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파고 깎고 잉크 발라 눌러 찍고…작품부터 책‧옷 만들 때도 ‘판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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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시간에 조각칼로 고무판을 판 뒤 잉크를 발라 종이에 찍어내는 고무판화를 해 본 적 있나요. 고무판화는 남녀노소 쉽게 접할 수 있는 ‘판화’인데요. 판화는 판을 파고 깎거나 물체를 붙이는 등을 한 뒤 그 위에 잉크를 발라 찍어내는 그림을 말해요. 판화는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그 종류가 많고, 실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많이 쓰이죠. 김서윤·황민하 학생기자가 판화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디비판화작업실을 방문했습니다.

김서윤(왼쪽)·황민하 학생기자가 판화에 대해 알아보고, 오목판화 기법을 사용해 동판화를 만들어 봤다.

김서윤(왼쪽)·황민하 학생기자가 판화에 대해 알아보고, 오목판화 기법을 사용해 동판화를 만들어 봤다.

소중 학생기자단을 반갑게 맞이한 이효림 강사가 판화에 관해 설명했어요. “판화는 판이 되는 재료와 찍어내는 기술의 발달로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어요. 판화의 시작이라고 하면 선사시대 때 인간이 동굴벽화를 그리면서 손으로 찍어낸 것들을 말할 수 있죠. 이후 책이 등장하고 신문·잡지 등 인쇄물이 많이 나오면서 여러 장 찍어낼 수 있는 판화가 발전했어요. 판화는 직접 그리는 게 아니라 판을 통해 어떠한 대상에 찍기 때문에 간접 표현이 가능하며, 판 하나로 같은 그림을 여러 장 찍을 수 있어 대부분 복수성을 띄어요. 같은 재료의 판을 사용한다고 해도 기법에 따라 다르게 표현할 수 있고, 공판화를 제외하고 그림의 좌우대칭이 일어납니다.”

피카소·샤갈·모네·앙리 마티스 등 세계적인 회화 거장들도 판화를 했어요. 이들은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은 물론 판화의 간접 표현에 흥미를 느꼈고 남긴 판화 작품도 여러 개가 있죠. “판화에 대해 아는 척을 하고 싶다면, 판화 작품 밑에 작가 사인과 제작 연도, 작품 제목과 함께 에디션 번호가 적혀 있어요. 에디션 번호는 분수 또는 알파벳으로 돼 있는데요. 만약 ‘1/10’이면 10장 중 처음으로 찍은 것, ‘2/10’이면 10장 중 두 번째로 찍은 것을 말하죠. 이는 판화의 복수성으로 여러 장 찍으면 희소성이 떨어지니까, 한정 수량만 찍었다는 걸 확인시켜 주기 위한 거예요.” 민하 학생기자가 “실생활에서 우리가 자주 접하지만 판화인 줄 모르는 게 있을까요?”라고 질문했어요. “판화는 실용성이 강해서 많이 사용되지만 사람들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해요. 흔히 쓰는 티셔츠·컵·에코백 등에 새겨진 로고와 문양, 명함·청첩장의 글씨와 그림 등을 만들 때 판화가 사용되는데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판화가 얼마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 알 수 있죠.”

리놀륨판에 옮겨진 도안을 따라 조각도로 파고, 잉크를 바르는 등 볼록판화 작업을 하는 모습.

리놀륨판에 옮겨진 도안을 따라 조각도로 파고, 잉크를 바르는 등 볼록판화 작업을 하는 모습.

서윤 학생기자가 “판화에는 어떤 게 있나요?”라고 물었어요. “판화는 전통적으로 잉크를 어떻게 찍어내느냐에 따라 4가지로 분류돼요. ‘볼록판화’는 조각칼 등의 도구로 파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에 잉크를 묻혀 찍어내는 방법이에요. 미술 시간에 많이 하는 고무판화가 대표적이죠. ‘오목판화’는 조각칼 등으로 파낸 부분에 잉크를 채워 넣어 찍는 방법이에요. 볼록판화가 면이 두드러진다면, 오목판화는 날카로운 선이 강조돼요. 주로 금속판이나 아크릴판에 니들 등 뾰족한 날이 있는 도구를 사용해 파고, 잉크가 채워진 부분에 강한 압력을 줘서 잉크가 파낸 부분에서 나올 수 있도록 프레스기를 이용해 찍죠.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오목판화가 바로 지폐와 금속활자예요.”

이효림(왼쪽) 강사와 함께 프레스기의 손잡이를 돌려 압력을 줘 아연판에 새긴 선이 종이에 어떻게 찍어나오는지 알아본 김서윤 학생기자.

이효림(왼쪽) 강사와 함께 프레스기의 손잡이를 돌려 압력을 줘 아연판에 새긴 선이 종이에 어떻게 찍어나오는지 알아본 김서윤 학생기자.

‘평판화’는 평평한 판에 잉크가 찍혀 나오는 것을 말해요. 잉크를 판에 올려놓기만 하면 돼서 파고 깎는 등의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요. 또한 판화 중 가장 그림을 직접 그린 것 같은 느낌을 살릴 수 있죠. ‘공판화’는 판에 구멍을 내서 잉크가 구멍을 통과해 찍히는 것이에요. 다른 판화와 달리 잉크가 그대로 찍히기 때문에 그림의 좌우대칭이 일어나지 않아요. “판화는 또한 재료에 따라 나뉘기도 해요. 볼록판화 기법이 주로 사용되는 ‘지판화’는 독특한 무늬나 모양이 있는 두꺼운 종이·판지 등을 잘라 붙여서 롤러로 잉크를 칠한 다음 찍는 것이에요. 평판화를 대표하는 ‘석판화’는 물과 기름의 반발력을 이용합니다. 돌판 위에 기름 성분의 물감 등으로 그림을 그리고, 나머지 부분에 물을 칠해 구분을 짓고 롤러로 잉크를 바르면 기름 성분이 있는 부분만 찍히죠. 이외에도 실크 판에 잉크를 통과시켜 티셔츠·컵·에코백 등에 로고와 문양 등을 새기는 공판화 대표 ‘실크스크린’, 날카로운 도구로 금속판을 파서 그 안에 잉크를 넣고 찍는 오목판화 기법을 사용한 ‘동판화’ 등이 있어요.”

특이한 무늬나 모양이 있는 두꺼운 종이·천 등을 종이에 붙여 만든 지판화용 판.

특이한 무늬나 모양이 있는 두꺼운 종이·천 등을 종이에 붙여 만든 지판화용 판.

소중 학생기자단이 이 강사와 함께 오목판화 기법을 활용해 한 면에 그라운드가 발라진 가로세로 10X10cm 아연판으로 동판화(에칭)를 만들어봤어요. “동판화도 그 기법에 따라 ‘에칭’ ‘드라이포인트’ 등으로 나뉘어요. 에칭은 산성 물질을 이용해 금속판의 판 부분을 부식시켜 선의 깊이를 만들어 내는 기법이에요. 드라이포인트는 산성 물질을 사용하지 않아 부식을 안 하기 때문에 에칭보다는 강하게 선을 깎아 거친 선의 형태가 나오는 게 특징이에요.” 서윤 학생기자가 “그라운드가 무엇인지” 궁금해했어요. “그라운드는 파낸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부식되지 않게 판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물질이에요.”

먼저 아연판에 새기고 싶은 이미지를 잉크젯 필름에 뽑거나 아연판에 직접 그려요. 서윤 학생기자는 햄스터 캐릭터, 민하 학생기자는 만화 ‘짱구는 못말려’의 유리 캐릭터 이미지를 잉크젯 필름으로 뽑았어요. “이미지가 새겨진 잉크젯 필름을 아연판의 그라운드가 발라진 면에 올려요. 그다음 아연판 위아래로 갱지를 올린 뒤 프레스기로 압축하면 잉크젯 필름의 이미지가 아연판에 옮겨지죠.” 이 강사가 도구함을 꺼내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동판화에 쓰이는 다양한 도구들을 보여줬어요. “‘니들’은 얇게 선을 팔 때 쓰는 날카로운 도구예요. ‘버니셔’는 잘못 팠을 때 금속판 위를 강하게 문질러 틈을 메우는 지우개 같은 역할을 해요. ‘룰렛’은 불규칙한 점들을 새겨서 찍으면 어두운 부분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에요. 이번에는 니들만 사용해서 동판화를 만들어 볼게요.”

얇은 선을 파내는 '니들', 잘못 팠을 때 금속판을 강하게 문질러 틈을 메우는 ‘버니셔’, 불규칙한 점들을 새겨 찍으면 어두운 부분이 나오도록 하는 ‘룰렛’ 등 동판화 도구들.

얇은 선을 파내는 '니들', 잘못 팠을 때 금속판을 강하게 문질러 틈을 메우는 ‘버니셔’, 불규칙한 점들을 새겨 찍으면 어두운 부분이 나오도록 하는 ‘룰렛’ 등 동판화 도구들.

소중 학생기자단이 니들로 아연판을 깎는 사이 이 강사가 주의사항을 말했어요. “제일 진하게 나오게 하고 싶은 선을 1차로 깎아 아연판을 5분 동안 산성이 강해 금속을 녹이는 데 쓰이는 철과 염소의 화합물인 염화제이철에 넣을 거예요. 2차로 중간 굵기의 선은 2분 동안, 3차로 깎은 나머지 선은 30초 동안 염화제이철에 담글 거예요. 1차로 깎은 선은 3차까지 총 7분 30초 동안 들어가게 되는데요. 니들로 깎은 곳은 염화제이철이 침투해 부식되고, 부식 시간이 길수록 선의 깊이가 깊어지죠. 시간은 원하는 선의 깊이에 따라 알아서 조절하면 돼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니들로 아연판에 새겨진 이미지의 선을 깎고 염화제이철에 아연판을 넣는 1~3차 과정을 진행했어요. “염화제이철은 산성이 강하기 때문에 작업 시 꼭 장갑을 착용해야 해요. 염화제이철에 담근 아연판을 쉽게 꺼내고 들 수 있는 손잡이 역할을 하도록 아연판 모서리에 산성에 강한 마스킹테이프를 길게 붙이죠. 아연판을 한 번 염화제이철에 담갔다 뺄 때마다 면 망사로 아연판의 물기를 제거해줍니다.” 니들로 깎고 염화제이철에 담그는 작업이 끝나면, 그라운드 리무버를 붓으로 골고루 발라 아연판의 그라운드를 제거하고 물로 씻어줘요.

김서윤 학생기자가 아연판에 새긴 햄스터 이미지.

김서윤 학생기자가 아연판에 새긴 햄스터 이미지.

점도가 높아 미끄러운 아연판에 잘 달라붙는 동판화용 잉크를 고무헤라에 손톱만큼 덜었어요. 서윤 학생기자는 검정색, 민하 학생기자는 초록색 잉크를 골랐죠. 선을 깎고 부식 과정을 거친 아연판 면에 고무헤라를 이용해 잉크를 골고루 펴 발라요. 그다음 면 망사를 야구공처럼 만들어 원을 그리며 살살 닦고, 인견(인조견)으로 한 번 더 꼼꼼히 닦아줘요. “그 사이 그림을 새길 A5 켄트지를 물에 5~10분 동안 담가 부드럽게 만들어요. 켄트지가 물을 먹어 부드러워지면 잉크가 발라진 아연판과 압축 시 아연판에 잘 달라붙고 잉크도 잘 흡수해 그림 형태가 잘 나오죠. 단, 물이 뚝뚝 떨어지지 않게 켄트지를 어느 정도 잘 털어줍니다.” 잉크를 바른 아연판 면 위에 물에 담갔던 켄트지를 올려요. 그 위아래로 갱지를 깔아준 뒤 프레스기로 눌러주면 켄트지에 아연판에 새겼던 선들이 옮겨져 그림으로 나오죠. 소중 학생기자단이 돌아가면서 프레스기에 달린 손잡이를 있는 힘껏 돌려 자신의 아연판에 압력을 가해봤어요. 압력을 가한 후 물기가 남아있는 켄트지는 벽 등에 붙여 말리는데요. 떼어낼 때 켄트지에 손상이 없도록 종이테이프를 켄트지 사방에 붙입니다.

아연판에 붙인 마스킹테이프는 산성 물질에 손을 대지 않고 아연판을 담갔다 뺄 수 있게 도와준다.

아연판에 붙인 마스킹테이프는 산성 물질에 손을 대지 않고 아연판을 담갔다 뺄 수 있게 도와준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면 망사로 아연판에 남은 잉크를 닦아내고, 서로 사용한 색깔을 바꿔 아연판에 한 번 더 잉크를 발라 찍어봤어요. “잉크를 완전히 닦아내려면 프린트클리너를 이용해야 해요. 붓으로 프린트클리너를 아연판에 펴 발라 휴지로 닦아내는 걸 2번 반복해요. 동판화 작업을 마무리하고 아연판을 정리하려면 에탄올을 휴지에 적셔 아연판에 발라 기름기를 제거하면 됩니다.” 켄트지가 마른 뒤 종이테이프를 제거한 소중 학생기자단은 완성된 동판화를 보자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죠. 민하 학생기자가 “집에서도 쉽게 동판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라고 질문했어요. “집에서 한다면 에칭보다 산성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드라이포인트’를 추천해요. 드라이포인트는 금속판 대신 아크릴판을 써도 되죠. 큰 프레스기의 가격과 부피가 부담되고, 찍을 대상이 작다면 미니프레스기를 구매해 써도 돼요. 미니프레스기·금속판·아크릴판·니들 등의 재료들은 온·오프라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답니다.”

그라운드 리무버로 아연판 겉에 바른 그라운드를 제거하는 모습.

그라운드 리무버로 아연판 겉에 바른 그라운드를 제거하는 모습.

서윤 학생기자가 “강사님이 생각하시는 판화의 매력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어요. “판을 만들고 찍어보기 전까지 이미지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내 예상을 벗어나 다르게 이미지가 나오는 지점들이 재미있고 자유롭게 미술을 하는 기분이 들게 하죠. 흰색 도화지를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이미지가 어떻게 나올까’ ‘잘 찍힐까’ 하는 기대와 궁금증이 판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켄트지의 물기를 말리려 벽에 붙일 땐 손상되지 않게 종이테이프를 이용한다.

켄트지의 물기를 말리려 벽에 붙일 땐 손상되지 않게 종이테이프를 이용한다.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저는 이번에 디비판화작업실을 방문해 다양한 판화 종류 기법에 대해 배우고 판화에 필요한 도구들을 봤어요. 그중 날카로운 니들로 아연판을 깎아 찍어내는 동판화를 해봤는데요. 동판화를 체험하면서 판화의 매력을 알아가게 됐죠. 처음엔 동판화를 만드는 과정을 따라가기 힘들었지만, 작업할수록 완성돼 가는 동판화 작품을 보며 정말 뿌듯했습니다. 특히 아연판을 깎고 잉크를 바르고 프레스기로 압력을 주는 등의 과정이 참 흥미로웠어요. 판화가 좀 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는 미술 분야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서윤(서울 도성초 6) 학생기자

디비판화작업실에 가서 판화에 대해 자세하게 듣고 직접 판화를 만들어봤어요. 판화는 고무판으로만 만드는 줄 알았는데, 동판화·지판화·석판화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그리고 찍어내는 게 신기했죠. 판화를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아연판을 이용해 동판화를 해봤는데요. 동판에 원하는 그림 도안을 새기고 뾰족한 니들로 그림의 선을 따라 판 다음, 산성이 강한 염화제이철에 아연판을 1·2·3차로 나눠 넣어 판 부분을 녹슬게 했죠. 동판화용 잉크를 발라 문지른 뒤 프레스기에 넣어 종이에 찍으면 동판화가 완성돼요. 동판화 만들기를 직접 해보니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판화에 빠져보는 걸 추천합니다.
-황민하(경기도 부천동곡초 6) 학생기자

동행취재=김서윤(서울 도성초 6)·황민하(경기도 부천동곡초 6) 학생기자, 참고도서=『매일 판화: 처음이어도 괜찮아!』(더디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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