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광역캠퍼스 5개, 지역사업과 우주항공 연계로 특성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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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3호 14면

[대학의 미래, 총장에게 묻다]  정성택 전남대 총장

정성택 전남대학교 총장이 지난 4일 전남대 광주캠퍼스 총장실에서 대학의 미래 비전 등과 관련해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상문 기자

정성택 전남대학교 총장이 지난 4일 전남대 광주캠퍼스 총장실에서 대학의 미래 비전 등과 관련해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상문 기자

“전남대학교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매 시대에 걸맞은 뚜렷한 지식의 흔적을 남겨 왔다.”

지난 5일 광주캠퍼스에서 열린 개교 72주년 기념식에서 정성택(63) 전남대 총장은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정 총장은 “1000년을 이어온 학문 공동체인 대학은 시대 상황과 사회적 요구에 따라 인류 역사의 진보를 이끌었다”며 “시대마다 대학의 역할은 달라졌지만 지식을 추구하는 방식이 능동적이고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전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전남대는 오는 9월엔 글로컬미래전략대학원을 개설할 예정이다. 기후·환경 등 글로컬 위기 상황을 극복할 미래전략전문가 양성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초광역캠퍼스 5개를 지역별 산업과 연계해 특성화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광주·여수·화순캠퍼스는 각각 인공지능(AI)·에너지·바이오 등으로 특화하고 고흥·나주에는 우주항공과 미래 농업과 연계한 캠퍼스를 신설하는 등 메가 캠퍼스를 조성할 방침이다.

전남대는 현재 64개국 608개 대학 48개 연구 기관과 협정을 맺고 있다. 나아가 외국인 유학생 3000명을 유치하고 이들에게 도심 내 빈집을 리모델링해 제공하는 등 새로운 정주 여건을 조성하는 ‘레지던스 3000’ 프로젝트도 구체화하고 있다. 지난 4일 정 총장을 만나 전남대의 새로운 비전과 시대정신을 들어봤다. 인터뷰 진행은 정철근 중앙일보S 대표가 맡았다.

9월 글로컬미래전략대학원 개설 준비

전남대 공대 학생들이 연구실에서 실습하고 있다. [사진 전남대]

전남대 공대 학생들이 연구실에서 실습하고 있다. [사진 전남대]

시대마다 전남대의 역할은 어떻게 변했나.
“올해는 개교 72주년인 동시에 창학 115주년이기도 하다. 전남대는 광주농림학교(1909)를 전신으로 목포상업학교(1920), 광주의학전문학교(1944), 사립 대성대학(1948) 등이 지역 인재 육성이란 공동의 목표를 위해 1952년 통합하면서 탄생했다. 2006년엔 여수공립간이수산학교(1917)에 뿌리를 둔 여수대와도 통합했다. 전남대의 역사가 곧 시대정신에 따른 융합과 공생의 역사인 셈이다.”
이제 대학은 변화를 넘어 위기를 논하는 분위기다.
“갈수록 ‘지식의 반감기’가 줄면서 기존 지식의 유효기간이 단축되고 있다. 이 때문에 한정된 인지 능력을 가진 인간은 그 변화를 따라잡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다. 더 이상 지식 전달형 교육만으로는 대학의 존재 가치가 떨어지게 됐다. 기업이 교육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도 대학의 존립을 어렵게 만들었다. IBM은 뉴칼라 노동계급 육성을 위해 전 세계에 200여 개의 P-테크 학교를 개설했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는 물론 삼성전자·LG전자·포스텍 등 우리 기업도 자체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등 대학 고유의 교육 기능을 대신하겠다는 기업이 적잖다.”
전남대 로봇연구소에서 연구원이 마이크로 의료 로봇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전남대]

전남대 로봇연구소에서 연구원이 마이크로 의료 로봇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전남대]

그는 “미국 중소기업의 70% 이상이 4년제 대학 졸업자보다 4년 이상 업계 경력자를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며 “대학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이 같은 흐름은 우리 사회에도 확산되는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대학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대학의 교시인 ‘진리·창조·봉사’가 곧 대학의 사명이자 존재의 본질이다. 진리는 인간이 다루는 모든 지식의 총합체이고, 진리를 추구해 새로운 시대 가치를 창출하는 게 대학의 역할이다. 또 기술이 발전할수록 전인교육의 필요성도 커지는데, 특정 산업의 지식이 이를 대체하긴 불가능하다.”

정 총장은 그러면서 “우리나라 교육은 현재 인문계와 이공계라는 이분법적인 공식에 매몰돼 있는데 학문으로 진리를 규격화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의학을 이공계라고 하지 않나. 하지만 의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대하는 학문으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 전남대 의대 전신인 광주의학전문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수학 등 기초과학과 철학 강의를 함께 이수하도록 한 이유다. 전남대가 2019년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AI융합 단과대를 신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양한 학문을 접해야 새로운 환경에 대처 가능한 유연성을 기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대학은 110개가 넘는 학과를 바탕으로 풍부한 학문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전남대는 2004년 287병상을 갖춘 화순전남대병원을 개원했다. 개원 초기부터 수준 높은 의료진과 최첨단 고가 장비를 갖추고 암 치료를 특성화했다. 그 결과 인구 6만 명의 화순군에 위치한 이 병원을 찾는 외래 환자가 연간 54만 명에 달한다. 지난해 입원 환자 19만여 명 중 87%가 암 환자일 정도다. 지역 병원이란 한계에도 불구하고 6대 암 수술 건수에서 ‘국내 톱5’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뉴스위크가 발표한 ‘2024년 세계 최고의 전문병원’ 중 종양학 분야에선 세계 120위에 올랐다.

화순전남대병원, 6대 암수술 건수 톱5

전남대 AI 융합대학 내 실험실 전경. 전남대는 2019년 국내 대학 최초로 AI 융합 단과대를 신설했다. [사진 전남대]

전남대 AI 융합대학 내 실험실 전경. 전남대는 2019년 국내 대학 최초로 AI 융합 단과대를 신설했다. [사진 전남대]

1986년 전남대 의대를 졸업한 뒤 정형외과 교수로서 후학 양성에 힘써온 정 총장은 “개원 때부터 365일 가운을 벗지 않고 매달린 노교수들 덕분에 지금의 성공이 있었다”며 “암 전문병원이란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지속적으로 투자한 전략도 주효했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이 개원하기 전엔 지역 내 암 환자의 80%가 수술을 받기 위해 수도권으로 갔지만 이젠 80% 이상이 우리 병원을 찾는다”며 “과감한 투자와 우수한 의료진 확보를 통해 지역 거점 병원의 모델이 됐듯 대학 또한 안정적인 재원을 바탕으로 지역 거점 대학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구가 줄고 출산율도 감소하는 상황에서 재원 마련이 갈수록 쉽지 않을 텐데.
“무엇보다 고등학교까지 이뤄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지원을 대학으로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기준은 여전히 50년 전에 머물러 있다. 100명 중 12명만 대학 가던 시절 얘기다. 그러나 이젠 경제 규모는 커지고 인구는 줄었다.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고등학교 때까지 에어컨 나오는 교실에서 전자칠판을 쓰던 학생들이 대학에 오면 선풍기 틀고 분필로 수업하는 게 현실이다. 국가가 책임지는 고등교육을 대학까지 지원해야 한다.”

정 총장은 “이는 단순히 시설 투자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모든 학생에게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대학이 사업보다는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재정 결핍에 시달리는 지역 대학들은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중환자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을 요구하는 건 중환자에게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뛰라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글로컬미래전략대학원도 개설하는데.
“저출산으로 생산 가능 인구가 줄면서 해외 우수 인력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해외 대학과 교류하고 유학생을 유치하려는 본질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유학생을 유치할 때도 국내 생산 가능 인구를 늘리겠다는 측면보다는 유학생 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게 대학의 기본 역할과도 맞다. 우리 대학이 글로컬미래전략대학원을 만들 때 우선 고려한 것도 이런 부분이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 대학이 주로 유치하려는 대상은 아시아인”이라고 소개했다. “전 세계 인구의 60%가 아시아에 산다. 우리나라는 경제력·군사력과 같은 하드파워는 물론 문화 강국으로서 소프트파워를 동시에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전남대가 개발도상국 청년들을 유치하는 이유도 그들이 한국에 남아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본국에 돌아간 뒤 대한민국을 성장의 롤모델로 삼길 바라기 때문이다.”

지역 소멸 위기 속에서 지방 대학의 생존 전략은.
“국토 발전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지역 소멸을 막을 최후의 보루가 바로 대학이다. 지역과 대학은 공동 운명체인 셈이다. 동시에 대학도 스스로 혁신하며 지역 혁신을 이끄는 주체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 미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철강 도시로 승승장구했던 피츠버그는 산업 생태계의 변화와 생산 설비의 노후화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런 도시가 첨단 의료와 바이오·생명산업의 도시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엔 지역 대학과 병원이 있었다. 피츠버그대학은 바이오, 카네기멜론대학은 데이터사이언스로 특화하며 지역에 인재가 몰렸고 자연스레 신산업 기업도 유치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가 됐다. 이젠 우리 대학 교육도 지역 혁신의 수단을 넘어 혁신 그 자체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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