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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달’ 특집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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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기환 경제부 기자

김기환 경제부 기자

5월은 ‘호구(虎口)의 달’이었다. 최근 한 달 쏟아진 뉴스 중 ‘이게 나라냐’ 싶었던 3건을 추려 칼럼으로 기록한다.

①사법부 해킹=경찰청은 지난달 11일 북한 해킹 조직 ‘라자루스’가 최소 2021년 1월 이전부터 2023년 2월까지 법원 전산망을 해킹했다고 발표했다. 일반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금융 정보 등 1014GB(1TB) 분량 자료가 털렸다. 그나마 전체 유출 규모의 0.5%(4.7GB)만 확인했다. 털린 것도 허탈한데, 뭐가 털렸는지조차 모른다.

털린 뒤 사법부 행태가 더 불안하다. 법원이 해킹을 인지한 시점은 지난해 2월. 하지만 포렌식(증거 분석) 능력이 없는데도 쉬쉬했다. 경찰 수사는 같은 해 12월에야 시작됐다. 그 새 서버에 남아있던 유출 자료가 지워졌다. 해킹 경로도 확인할 수 없었다. 신뢰의 상징이어야 할 대한민국 사법부의 현주소다. 북한에 항의? 없었다.

지난 2일 경기도 시흥의 한 주차장에서 군 관계자가 북한발 ‘오물 풍선’ 잔해를 수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일 경기도 시흥의 한 주차장에서 군 관계자가 북한발 ‘오물 풍선’ 잔해를 수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②‘오물 풍선’ 테러=지난달 28∼29일(1차), 이달 1~2일(2차) 북한이 한국에 오물 풍선을 날렸다. 합동참모본부가 식별한 풍선만 900여 개다. 주택가 차량 유리창이 깨지고, 시장통에 떨어진 오물이 거리를 뒤덮었다. 인천공항은 운항에 차질을 빚었다.

내용물을 알 수 없는 (폭발물이나 생화학 무기일 수도 있는) 비행체가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면 즉시 격추하는 게 ‘빈틈없는 국방 태세’ 아닐까. 군은 “격추 시 2차 피해를 우려해 낙하한 풍선을 수거한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국민은 풍선이 안전한 데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나. 대통령이 강조하는 ‘선(先)조치 후(後)보고’가 무색하다. 대통령실은 2일에서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북한이 감내하기 어려운 조치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③황당한 방산 계약=방위사업청은 지난달 8일 “인도네시아 측이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KF-21) 공동 개발 사업 분담금을 1조6000억원에서 6000억원으로 조정해달라고 제안했다”며 “(인도네시아 제안을) 수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발표했다.

동네 부동산 계약도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못 뒤집는다. 정부는 항의 한마디 없이 “인건비 절감 등 노력으로 실제 늘어날 한국 측 부담을 1조원에서 5000억원 수준으로 줄였다”며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전략적인 관계다.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쯤 되면 한국의 국익인지, 인도네시아의 국익인지 헛갈린다.

올해의 뉴스라 해도 손색없을 굵직한 사건마다 늦장·부실 대응으로 이어졌다. 나라 시스템 어디엔가 구멍이 났다는 신호다. 6월 호국의 달을 맞아 호구 되지 말자는 경보를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