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지 않겠다"는 전공의들…인기과·고연차는 '눈치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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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건 없습니다. 응급실로 돌아가진 않을 겁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은 4일 정부의 전공의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 철회 발표를 앞두고 이런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박 위원장은 “거참 또 시끄럽다. 퇴직금은 준비가 됐냐”라고도 적었다. SNS 글에 앞서 대전협 내부 공지를 통해서는 “저도 마찬가지지만 애초에 다들 사직서 수리될 각오로 나오지 않았느냐”라며 “할 수 있다. 그리고 해야 한다. 힘냅시다. 학생들도 우리만 지켜보고 있다”라며 내부 결집을 호소했다.

의정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4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정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4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단일대오 강조하는 전공의들…인기과·고연차는 ‘눈치 게임’ 

정부가 전공의 사직서 수리를 허용하고 복귀자에게 행정처분을 사실상 면제해주기로 하면서, 전공의들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표면적으로는 정부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서울 ‘빅5’ 병원의 4년 차 전공의는 “의사를 못 하는 것도 아닌데 1년 쉰다 생각하고 복귀하지 않겠다”라며 “이참에 입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의사만 가입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번에 밀리면 끝” “돌아가면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는 노예” “패배 선언하고 굴욕적으로 돌아가지 말자”처럼 단일대오를 강조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전공의 사이에선 “복귀 전공의에게 정부가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항상 다 같이 움직이는 게 상황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분석 글이 한때 퍼지기도 했다. 정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구상권 청구 가능성을 일축했다. 빅5 병원 한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비인기과인 필수과 전공의라면 이번에 나가도 언제든 상급 연차로 돌아오는 게 전혀 어렵지 않다”라며 “정부 발표 뒤 다들 더 강하게 뭉쳐 들어가지 말자는 의견이 대세가 됐다”라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전공의들의 표면적인 여론과 달리 “눈치 게임이 시작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공의 수련 규정상 수련 중 사직한 전공의는 1년간 같은 과·연차에 복귀할 수 없다. 사직할 경우 전문의 취득이 그만큼 늦어지는 셈이다. 빅5 한 의대 교수는 “수련 과정이 고된 필수의료과는 어쩔 수 없겠지만, 돌아오고 싶어도 주변 눈치 보던 고연차(3~4년 차)나 인기과 전공의들이 복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빅5 병원 한 3년 차 전공의는 “개원가에 취직하려고 해도 전문의 자격을 따두는 게 유리하다”며 “돌아가서 조금만 더 수련 받으면 전문의를 딸 수 있으니 복귀가 고민되긴 한다”고 말했다.

사직서 수리를 위해 병원은 전공의들의 최종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장은 “병원 핵심 인력인 필수의료과는 아직은 대부분 돌아오지 않을 분위기”이라며 “전공의들과 연락이 계속 닿지 않아 사직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병원 내 여러 의견을 종합해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반응이 갈리는 것으로 본다. 그대로 사직하는 전공의가 있겠지만 돌아오는 인원도 있을 것"이라며 "행정처분을 안 한다고 공식 발표했으니 마지막 기회로 보고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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