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아이 그려달라” 만화가의 답변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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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3호 24면

친애하는 슐츠씨

친애하는 슐츠씨

친애하는 슐츠씨
박상현 지음
어크로스

“친애하는 슐츠씨께.”

스누피로 유명한 미국 만화 ‘피너츠’의 작가 찰스 슐츠는 1968년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 한 통을 받는다. 흑인 민권을 위해 싸우던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된 뒤였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교사인 해리엇 글릭먼. 그는 인종 간 편견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어 달라며 ‘피너츠’에 흑인 아이 캐릭터를 넣자고 제안한다.

그때까지 ‘피너츠’의 등장인물은 모두 백인이었다. 슐츠가 인종차별주의자여서가 아니다. 인종 분리가 합법이던 1950~60년대 백인 동네에는 실제로 백인 아이들만 살았다. ‘피너츠’는 그런 현실을 반영했다.

때문에 슐츠는 글릭먼의 편지에 처음엔 난색을 표한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러면 흑인 이웃들을 내려다보는 태도로 보일 것 같다”고 답장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토큰 블랙(token black), 즉 대부분 백인인 등장인물 사이에 형식적으로 넣은 흑인 조연 캐릭터가 될까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글릭먼의 친구인 흑인 아빠가 편지를 보내 “흑인 아이가 여분의 캐릭터로 등장하기만 해도 충분하다”며 “일상적인 풍경에서 인종 간의 우호적인 태도를 캐주얼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설득하자, 결국 마음을 바꾼다. ‘피너츠’ 최초의 흑인 아이 캐릭터인 프랭클린 암스트롱은 그렇게 데뷔했다.

책은 이처럼 ‘악의’가 아니라 ‘무지’에서 비롯된 차별과 배제가 얼마나 흔한지, 문화란 이름으로 인종·젠더·장애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행해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남성 옷에 있는 주머니가 왜 여성 옷에는 없는지, 대학에 진학한 저소득층 학생들은 왜 장학금을 받고도 학업을 포기하는지, 선거에 나선 한국계 후보를 공격하는데 왜 특정 폰트가 쓰이는지 ….

동시에 슐츠처럼 차별이 일상인 세상에 태어났지만 관습에 순응하길 거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소개한다. 킹 목사는 변화를 기다리라는 백인들에게 “미온적인 수용은 노골적인 거부보다 더 당황스럽다”며 행동을 촉구했다. 세계 최고의 체조선수였던 시몬 바일스는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며 “나는 체조선수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정신 건강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인류의 오래된 습관을 깨고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온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변화를 바라고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게 저자 얘기다.

미국에 살며 한국을 오가는 저자는 ‘미국을 거울삼아 한국을 읽는’ 글을 주로 쓴다. 이 책은 그의 유료구독 매체 ‘오터레터’에 연재했던 글들을 가려 묶은 것이다. 논쟁적 주제를 다루지만, 맥락 설명이 친절하고 스토리텔링이 빼어나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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