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K-사상 공부할 때"…동학 소설 쓴 원로 언론학자의 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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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제국주의와 본격적으로 부딪힌 것이 개항이 시작된 1876년입니다. 이때 지식인들은 개화를 주장했고 민중세력은 반제국주의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 핵심 세력이 동학도였죠. 우리나라가 근대로 가는 길목에 동학이 있었던 겁니다.”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

장편 소설 『등대』를 펴낸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는 "좌우로 갈라져 싸우기 전에 동학 운동의 정신을 되새기자는 의미로 책을 썼다"고 했다 . 권혁재 기자

장편 소설 『등대』를 펴낸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는 "좌우로 갈라져 싸우기 전에 동학 운동의 정신을 되새기자는 의미로 책을 썼다"고 했다 . 권혁재 기자

최근 출간된 장편소설『등대』(솔출판사)는 1894년에 동학 농민전쟁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1910년 일제에 의한 국권침탈까지 십여년에 걸친 난세를 파헤친 역사 소설이다. 구체적으로는 1909년 전남 완도군 좌지도에서 벌어진 등대 습격 사건이 모티프다. 일본이 조선을 수탈하기 위해 좌지도에 세운 등대를 동학 신도들이 파괴하고 일본인 등대장을 죽인 사건이다.

'항일운동의 성지'로 불리는 소안도에서는 집집이 365일 태극기를 걸어 놓는다. 중앙포토

'항일운동의 성지'로 불리는 소안도에서는 집집이 365일 태극기를 걸어 놓는다. 중앙포토

‘등대 의거’를 계기로 인근 소안도에서는 항일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당시 6000여 명의 주민 중 광복 후 서훈을 받은 독립 유공자가 22명 나왔고, 일제의 조선총독부에 의해 ‘불령선인’(식민 지배에 반대하는 조선인)으로 지목돼 감시를 받은 주민은 800명이나 됐다. 도대체 이 외딴 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사옥에서 저자 김민환(79) 고려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늦깎이 소설가인 그는 2013년 장편소설 『담징』으로 오랜 시간 묵혀둔 문인의 꿈을 이뤘다. 장편『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로 2021년 이병주 국제문학상, 노근리 평화상 문학상을 받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등대 습격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정년 퇴직을 하고 전남 보길도에 내려가 살았다. 보길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면에서 소안도, 좌지도(현재 당사도) 등과 함께 군도를 이루는 섬이다. 이웃 섬 소안도에 우연히 들렀다가 그곳이 우리나라 항일 운동 3대 성지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작고 외딴 섬에서 어떻게 항일 운동이 그토록 격렬하게 일어났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역사를 공부하다 등대 습격 사건을 알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보길도에 터를 잡은 것이 운명으로 느껴진다.
소안도 달목공원에 설치된 대형 태극기. 친환경 부표 2420개로 만들었다. 중앙포토

소안도 달목공원에 설치된 대형 태극기. 친환경 부표 2420개로 만들었다. 중앙포토

항일 운동 역사에서 등대 습격 사건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뭘까.
항일 운동 연구가 중앙에 치중돼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 항일 운동사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다. 소안도 역시 지금까지도 주민들이 스스로 기념관을 만들고 기념사업을 하면서 항일 역사를 알리고 있다. 
장편 소설 『등대』는 전남 완도군 소안도에서 일어난 동학 운동과 항일의 역사를 다뤘다. 사진 솔출판사

장편 소설 『등대』는 전남 완도군 소안도에서 일어난 동학 운동과 항일의 역사를 다뤘다. 사진 솔출판사

소안도의 역사는 어떻게 취재했나.  
근처 보길도에 살기 때문에 발로 뛰며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예를 들어 등대 사건의 주동자 이준화는 독립 유공자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일본 경찰의 수사 기록에 이름이 등장한다. 대대로 소안도에서 살아온 분들 중에 이런 희귀한 기록을 개인적으로 보관 중인 분들이 있다.
왜 지금 동학에 주목해야 하나.
농민이 주도한 사회 혁명 중에서 동학의 ‘인내천’, ‘개벽 사상’ 같은 완성도 높은 이데올로기를 갖춘 사례가 세계 어디에도 없다. 동학은 그저 나라를 부수고 뒤엎자는 운동이 아니었다. 당시 가톨릭도 모두가 평등한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는 평등 사상을 설파했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을 ‘종’으로 보는 입장이었다. 동학에서는 반대로 주인 의식을 강조한다. 한국은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이룬 꿈의 교본 같은 나라인데 사상적으로는 서구의 영향을 받았다. 이제는 우리 고유의 정신이 무엇인지, 그 뿌리가 무엇인지 살펴볼 때가 됐다. 
기존에도 동학을 다룬 소설은 있었다.
투쟁으로서의, 전쟁으로서의 동학이 아닌 사상으로서의 동학을 비중 있게 다룬 소설은 보기 드물다. 해방 이후 좌우로 나뉘고, 지금도 엄청나게 싸우고 있는데 이쯤에서 동학으로 돌아가 주인 된 민족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마침 올해가 동학 창시자 최제우 선생의 탄생 20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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