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사도광산 등재 보류, 한일 외교전 비화 조짐…제2 군함도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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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강제노역 기간을 빼고 에도 시대로만 한정한 채 추진하던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한·일 간의 외교전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세계유산 전문가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가 등재 결정을 '보류(refer)'하고 “전체 역사를 다루는 설명과 전시 설비를 갖추라”는 권고를 내놓으면서다. 세계유산 등재 결정을 한달여 앞두고 일본 정부는 7일 “한국에 정중히 설명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한국 정부는 “전체 역사가 반영되지 않는다면 등재를 막아서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日 "한국과 정중히 논의"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사도광산. 중앙DB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사도광산. 중앙DB

이코모스의 ‘전체 역사 반영’ 권고와 보류 판단에 일본 정부는 재차 강력한 등재 추진 의지를 밝혔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7일 보류 결정에 대해 “일본에 보충 설명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현지 지자체와 긴밀히 제휴해 등록 실현을 향해 정부가 하나가 돼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코모스의 판단이 등재와 보류(※일본은 '정보조회'로 번역), 연기, 불가 등 4개로 이뤄지는 데,보류 판정을 받고도 본 회의인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통과된 전례가 지난해 8건이나 있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이코모스의 권고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코모스는 추가 권고 형태로 “광업 채굴이 이뤄진 모든 시기를 통한 추천 자산에 관한 전체 역사를 현장 레벨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는 설명·전시 전략을 책정해 시설과 설비 등을 갖추라”고 주문했다. 사실상 조선인 강제노역 역사를 반영하란 의미다. 하야시 장관은 관련 질문에 “사도광산이 문화유산으로서 훌륭한 가치를 평가받도록 계속 한국 정부와 성실하고 부단하게, 정중히 논의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한국 정부 “전체 역사 반영해야”

반면 한국 정부는 “강제노역이라는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가 반영되지 않는다면 등재를 위한 컨센서스(전원 합의)를 막아설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내놨다. 다음 달 21일부터 23일까지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한국을 포함한 21개국이 참여해 사도광산의 최종 등재 여부를 판단하는데, 약 한 달간 양국이 치열한 외교전을 예고한 셈이다.

이날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입장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끝까지 컨센서스를 막고 투표로 갈 것”이라며 “투표까지 가는 상황은 최대한 피하면서 한·일 합의를 이루는 것이 양국 목표”라고 설명했다. 관례상 전원 합의로 세계유산 등재가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합의를 못 이룰 경우 투표에 부쳐진다. 이 경우 위원국 3분의 2 이상 찬성하면 등재가 가능하다.

‘군함도’ 그림자…협상 난항 예상도 

사진은 사도 광산의 선광장(캐낸 광석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장소) 연합뉴스

사진은 사도 광산의 선광장(캐낸 광석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장소) 연합뉴스

사도광산을 둘러싼 한·일의 협상 양상이 2015년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탄광 등재 관련 협상과 유사한 형태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당시 일본은 군함도의 등재 시기를 1850년에서 1910년으로 한정해 1940년대의 강제노역을 제외하려 했지만 한국과의 합의를 거쳐 전체 역사를 반영하는 형태로 등재됐다.

한 외교 소식통은 “당시 협상 때 한·일 합의로 '가혹한 환경에서 의사에 반해 강제로 노동했다(forced to work)'는 문구가 들어갔는데, 나중에 이 문구에 대한 해석이 갈렸다”면서 “이번 한·일 협의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합의 당시 일본 외상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현 총리였다. 그는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과 강제징용에 대한 영문 표기를 놓고 막판 전화 협의를 할 정도로 강제징용 표현은 쟁점이었다. 일본에겐 해당 영문 표기가 강제노동에 대한 국제조약에서 사용하는 ‘불법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당시 협의에서 윤 장관이 “일본이 그런 발언을 한다고 해서 국내 재판에서 이용할 일은 없다”고 설득해 일본 측과 합의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후 윤 장관이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들이 자기 의사에 반해 노역했다는 것을 사실상 최초로 일본 정부가 국제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했다”고 밝히면서 양국은 강제노동 문구를 해석을 놓고 또 다시 갈등에 휩싸였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일본 내부에선 당시 합의를 두고 협상에 실패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며 “때문에 사도광산 협상에서는 이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일본 입장에선 협상 파트너인 조태열 외교부장관의 존재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2015년 당시 차관이었던 그는 한국 측 공동수석대표를 맡았다.

군함도 약속 안 지킨 일본

사도광산에 대한 한·일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또 있다. 군함도 등재 당시 일본이 약속한 전체 역사 반영이 지금껏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일본은 군함도가 있는 나가사키(長崎)가 아닌 도쿄에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세운 뒤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는 내용을 기재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의 약속 미이행에 대해 지난 2021년 강한 유감을 밝혔지만 지금껏 수정되지 않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다른 회원국도 일본의 (약속) 불이행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면서 “밖에선 요란해 보이지 않더라도 물밑에선 2015년과 같은 문제 의식을 갖고 치열하게 협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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