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장혜수의 카운터어택

아시아 1호와 2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미국 프로야구(MLB) 샌프란시스코(SF) 자이언츠 소식을 챙겨보기 시작한 건 ‘바람의 손자’ 이정후 때문이다. 그의 활약상을 보려고 구단 소셜미디어를 팔로우하고 유튜브도 구독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지난달 13일 신시내티 레즈전에서 어깨를 다쳐 수술대 위에 올랐고 시즌을 마감했다.) 지난달 17일 새 동영상 알림이 떴다. 제목은 ‘무라카미 마사노리가 시구하고 있다’였다. 누구지. 호기심이 일었다. 열어보니 ‘MLB에 진출한 최초의 일본 선수’라고, ‘일본 문화유산의 밤을 맞아 오라클파크에서 시구했다’고 설명돼 있었다.

지난달 17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에서 시구하는 무라카미. 그가 아시아인 메이저리거 1호, 박찬호가 2호다. [AP=연합뉴스]

지난달 17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에서 시구하는 무라카미. 그가 아시아인 메이저리거 1호, 박찬호가 2호다. [AP=연합뉴스]

무라카미는 60년 전인 1964년, 일본인 아니 아시아인 최초로 MLB 무대를 밟은 선수다. 그해 9월 1일, SF는 뉴욕 메츠 원정에서 8회 말 0-4로 뒤지고 있었다. 그때 그가 마운드에 올랐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당시 긴장을 덜기 위해 ‘우에오 무이데 아루코(上を向いて歩こう)’라는 노래를 읊조렸다고 한다. 1963년 일본 가수 사카모토 규가 불러, 일본 아니 아시아 노래 최초로 빌보드 핫100(싱글차트) 정상에 오른 ‘Sukiyaki(스키야키)’와 같은 곡이다. 첫 타자를 삼진 처리한 그는 곧바로 중전안타를 맞았다. 하지만 후속타자를 삼진과 유격수 땅볼로 잡고 빅리그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무라카미 스토리의 절정인 데뷔전은 꽤 극적이다. 하지만 발단과 결말은 좀 허무하다. 사실 빅리거는 그의 꿈이 아니었다. 서부영화를 좋아해 미국 유학을 조건으로 난카이 호크스(현 소프트뱅크)에 입단했다. 1964년 동료 2명과 SF의 싱글A 팀에 임대됐다. 당시 SF는 ‘3명 중 MLB에 콜업되는 선수 1명을 1만 달러에 이적시킨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는 8월 말까지 11승 7패, 평균자책점 1.78, 200탈삼진을 기록했고, 콜업됐다. SF가 그와 계약하려 했지만, 난카이가 몽니를 부렸다. 결국 SF에서 1년 더 뛰고 난카이로 복귀했다. 그는 일본에서 통산 103승 82패, 30세이브를 기록했고 1982년 은퇴했다. 이듬해 SF의 트라이아웃에 재도전했지만, 두 번째 기회는 오지 않았다.

지난달 22일,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타디움에서 한국 문화유산의 날 행사가 열렸다. 한때 ‘국민 구단’으로 각별했던 다저스다. 뉴스를 뒤졌지만 ‘PARK’(박찬호)도 ‘RYU’(류현진)도 보이지 않았다. 박찬호가 1994년 다저스에 입단했으니 꼭 30년 전이다. 그는 MLB 무대에 오른 첫 한국인이자 무라카미에 이은 두 번째 아시아인이다. 이날 한국 보이그룹 라이즈가 ‘겟 어 기타’ 등을 불러 다저스타디움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고 한다. K팝 공연뿐 아니라 ‘박찬호의 시구까지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말로 칼럼을 맺는다면 지나치게 전형적인 마무리일까. 그래도 어쩌나. 맘 한쪽이 아쉬운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