읽힌다. “우리는 빈 휴지장들만 살포했을 뿐 그 어떤 정치적 성격의 선동 내용을 들이민 것이 없다” “우리 대응은 정당하고도 매우 낮은 단계의 반사적인 반응에 불과하다” “우리 대응 행동은 9일 중으로 종료될 계획이었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등 구구절절 추가 풍선 살포의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새로운 대응을 경고하면서도 “만약 한국이 국경 너머로 삐라(대북전단) 살포 행위와 확성기 방송 도발을 병행해 나선다면”이라고 조건을 걸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전 김여정 담화와 비교해도 표현이 정제되고 수위가 낮아진 듯하다”고 평가했다.

군 당국은 대북 확성기가 여전히 유효한 대응 카드라는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현재 방송을 잠시 멈췄지만, 북한의 도발이 이뤄지면 주저 없이 재개한다”고 말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 지도부의 피로도를 높이는 ‘소진 전략’에 대북 확성기가 활용될 수 있다는 식으로 우리의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실효적 카드인 확성기를 가동한 만큼 압박 자체가 아니라 북한을 견인하는 목표에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정한 비례성의 원칙을 유지해 북한 역시 예측 가능한 선에서 행동하도록 최대한 유인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긴장도가 어느 정도 낮아지면 북한이 원한다면 언제든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다시 발신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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