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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수사 뒤에 남은 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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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박현준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박현준 사회부 기자

박현준 사회부 기자

수사는 외과수술에 비유되곤 한다. 환부만 도려내는, 거악만 처벌하는 수사를 최고로 친다. 수술 이후 환자의 섭생이 바뀌지 않는다면 재발 여지가 크다는 점도 비슷하다.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범죄는 재발한다. 섭생을 바꾸는 게 환자의 몫이듯, 수사가 끝난 뒤 문제의 체계적 원인을 제거하는 건 수사기관이 아닌 다른 이의 몫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채 상병 수사는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정부 국정운영의 이정표가 될 성싶다.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지휘부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뒤집기 위해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국방부 등이 외압을 행사했는지는 수사로 밝힐 일이다. 그러나 국정 운영의 구조적 난맥상은 수사의 메스로 도려낼 수 없다.

지난달 14일 ‘채상병 사건’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마치고 나선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뉴스1]

지난달 14일 ‘채상병 사건’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마치고 나선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뉴스1]

과거에는 권력 핵심부가 수사 라인에 ‘원 포인트’ 전화 한 통화로 결과를 주무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대통령 참모와 군 관계자들이 계통도 없이 우왕좌왕하며 국방부와 군, 경찰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찔러 댄 덕에 증거가 많이 남았다”(전 공수처 관계자)고 한다. 수사야 매끄럽게 흘러가지만, “다른 국정 운영도 이렇게 하는 것 같아 걱정”이라는 그의 말에는 뼈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과 비화폰(도청방지 전화)이 아닌 개인 명의 휴대전화로 통화를 주고받은 사실이 밝혀진 건 황당하다 못해 우려스럽다. 안보 참사가 터지기 전에 드러난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윤 대통령이 참모들과 회의에서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고 질책했다는 ‘VIP 격노설’도 그렇다. 그 자체로는 범죄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민 생명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틈새가 벌어진 순간이다. ‘VIP 격노설’의 사실 여부에 언론이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취임 2주년 회견에서 “생존자를 구조하는 상황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무리하게 진행을 해서 인명사고가 나게 하느냐”라고 국방부 장관에게 질책성 당부를 했다는 해명도 ‘VIP 격노설’이 여론에 미칠 위력을 알고 있기에 한 말일 것이다.

수술이 끝난 뒤에는 보양(保養)을 하고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 수술의 성패도 거기에 달렸다. 이전처럼 하다가 병이 재발하면 수술이 무용지물이 된다. 수사 이후에 윤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바뀔지가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