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 찾는 中청년 잡아라…’북·상·광·심’ 대신 뜬 ‘빅8’는 어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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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11일 중국 서부 대도시 충칭에서 열린 잡페어에 몰린 인파.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 6월 16~24세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치인 21.3%를 기록하자 수치 발표를 중단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4월 11일 중국 서부 대도시 충칭에서 열린 잡페어에 몰린 인파.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 6월 16~24세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치인 21.3%를 기록하자 수치 발표를 중단했다. AFP=연합뉴스

중국 기술직 근로자 궁정화는 최근 쓰촨성 청두시로 이주했다. 지난 몇 년간 상하이와 광저우에서 높은 임금을 받으며 생활했지만 몸값을 낮춰 지금의 보금자리로 옮긴 걸 훌륭한 선택으로 여기고 있다. 전보다 3배 더 큰 아파트에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집을 마련하고 결혼도 하고 싶었지만 '1급 도시'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 따르면 중국에선 궁 같은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중국에선 수도 베이징(北京), 금융허브 상하이(上海), 수출 선두자 광저우(廣州), IT 중심지 선전(深圳) 등 ‘북·상·광·심(北上廣深)’으로 불리는 4대 도시, 이른바 ‘1급 도시’가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부유하게 생활하기 위해서 이들 도시로 사람이 몰렸다. 상하이의 경우 인구가 260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도시가 성장하면서 주택 가격은 오르고 삶은 팍팍해졌다. 1급 도시들의 주택 평균 가격은 평균 소득보다 30~40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동안 일하는 이른바 ‘996 문화’도 1급 도시들이 가진 부정적 요소다.

2024년 업무를 시작한 2일 상하이 증권거래소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해외 및 중국 금융기관이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을 4%초반에서 5%까지로 전망한 가운데 한국은행베이징사무소가 4일 4%중반 수준의 성장률 전망 보고서를 발표했다. EPA=연합뉴스

2024년 업무를 시작한 2일 상하이 증권거래소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해외 및 중국 금융기관이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을 4%초반에서 5%까지로 전망한 가운데 한국은행베이징사무소가 4일 4%중반 수준의 성장률 전망 보고서를 발표했다. EPA=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청년들이 ‘워라밸’을 찾기 위해 ‘새로운 1급’ 혹은 ‘1.5급 도시’로 불리는 8개의 도시로 떠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른바 ‘빅8’ 도시는 크게 세 곳으로 나뉜다. 시안(西安), 청두(成都), 충칭(重慶)을 중심으로 한 서쪽엔 청년 기술직과 인플루언서들이 모이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전기차 제조업체들은 우한(武漢), 허페이(合肥), 창사(長沙) 등 대륙 중심에 둥지를 틀고 청년들을 손짓하고 있다. 장강 삼각주(長三角)의 난징(南京), 항저우(杭州)는 벤처캐피탈 기업과 스타트업을 끌어모으고 있다.

인구성장률을 보면 이들 8개 도시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중국 전체 인구는 감소세를 보이지만 지난 4년 동안 ‘빅8’ 도시의 인구는 평균 18% 늘어났다. 1급 도시의 인구가 1.7% 성장에 그친 것과는 대조적이다. 중국 내에선 큰 규모의 도시로 꼽히진 않지만 이들 8개 도시 역시 평균적으로 인구가 1천만 명에 달할 만큼 거대하다.

이들 도시가 제공하는 인센티브 역시 청년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후난성 창사시는 지난 3월 많게는 150만 위안(우리 돈 약 2억 8000만 원)을 내걸고 인재 모집에 나섰다. 성과급을 제외한 금액이다. 저장성 항저우시도 지난해 박사 학위 소지자를 대상으로 과학기술 인재 채용 대회를 열고 우승 상금으로 최대 1500만 위안을 내걸었다.

지난 3월 찾아간 안후이성 허페이시의 폭스바겐 안후이 전기차 생산 라인의 기계가 전기차를 조립하고 있다. 신경진 특파원.

지난 3월 찾아간 안후이성 허페이시의 폭스바겐 안후이 전기차 생산 라인의 기계가 전기차를 조립하고 있다. 신경진 특파원.

이러한 노력 등을 바탕으로 빅8 도시는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6% 성장했다. 이들 경제 규모를 다 합하면 중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0% 수준이다. 이들은 각자 만의 방식으로 성장 동력을 만들고 있다. 안후이성 허페이시는 전기차, 생명 공학, 반도체 등 첨단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지난해 전기차 생산량은 74만6000대로, 독일 폭스바겐도 진출해 있다. 중국의 '칼텍'(Caltech)으로 불리는 허페이 중국과학기술대학(USTC)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도시 봉쇄로 어려움을 겪었던 후베이성 우한시는 이제 자율주행의 메카로 변신했다. 지난 2년 동안 자율주행 개방도로를 공격적으로 늘렸다. 이미 설치된 도로가 3378km로 서울과 부산을 여덟 차례나 오갈 수 있는 거리다. 운전자가 없는 ‘완전 무인택시’가 도시 곳곳에 돌아다닌다. 지난해 우한 내 로보택시 탑승 건수는 73만 건이 넘는다. 2019년 자율주행 시범단지로 지정된 우한시가 자율주행 테스트 차량 번호판을 약 2000개 발급했기 때문이다.

쓰촨성 청두시는 서비스업에 초점을 맞췄다. 청두 전체 GDP 가운데 서비스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국 평균(55%)을 훌쩍 뛰어넘는 68%이다. 정부 지원과 더불어 중국 내 힙합 음악이 인기를 끌면서 청두의 음악 산업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여기에 청두는 먹고 마시고 춤추는 ‘흥 있는’ 도시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관광객과 인플루언서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모건스탠디의 로빈 싱 중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도시들이 어떻게 균형 잡힌 경제를 구축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평가했다.

'왕훙의 도시'로 알려진 중국 쓰촨성 청두시 한 길거리에서 남성들이 댄스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샤오훙슈 캡처.

'왕훙의 도시'로 알려진 중국 쓰촨성 청두시 한 길거리에서 남성들이 댄스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샤오훙슈 캡처.

이코노미스트는 빅8 도시가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톈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도 베이징 인근 항구 도시인 톈진은 성장 과정 속 부패 스캔들로 금융과 첨단 기술 분야에 자금을 낭비했다. 게다가 인건비가 상승해 제조업의 이점도 사라졌다. 그 결과 지난 2017년 GDP 기준 도시 규모 6위에 올랐던 톈진은 현재 11위로 떨어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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