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주정완의 시선

미래 세대에 연금 적자 덤터기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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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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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린 사안을 시장에서 콩나물값 흥정하듯이 정할 순 없다. 하마터면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 될 뻔했다. 지난 21대 국회 막판에 결국 여야 합의에 실패한 연금개혁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당도, 야당도 잘한 건 하나도 없다. 이게 국회의원 임기 마지막 며칠을 남겨놓고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일 일인가. 국회의원들이 임기 4년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게 낭비했다는 자기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22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거대 야당은 다수의 특검법을 밀어붙이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 연금개혁은 하루가 급하다고 정부·여당을 재촉하던 것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그토록 연금개혁이 절실한 문제였다면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정해 최우선으로 추진했어야 마땅하지 않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연금개혁을 다시 언급하긴 했지만 특검법 등 정치 현안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청년 목소리 외면한 개혁은 ‘개악’
‘더 내고 덜 받기’가 유일한 해법
새 연금특위, 젊은 의원 중심 돼야

마땅한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야당에 끌려다니는 정부·여당은 더욱 무책임해 보인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알맹이 없는 ‘맹탕’ 개혁안을 던져놓고 국회에 공을 떠넘길 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견됐던 상황이다.

기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도대체 연금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가. 미래 세대의 부담을 늘리기 위해서인가, 줄이기 위해서인가. 설마 미래 세대의 ‘등골’을 빼먹기 위해 연금개혁을 해야 한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또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래 세대에 천문학적인 연금 적자의 덤터기를 씌워선 안 된다. ‘미래 세대를 위한 연금개혁’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역사적 과제다.

현재 국민연금은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바로 적게 내고 많이 받아가는 구조다. “국민연금은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먼저 가입한 사람은 큰 혜택을 보겠지만 나중에 가입한 사람은 시쳇말로 국물도 없을지 모른다. 한국연금학회장을 지낸 이창수 숭실대 교수(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는 “현 연금 제도가 일종의 폰지 게임 같아서 후세대에 계속 부담을 전가한다”며 “어느 시점에서는 미래 세대의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좋든 싫든 연금 문제의 해법은 한 가지 길뿐이다. 더 내고 덜 받기다. 다른 방법은 결과적으로 미래 세대의 부담만 키울 뿐이다. 진정으로 미래 세대를 걱정한다면 소득대체율을 올리자는 말을 함부로 꺼내선 안 된다. 현재도 연금 재정의 부실이 심각한데 미래 세대의 더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 기성세대에 돈을 더 줘야 하나. 미래의 연금 재정을 제대로 계산이나 해보고 이런 주장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당장은 1~2%포인트 차이가 작아 보여도 수십년간 쌓이면 엄청난 부담으로 돌아온다.

한쪽에선 우리 사회의 노인 빈곤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문제는 국민연금이 아니라 기초연금을 포함한 전반적인 사회복지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여야 합의 사항이 바로 ‘기초연금 지급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하’였다. 이제 와서 가뜩이나 취약한 연금 재정을 더욱 부실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가는 건 곤란하다. 정말 가난한 노인들은 젊을 때 힘들게 사느라 연금 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이런 노인에겐 아무리 연금 소득대체율을 높여도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연금개혁이 사회적 공감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청년 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는 어쩔 수 없지만, 현재 20~30대의 목소리는 충분히 들을 수 있지 않나. 이들에게 연금 재정이 얼마나 부실한 상태인지 실상을 정확히 알려주고 의견을 물어야 한다. 막연하게 국가가 책임질 것이란 식으로 넘어가는 건 안 된다. 국가가 책임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 막대한 세금 인상이나 천문학적 국가 부채를 뜻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난 5일 개원한 22대 국회는 조만간 연금특위를 새로 구성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는 최대한 젊은 의원들을 중심으로 특위를 꾸리길 바란다. 지난 국회의 연금특위에선 위원장을 포함한 절반 이상이 60대였다. 특위 위원 13명 중 30대는 단 한 명도 없었고, 40대도 두 명에 그쳤다. 이래선 청년 세대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 다른 사안은 몰라도 적어도 연금 문제만큼은 청년 세대가 의사 결정의 키를 잡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