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는 걸 높이 평가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을 계기로 세계 주요 뉴스통신사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6일 타스 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한·러 관계와 관련한 질문에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한국 지도부가 일을 할 때 러시아 혐오 분위기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한국은 우크라이나 등) 분쟁 지역에 직접 무기를 제공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도 유럽 주요국 중 비교적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국가로 꼽힌다.
올해 초엔 이탈리아 국방장관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러시아와의 종전 협상과 연계하겠다고 발언해 서방 내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국을 사실상 우호국으로 거론한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또 “러시아와 한국 관계가 퇴보하지 않기를 기대한다”며 “(이는) 한반도 전체와 관련한 양국 관계 발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측 협력의 많은 영역에서 알려진 문제가 있어 매우 안타깝다”며 “이건 우리의 선택이 아닌 한국 지도부의 선택이다. 우리는 채널이 열려 있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같은 유화적 발언을 두고 “과거와 태도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2022년 10월 발다이클럽 연설에선 “(한국이) 폴란드를 통해 무기 공급을 하는 것 아니냐. 우리가 알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이번에도 “한국이 직접 공급하지 않았다”는 표현을 쓰며 간접적인 무기 지원 가능성은 열어뒀다. 실제로 그는 “미국 기업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지역으로 보내려는 모든 종류의 무기 구매를 들여다보며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북한과 무기 거래 등 군사협력을 둘러싼 비판에 대해선 “우리는 다른 누군가가 좋아하든 말든 우리의 이웃인 북한과 관계를 발전시킬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선 “(북한은) 위협을 받으면 대응한다”며 “위협이 없었다면 핵 문제는 점진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북한을 두둔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선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일본과의 대화는 일본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입장을 바꿔야만 가능할 것”이라며 “일본이 러시아를 전략적으로 패배시키려는 시도에 동참하겠다고 발표한 게 대화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반문했다.
푸틴 대통령이 이처럼 주변국과 관계를 거론한 것에 대해선 “서방 진영 내 분열을 노린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황성우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교수는 “북한에 대한 입장 변화가 없는 것 등으로 미뤄 북·중·러 대 한·미·일 진영 대립 구도에서 한·미·일 간 군사협력을 흔드는 전략”이라며 “특히 한·일 간 틈을 유발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푸틴 대통령 발언의 행간에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경제가 지나치게 중국에 경사되는 것을 불안해하는 의미가 담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 해인 2021년 한·러 교역액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한국은 8대 교역국이면서 대러시아 직접 투자도 활발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등이 철수한 뒤 중국 메이커들이 러시아 시장을 독식하는 등의 현상이 계속되는 실정이다. 전문가 사이에선 “한국과 경제협력으로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자 하는 바람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