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음료" 이 위스키 너무 사랑한 가수, 무덤에도 함께 했다 [비크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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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멘터리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와 로고로 구성된 어떤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각인되기까지, 브랜드는 치열하게 ‘자기다움’을 직조합니다. 덕분에 브랜드는 선택하는 것만으로 취향이나 개성을 표현하고, 욕망을 반영하며, 가치관을 담을 수 있는 기호가 됐죠. 비크닉이 오늘날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를 탐구합니다. 남다른 브랜드의 흥미로운 디테일을 들여다보고, 그 설레는 여정을 기록합니다.

그 위스키는, 그냥 웃음이 나왔다. 햇살에 말린 것처럼 꾸덕꾸덕한 복숭아 향, 면보에 방울져 떨어지는 꿀처럼 향긋한 단맛, 코끝을 툭 치는 것 같은 레몬향과 높은 삼나무 아래에 선 것처럼 푸르고 서늘한 나무 향…(중략).

지난해 출간된 이혁진의 소설 『광인』의 한 대목이에요. 작품은 음악하는 남자와 위스키 만드는 여자, 그리고 사랑이 광기로 변하는 또 다른 남자를 그립니다. 모티브가 되는 음악과 위스키의 설명이 하도 세세해서 ‘위스키 영업작’ 이라는 리뷰가 있을 정도입니다.

얼마 전 비크닉에서는 젊은 층에 사랑받는 위스키의 변신과 그 배경에 대해 소개를 했는데요(2월 3일 "이 조합 미쳤네" 햄버거에 위스키 인기…쉑쉑도 뛰어든 이유), 위스키의 매력을 조금 맛봤다면 여느 주류와는 좀 다른 특징이 있다는 걸 알게될 겁니다. 바로 앞서 소설처럼, 음악과 아주 밀접한 술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홍대 앞·서촌 등지에 늘어나는 위스키 바에서 음악 매니어의 상징이라는 LP를 취급하는 곳이 속속 눈에 띕니다. 또 SNS에선 특정 위스키에 맞춰 음악을 ‘페어링’하는 추천 리스트가 회자되기도 합니다. 따져 보면 지금까지 위스키를 노래 제목이나 가사에 대놓고 쓴 곡이 한둘 아닙니다. 박자와 선율이 만드는 희로애락의 감정선과 위스키 한 잔에 담긴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풍미가 어쩌면 서로 닮아 있어서 아닐까요.

오늘 비크닉에서는 과시나 유행을 넘어, 음악으로 즐기는 위스키를 다뤄봅니다. ‘뮤지션의 술’이라 불리며 머틀리 크루, 레드 제플린, 건즈 앤 로지스 등 내로라 하는 록 밴드가 사랑했던 바로 '잭 다니엘스'의 이야기를 통해 그 남다름을 소개합니다.

노예로부터 배운 주조법으로 탄생

검정 라벨에 사각 술병.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봤을 위스키 ‘잭 다니엘스’의 상징입니다. 잭 다니엘스는 창립자 재스퍼 뉴튼 잭 다니엘(Jasper Newton Jack Daniel, 1846~1911)의 인생이 깊숙이 녹아들어 있는 프리미엄 아메리칸 테네시 위스키예요.

잭 다니엘(중앙 흰 모자 착용자)과 나단 니어리스트 그린의 아들 조지 그린의 모습. [사진 잭 다니엘스]

잭 다니엘(중앙 흰 모자 착용자)과 나단 니어리스트 그린의 아들 조지 그린의 모습. [사진 잭 다니엘스]

창립자 잭 다니엘은 1864년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목사 겸 농부였던 후견인 댄 콜의 집에서 위스키 제조법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댄 콜은 농장에서 재배한 곡물 중 남은 것으로 위스키를 만들었는데, 당시 노예였던 서아프리카 출신 나단 니어리스트 그린으로부터 아프리카에서 사용했던 주조법을 전수받았어요. 이후 성인이 된 잭은 독립해 위스키 판매상으로 성공하죠.

1865년 노예제가 폐지되면서 잭은 댄 콜의 증류소를 아예 인수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잭 다니엘 증류소를 설립해요. 그리고 니어리스트 그린을 증류소의 위스키 제조의 모든 것을 총괄하는 첫 번째 마스터 디스틸러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866년, 니어리스트 그린과 잭 다니엘이 함께 만든 ‘잭 다니엘스(Jack Daniel’s)’가 세상에 공개됐어요. 160년에 달하는 위스키의 역사가 시작된 겁니다.

잭은 자신의 위스키를 기존의 술과 차별화했어요. ‘아메리칸 테네시 위스키’라는 걸 내세웠습니다. 버번 위스키의 원재료를 동일하게 사용하지만, 미국 테네시 주에서 생산되고 오크통 숙성 전 단풍나무로 만든 숯으로 여과 과정을 거친다는 특징이 있죠. 잭 다니엘스는 여기에 더해 테네시주의 1등급 옥수수와 연중 13.5도의 수온을 유지하는 맑고 미네랄이 풍부한 케이브 스프링 홀로(Cave Spring Hollow)의 샘물을 사용해요.

차콜 멜로잉 과정.. [사진 잭 다니엘스]

차콜 멜로잉 과정.. [사진 잭 다니엘스]

품질도 까다롭게 관리했어요. 1880년대부터 이미 높은 인기를 얻었지만, 아무리 위스키가 잘 팔려도 하루에 300갤런(약 1140ℓ) 이상은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어요. 특히 위스키 원액의 오크통 숙성 전 사탕단풍나무로 만든 숯에 3~5일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여과시키는 차콜 멜로잉 공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부드러운 질감과 스모키한 풍미가 살아납니다.

록스타들이 사랑한 위스키

잭 다니엘은 마케팅 능력도 천부적이었다고 평가받습니다. 1892년, 그는 10인조 관악 밴드 ‘실버 코넷’을 직접 결성해 홍보에 나서요. 어릴 때부터 워낙 음악을 좋아했으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요. 그는 음악이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음악이 필요한 장소를 어디든 다녔죠. 거리에서 즉석 콘서트를 열거나 술집의 개업식을 찾아 자신의 위스키를 알렸던 거죠.
지금 같은 사각 병이 나온 것도 음악과 관련이 있답니다. 밴드가 이동하거나 공연장 백스테이지에서 원형 술병이 굴러다니는 걸 방지하기 위해 형태를 바꿨는데 이게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잭 다니엘스만의 시그너처가 됐어요.

창립자 잭 다니엘의 음악에 대한 사랑을 기린 한정판 에디션. 왼쪽부터 잭 다니엘스 실버 코넷 리미티드 에디션, 잭 다니엘스 폴라 쉐어 뮤직 리미티드 에디션. [사진 잭 다니엘스]

창립자 잭 다니엘의 음악에 대한 사랑을 기린 한정판 에디션. 왼쪽부터 잭 다니엘스 실버 코넷 리미티드 에디션, 잭 다니엘스 폴라 쉐어 뮤직 리미티드 에디션. [사진 잭 다니엘스]

이후 뮤지션들은 잭 다니엘스와 관련된 수많은 에피소드를 남깁니다. 커트 코베인은 녹음실에 잭다니엘이 꼭 있어야 했고, 롤링 스톤즈는 공연 무대에 아예 들고 나왔죠. AC/DC의 보컬이었던 본 스콧은 공연 주최 측에 전달할 필요 물품 리스트에 ‘잭 다니엘만 있으면 뭐든 상관없다’고 적을 정도였다네요.
아예 ‘잭 다니엘스의 비공식 영업 사원’으로 불렸던 뮤지션도 있었습니다.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에요. 그는 1947년 어느 바에서 우연히 잭 다니엘스를 마시게 된 뒤 바로 매료되어 이를 ‘신의 음료’라고 추앙하며, 지인들에게도 항상 잭 다니엘스를 권했어요. 심지어 사후 묘지에 잭 다니엘스와 함께 묻힐 정도로 정말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후에 브랜드는 그를 기리는 스페셜 에디션 ‘잭 다니엘 시나트라 셀렉트’를 출시하기도 했어요.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가 대기실에서 잭 다니엘스를 병째 입에 털어 넣고 있는 모습. 이 사진은 이후 포스터, 티셔츠 등으로도 재가공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진 잭 다니엘스]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가 대기실에서 잭 다니엘스를 병째 입에 털어 넣고 있는 모습. 이 사진은 이후 포스터, 티셔츠 등으로도 재가공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진 잭 다니엘스]

많은 뮤지션들이 이토록 잭 다니엘스를 사랑했던 이유는 2020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체이싱 위스키(Chasing Whisky)’를 보면 조금 짐작이 갑니다. 브랜드의 문화와 역사를 소개한 영상인데요, 이들에게 잭 다니엘스는 그저 위스키 한 모금이 아닌, 시대를 초월한 남성성의 상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위스키, 음악과 함께 하면 더 좋아진다

브랜드 시작부터 함께한 음악은 이제 잭 다니엘스의 정체성 중 하나가 됐어요. 마케팅 측면에서도 음악은 늘 중요한 테마가 되고 있죠.
최근에는 ‘언플러그 위드 잭(Unplug with Jack)’이라는 새로운 캠페인을 선보이며 음악과 위스키가 주는 ‘위로’를 소개해요. 반복되는 일상과 사회적 부담감에서 벗어나, 음악과 위스키로 여유를 되찾고, 이를 원동력 삼아 꿈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자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답니다.

DPR 이안이 함께한 잭 다니엘스 언플러그드 위드 잭 캠페인. [사진 잭 다니엘스]

DPR 이안이 함께한 잭 다니엘스 언플러그드 위드 잭 캠페인. [사진 잭 다니엘스]

캠페인은 아시아 프로젝트로, 가수 겸 비주얼 디렉터인 DPR 이안이 한국 모델로 선정됐어요. 문화 트렌드를 이끌고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DPR 이안의 창의적이고 대담한 행보가 이번 캠페인의 주제와 잘 어울리다는 이유입니다.

음악과 관련된 새로운 시도는 이뿐 아니에요. 잭 다니엘스는 위스키의 맛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음악을 만들어 공개했어요. ‘느낌적 느낌’이 아닌 과학적 근거가 있는 작업이랍니다. 브랜드는 옥스퍼드대 찰스 스펜서 심리학과 교수와 함께 ‘맛과 소리 사이의 상관관계’를 오랜 기간 연구했죠. 그 결과 위스키의 캐러멜·오크·스파이시한 맛과 향이 운율감 있는 피아노와 낮은 음역의 첼로, 빠른 템포의 바이올린 선율과 완벽히 페어링 된다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잭 다니엘스는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잭 다니엘스 본디드 위스키’의 맛을 돋우는 곡을 지어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사운드 클라우드에 공개했답니다.

이쯤 되면 위스키와 음악의 공존이 특별하지 않나요. 물론 여기에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이겠죠. 음악이 끌어올리는 위스키의 향과 풍미, 어떤 맛일지 한번 상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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