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정부 ‘나랏빚 왜곡’…전망치 반으로 줄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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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문재인 정부가 미래 세대가 져야 하는 나랏빚을 추산하는 ‘2060년 국가채무비율 전망’ 수치를 최소 2분의 1 이상 축소·왜곡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4일 발표됐다. 부동산·소득·고용 관련 통계 조작에 이어 국가 장기 재정 전망에서도 의도적으로 비튼 정황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이 과정을 주도한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의 비위 내용을 인사혁신처에 통보하고, 기획재정부에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홍 전 부총리는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한 최선의 판단이었다”며 정책적 결정이었다는 취지의 반박 입장을 내놨다.

감사원은 2020년 9월 기재부가 발표한 2060년 국가채무비율 전망 수치를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5년마다 발표하게 돼 있는 장기 재정 전망은 법적 의무사항이다. 당시 기재부는 “성장 시나리오에 따라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GDP 대비 64~81% 수준으로 관측된다”고 발표했다. 같은 달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2060년 국가채무비율 전망치 158.7%와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당시 야당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이었던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그해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기재부가 희한하게 마술을 부린다. 인위적으로 찌그러트려서 2060년 80%가 나오게끔 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감사원 감사에서도 기재부가 국가채무 급증에 대한 외부의 비판을 우려해 채무비율 수치를 왜곡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재인 정부는 급증하는 재정 지출에 대한 우려가 컸다. 그해에만 코로나19 대응으로 네 차례에 걸쳐 67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고,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에 따른 비용 소요도 적잖았다.

감사원에 따르면 당초 기재부 추산치는 발표 수치의 2배 수준인 129.6~153%였다고 한다. 하지만 2020년 7월 8일 오전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가 문재인 전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채무 전망치가 100%를 초과할 경우 외부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한 뒤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같은 날 오후 “인구구조 사회경제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란이 커지지 않게 잘 관리하고 신경써 주기 바람”이라는 청와대의 회의 코멘트가 기재부에 전달됐고, 이후 홍 전 부총리 주도로 전망치 왜곡이 시작됐다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홍 전 부총리는 “국가채무비율 129%는 국민이 불안해한다”며 두 자릿수로 수치를 낮추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한다. 이때 재정전망 추계 방식을 바꾸라고도 지시했다.

나랏빚 늘자 홍남기 새 계산법…당시 추경호 “마술 부려”

감사원이 밝힌 문 정부의 ‘2060년 국가채무비율 전망’ 축소 과정

감사원이 밝힌 문 정부의 ‘2060년 국가채무비율 전망’ 축소 과정

기존엔 정부의 재량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에 연동하는 방식이었다. 재량지출은 국방비나 사회간접자본 등 정부가 필요시 지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홍 전 부총리는 그 방식 대신 “총지출(의무지출+재량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에 100% 연동시키라”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지시했다. 이는 곧 특정 해의 경제가 3% 성장했으면, 그해 정부 지출 증가율도 3%의 캡을 씌운다는 의미다. 고령화에 따라 연금 지급 규모가 확대되는 등 시간이 지날수록 의무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점을 감안하면 캡을 씌운 상태에선 재량지출은 줄어드는 게 필연이다.

감사원은 이 경우 GDP 대비 재량지출은 2022년 16.3%에서 2060년 5.82%로 줄어 정부의 기본 기능도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계산 과정에서 재량지출이 마이너스인 경우도 발생했다. 홍 전 부총리는 “전례가 없다”는 실무진 반대에도 “왜 불가능하냐. 재량지출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도 정부가 충분히 의지를 갖고 할 수 있다”고 밀어붙였고, 결국 두 자릿수 수치가 발표됐다. 감사원은 “홍 전 부총리가 (채무 증가) 등 외부 비판을 우려해 수치를 왜곡, 축소하며 객관성과 투명성 및 정부의 신뢰성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당시 기재부의 전망치에 대해 “어느 정도 조정을 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조사 과정에서 청와대의 구체적인 외압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홍 전 부총리는 지난해 감사원 조사에서 국가채무비율을 낮추는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두 자릿수로 만들라고 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은 홍 전 부총리에게 직권남용 혐의 적용을 고려했지만, 정책 결정 사안인 점을 고려해 국가공무원법 56조(성실의무)를 위반한 비위 혐의 통보로 마무리 지었다. 감사 결과 발표 후 홍 전 부총리는 “의견과 판단을 달리하는 여러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발표 당시에 재정여건, 국가예산 편성, 국가채무 수준, 국제적 대외 관계 등을 감안해 최선의 판단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감사원은 이날 문재인 정부 때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사업이 150여 건으로 급증했고, 최소한의 검증조차 이뤄지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수천억~수조원대 사업에 대한 기재부 검토 기한이 1일 이내인 경우가 36건(60조7030억원)이었고, 사전용역을 하지 않은 사업도 29건(35조7867억원)에 달했다.

2020년 예타가 면제된 가정용 스마트전력 플랫폼 등 8개 사업(4조3000억원 소요)의 경우 국토교통부 등 7개 부처가 그해 6월 2일 오전 기재부에 예타 면제를 요청했고, 기재부가 두 시간 뒤 관련 검토 안건을 평가위원회에 송부해 같은 날 저녁 6시에 예타 면제가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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