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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고교 파워인맥’ ④ 진주고] ‘CEO의 요람’, 4대 그룹 두루 포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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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진주 출신 3대 부자’. 진주 사람들의 고향 자랑에서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고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가 빠지지 않는다. ‘부자들의 고향’ 진주의 대표 명문 진주고 재계 인맥을 해부한다.


학창시절 천재 소리를 듣던 공부벌레가 취직하지 않고 서울 동대문에서 양말장사를 했다. 그런데 양말 파는 재주가 남달라 한 해 100억 원어치를 넘게 팔았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어느날 갑자기 잘나가던 장사를 때려치우고 피잣집을 차렸다고 한다.

세 가지 이야기 중 어떤 이야기가 진실이고, 어떤 이야기가 거짓일까? 정우현 한국미스터피자 회장은 “모두 내 이야기”라며 빙그레 웃는다.

진주고 시절 뛰어난 성적으로 1~2등을 다퉜던 정 회장은 1970년대 중반 아내의 권유로 장인이 운영하는 동대문 양말도매상에 들어가 장사를 배웠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쳤던 그는 7년 만인 1977년 아예 장인의 회사를 인수했다. 10년 뒤인 1988년에는 양말장사로 1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며 ‘동대문 거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쯤 되면 안주할 만도 하건만 1990년 그는 난데없이 장사를 그만두고 일본에서 미스터피자를 들여와 피잣집을 열었다. 주변에서는 “미쳤다”고 했다. 그는 “많이 듣던 소리”라며 개의치 않았다. 15년 뒤 그의 1년 매출은 1,800억 원으로 늘었다. 매장은 서울에만 80개에 달한다.

무모한 시작이 대성공으로 끝난 사례는 또 있다.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는 20세 때 서울유학을 마치고 진주로 귀향해 “장손이 장사라니 안될 소리”라며 반대하는 부친을 설득해 얻어낸 돈 2,000원과 동생 구철회 LG그룹 창업고문이 보탠 돈 1,800원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장마로 가게가 물에 잠기고, 대홍수로 점포가 떠내려가는 등의 우여곡절 속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구 회장은 결국 LG그룹을 일궈냈다.

LG그룹은 진주를 발원지로 사업을 일으키면서 자연스럽게 창업 1~2세대 상당수가 진주지역 최고 명문인 진주고 출신이다. 우선 고 구인회 회장의 형제 중에서는 셋째동생인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과 넷째동생 구평회 E1명예회장, 막내동생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이 진주고를 나왔다.

LG·GS·LS, 진주고 출신 ‘북적’

2세대 중에서는 고 구 회장의 장남인 구자경 LG 명예회장, 셋째아들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 넷째아들 구자두 LG벤처투자 회장 등이 진주고 출신이다. 또 고 구 회장의 첫째동생인 고 구철회 LG창업 고문의 장남 구자원 넥스퓨처 회장, 구태회 회장의 장남 구자홍 LS그룹 회장도 진주고를 나왔다.

사돈 집안인 허씨 가문에도 진주고 출신이 꽤 있다. 고 허준구 GS건설 명예회장은 진주고 13회 졸업생으로 구씨 가문과는 사돈이면서 동문이다. 허준구 명예회장의 형인 고 허학구 LS전선 부사장은 졸업하지는 않았지만 진주고에 다녔던 적이 있다.

고 허학구 부사장은 키가 6척으로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편이었는데, 그 덕에 경기고등보통학교에서 농구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부친인 고 허만정 LG그룹 공동 창업주가 “운동 그만두고 공부나 하라”며 진주고로 전학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큰 키에 뛰어난 운동신경까지 갖춘 그는 진주고에서도 눈에 띌 수밖에 없었고, 전학 온 학교에서마저 농구를 시키려고 했다. 그러자 부친은 아예 그를 일본으로 유학보내 공부를 시킨 뒤 락희화학에 입사시켰다고 한다.

고 허 부사장은 LG전선 부사장을 지낸 뒤 1970년 구자경 회장이 LG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하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밖에 허동수 LG칼텍스정유 회장, 허창수 LG건설 회장, 허정욱 물투스코리아 회장 등도 진주고 출신이다.

오너들뿐 아니라 LG에는 진주고 출신 CEO가 꽤 있다. 현직에는 김종은 LG전자 유럽총괄사장, 서기홍 LG전자 부사장, 최만복 LG전자 중국지주회사 부사장 등이 대표적이며, 전직 CEO 중에는 성재갑 전 LG석유화학 회장, 이수호 전 LG상사 부회장 등이 진주고 출신으로 이름을 날린 인물들이다.

임원급으로는 LG전자의 최만복 부사장을 비롯해 손 준 상무, 송대현 상무, 황일훈 상무, 정현출 상무 등이 활약하고 있다. 이 밖에도 정천수 LG파워 사장, 박희갑 LG석유화학 상무, 이한상 LG필립스LCD 상무, 양재현 LG생활건강 상무 등도 진주고 출신이다.

LG에서 분가한 GS그룹과 LS그룹에서도 진주고 출신들은 쉽게 눈에 띈다. GS그룹에는 이휘성 GS건설 부사장, 하용득 GS건설 전무, 김영수 GS칼텍스 상무, 강호정 GS리테일 상무 등이 있고, LS그룹에는 권봉현 LS산전 이사, 임병창 LS전선 자문역 등이 재직 중이다.

이들 중 이수호 전 회장은 LG그룹 CEO로 있다 지난해 말 한국가스공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화제를 낳았다. 그는 민간기업 출신으로는 첫 가스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이 사장은 취임 후 단순한 LNG 수입·공급에서 벗어나 한국가스공사를 국외 가스전 개발에 직접 참여시키고 있다. 중동과 중앙아시아 등 가스전 개발지역은 하나같이 오지에 있지만 이 사장은 9개월 동안 10여 차례 출장길에 올랐다. 환갑을 넘은 나이가 무색한 열정이다.

덕분에 가스공사는 우즈베키스탄 정부와 ‘우준쿠이’ 광구 탐사협정을 체결했고, ‘수르길’ 광구는 개발·생산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지난주에는 동티모르와 호주의 공동개발구역에 위치한 해상 광구 개발권을 따냈다. 가스공사 주가가 올해 10% 넘게 오른 것도 자원 개발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이 사장이 국외사업에 전력투구하는 것은 LNG 시장이 급격히 공급자시장으로 변모하면서 갈수록 수입물량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고유가와 중국·미국을 중심으로 한 LNG 수요 증가로 수출국 권한이 막강해진 것이다. 게다가 LNG는 원유와 달리 현물시장 거래가 거의 없고 95% 이상이 20~30년짜리 장기 계약으로 이뤄져 수입 국가들은 물량 확보를 위해 안절부절못하는 실정이다.

진주고 출신 ‘별’ 4대 그룹에만 50여 명

이 사장은 “LNG는 석유와 달리 별도 플랜트를 지어야 운송할 수 있는데 보통 조 단위 비용이 든다”며 “이런 이유로 산유국들은 개발 단계부터 참여하는 기업에만 물량을 배정한다”고 말했다. 세계 LNG 시장에서 두 번째로 큰 수입국가인 우리나라로서는 안정적 공급을 위해 개발사업에 적극 뛰어들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국외 가스전 개발과 관련해 이 사장이 올해 가장 큰 기대를 거는 것은 러시아와의 가스협력협정 체결이다. 그는 “늦어도 11월께는 협정을 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과 개발 단계에서부터 파트너가 될 수 있고 추가 도입 물량 확보도 쉬워진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도 그가 공을 들이는 지역이다. 가스공사는 우준쿠이 광구(추정 매장량 약 2억t) 탐사와 아랄해 남쪽 수르길 가스전(확인 매장량 8,400만t) 개발에 대해 연내에 투자 결정을 할 예정이다.

삼성에서는 1967년에 고교를 졸업한 37회 3총사가 눈길을 끈다.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 이상현 삼성전자 상담역, 박양규 삼성네트웍스 사장이 모두 진주고 37회 동기다. 경남 부지사로 근무 중인 강정호 전 한국선물거래소 이사장도 동기다.

삼성에는 이들 3명 외에도 최우석 삼성전자 상담역 등 다수의 진주고 출신 최고경영자가 있다. 임원급으로 범위를 넓혀 보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삼성에서 현직으로 활동 중인 진주고 출신 임원은 이현봉 생활가전 총괄사장을 필두로 이지섭 LCD 총괄부사장, 김현덕 경영지원 총괄부사장, 최진균 스토리지 사업담당 부사장, 윤창현 전무, 권강현 상무보 등 삼성전자에만 6명이 있고, 삼성SDI에도 박창배 자문역을 비롯해 조석래 상무, 장윤한 상무보 등이 활약 중이다.

이 밖에도 삼성에는 김규일 삼성에버랜드 상무보, 하문근 삼성중공업 상무보, 박성훈 삼성석유화학 전무, 서정국 제일모직 전무, 김 규 제일기획 상임고문, 정대홍 삼성코닝 상무, 정길영 전 삼성카드 상무, 정영만 삼성화재 전무 등 무수히 많은 진주고 출신이 포진해 있다.

최우석 상담역은 “진주고 졸업생은 자기 사업을 해 성공한 사람보다 전문경영인으로 성공한 사례가 많다”며 “진주 사람들은 매우 우직한 편이어서 한 직장에 들어가면 거의 한눈을 팔지 않기 때문에 많은 동문이 전문경영인으로 성공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삼성과 LG 이외의 4대 그룹에도 진주고 출신 다수가 둥지를 틀고 있다. 범 현대그룹에는 이창래 현대제철 전무, 하원만 현대백화점 사장, 최상웅 KCC건설 사장, 하종윤 현대중공업 전무, 이철희 현대중공업 상무, 김정수 현대모비스 이사, 정현성 현대모비스 이사, 김일규 현대건설 상무, 강보석 현대건설 이사대우, 임윤택 현대종합상사 상무보, 김희규 현대중공업 이사 등이 근무 중이다.

범 현대그룹의 진주고 출신 인사 중 대표주자로는 김동진 현대자동차 부회장을 꼽을 수 있다. 김 부회장은 현대차 내에서 정몽구 회장의 오른팔로 여겨지는 핵심 측근. 해외공장 건설 등 오너의 결심이 필요한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상적인 경영 활동은 총괄 부회장인 그의 결재로 집행된다.

실세로 부각됐다 하면 경질되기 일쑤인 현대차에서 그가 사장 시절이던 2001년부터 6년째 현대차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것에서도 그에 대한 정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그는 2004년 현대차 그룹이 100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대신 자신이 사법처리를 받는 충성심을 과시하기도 했다. 당시 김 부회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가 지난해 5월 석가탄신일에 특별 사면됐다.

당시 정몽구 회장은 소환 한 번 받지 않고 불입건 조치돼 김 부회장이 오너를 대신해 총대를 멨다는 견해가 많았다.

김 부회장은 한국과학기술연구소와 국방과학연구소를 거친 뒤 1978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영입됐다. 현대정공에서 K1탱크의 국산화를 주도해 정 회장의 신임을 얻은 그는 현대우주항공 사장을 거쳐 2000년 현대차의 상용차담당 사장으로 옮겨왔다. 2001년 9월 현대차 사장에 올랐고, 2003년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왼쪽부터) 고종완 RE맴버스 대표,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 구평회 E1 명예회장

엔지니어 출신으로는 드물게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그는 자동차산업 전반에 걸친 해박한 지식에 세심한 일처리와 과감한 추진력까지 겸비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SK에서는 김수필 SKC 부회장, 김태진 SK네트웍스 상무, 강동진 SK증권 상무 등이 진주고 출신이다.

진주고 출신 CEO 중 샐러리맨들에게 우상과 같았던 존재인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손 회장은 오너의 친인척이나 창업공신이 아니면서 대기업 총수 자리에 오른 유일한 전문경영인이다.

진주에서 나고 자란 손 전 회장은 진주고 29회 졸업생. 서울대 상대를 거쳐 1965년 선경직물에 입사해 외길을 걸어 33년 만인 1998년 SK그룹 회장이 됐다. 유학에서 갓 돌아온 최종현 부사장의 ‘삼고초려’성 권유로 당시 중소기업이던 선경직물에 입사했다. 진주고 동문들은 “손 회장은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고 놀기도 좋아하는 만능 학생이었던 것으로 회자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후배들은 “손 회장이 고교 시절 ‘Light House’라는 서클을 이끌며 봉사활동을 해 선후배들의 신임이 두터웠다”고 회고했다. 또 학창시절 라인강의 기적을 책을 통해 알고서는 경제 발전이 구국의 길이라고 믿고 법대로 진학하라는 친지들의 권유를 마다하고 서울대 상대를 선택했다고 한다.

평사원에서 CEO 오른 입지전적 인물 많아

그는 한 신문 인터뷰에서 성공 비결을 묻자 “우리나라를 잘살게 하자는 데 일조하자는 신념을 갖고 열심히 일해 온 것밖에 없다. 일은 나를 지탱해 주는 삶의 가치요,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성공은 결코 멀지 않다”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철학을 밝힌 바 있다.

▶(왼쪽부터) 서두칠 동원시스템즈 부회장, 성재갑 전 LG석유화학 회장,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 이수호 한국가스공사 사장

김승정 전 SK글로벌 부회장, 김수필 SKC 부회장 등도 진주고 동문이다. 김 전 부회장은 전경련 손병두 전 부회장과 함께 전경련 공채 2기 출신으로, 손길승 전 회장의 추천으로 SK맨이 됐다. 손 전 부회장과는 진주중 동기동창이다.

4대 그룹은 아니지만 한화에서는 구조조정본부 부회장까지 오른 박원배 한화석유화학 회장의 활약이 눈부시다. 박 회장은 한화의 석유화학을 포함한 제조부문 전반의 경영을 지휘하고 있다. 박 회장은 구조조정의 달인으로 불리는 동원시스템즈의 서두칠 부회장과 동기다.

이밖에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 정종근 한보그룹 회장(목재·관광소그룹), 박경재 송원산업-칼라 회장, 박명식 한국컴퓨터 회장, 오정환 전 르노삼성자동차 부사장 등도 진주고 출신이다. 학습지를 발판으로 신흥 교육대기업으로 발돋움한 대교그룹 강영중 회장, 넥센-넥센타이어와 부산방송을 거느리고 있는 강병중 회장 등도 진주고를 나왔다.

이들 중 강영중 회장은 대한배드민턴협회장, 아시아배드민턴연맹 회장, 국제배드민턴연맹 회장 등 배드민턴 관련 국내외 기구의 수장을 맡으며 유별난 ‘배드민턴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강 회장은 진주고 재학 시절 천부적인 배드민턴 소질을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왼쪽부터) 이현봉 삼성전자 생활가전총괄, 정용근 농협 신용부문 대표,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

그가 처음 배드민턴을 접한 것은 진주고 1학년 때. 체육선생님이 시골 학교에서는 보기 어렵던 배드민턴을 치는 것을 보고 매료돼 가르쳐 달라고 조른 것이 계기가 됐다. 놀라운 것은 그가 단 20분 만에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을 정도의 실력을 쌓았다는 것. 이후 배드민턴은 강 회장뿐만 아니라 전 가족의 스포츠가 됐고, 30여 년째 온 가족이 배드민턴을 즐기고 있다.

진주고 출신으로 평사원에서 CEO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 중에는 하진홍 진로 사장도 있다. 그는 하이트맥주의 전신인 조선맥주에 입사해 30년 이상 하이트에 몸담아온 맥주 전문가다. 대학에서 식품을 전공한 그는 발효주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효모를 컨트롤하는 데 따라 맥주 맛이 달라지는 데 매력을 느끼고 이를 연구하고 싶어 맥주회사에 들어갔다는 그는 입사 이후 대학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성실파다.

하이트그룹이 진로를 인수하면서 CEO로 등극한 그는 M&A 이후 ‘점령군’과 ‘피점령군’ 사이에 생기게 마련인 조직갈등을 잘 관리하면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 스타일인 그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은 물론 말보다 실천으로 옮기는 행동파의 면모를 보이면서 직원들의 신뢰를 얻었다.

▶(왼쪽부터) 하원만 현대백화점 사장, 허동수 LG칼텍스 회장, 허준구 GS건설 명예회장

하 사장은 지난해 9월 진로 사장에 취임하던 날 80여 명의 팀장급 이상 직원과 회식 자리를 마련해 일일이 잔을 주고받아 혼자서만 ‘참이슬’ 6병을 마셨다. 그는 이 자리에서 진로 직원들에게 “법정관리라는 엄청난 시련 속에서도 오히려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며 참이슬을 절대강자로 지켜온 임직원들을 존경한다”며 한껏 몸을 낮추며 신뢰를 얻어나갔다고 한다.

올해는 “시대 흐름을 따라야 한다”는 임직원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진로의 상징인 두꺼비를 미소짓는 얼굴로 바꾸고 참이슬도 알코올 도수 20.1도로 리뉴얼했다. 그 결과 진로는 올해 참이슬 판매 100억 병을 돌파하는 등 새롭게 출발하는 원년이 되고 있다.

요즘 부자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몇 손가락 안에 들 법한 인물인 고종완 RE멤버스 사장도 진주고 출신이다. 경남 하동 출신인 고 대표는 진주고를 거쳐 부산대 법대를 나왔다. 사시와 행시에 도전했다 쓴 잔을 마시고 대기업에 취직했다.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한 뒤 한국통신으로 옮겨 인사·교육·자금 등 관리부서를 두루 거치며 부장까지 지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숭실대 노사관계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따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여느 샐러리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한국통신 부장으로 재직할 때 부동산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다. 사실 자격증을 딸 때만 해도 꼭 부동산중개사를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노후를 생각하다 일단 자격증을 따 놓자는 마음이 더 강했다고 한다.

‘부자 마케팅’ 원조 고종완 사장도 동문

하지만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일.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그의 인생도 급변하기 시작했다. 1998년, 고 대표는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퇴직 후 그는 명퇴금으로 받은 1억5,000만 원을 투자해 부동산중개소를 차렸다. 또 주변의 권유로 3억 원을 주식과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처절한 실패였다. 퇴직 후 불과 2년 새 목숨과도 같은 퇴직자금을 모두 날린 그는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

그는 원점에서 다시 새롭게 출발하기로 했다. 부동산 정보를 제공하는 ‘지식장사’ 길에 나섰다. 건국부동산경제연구소를 세워 1인기업인으로 활동했다. 우선 당시 가장 유망하다고 판단한 경매와 재건축시장에 주목했다. 경매와 재건축에 관한 정보를 경제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 제공하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컨설팅사업도 벌였다.

그가 제공하는 정보가 정확하고 유익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네티즌 사이에서 서서히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족집게 강사’로 소문나면서 몸값도 올랐다. 상담료는 처음에는 1건 1시간에 10만 원이었으나 30만 원, 50만 원으로 점점 올랐다.

RE멤버스를 차린 것은 2002년. 인터넷에 정보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신문·라디오·TV 등에 출연하면서 대중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아졌다. 부동산시장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일반인에게 쉽게 제공하는 강연 스타일 덕에 그는 금세 스타 강사로 발돋움했다.

고 대표의 부동산 컨설팅이 성공한 더욱 중요한 요인은 국내 부동산 부자들을 겨냥한 부자 마케팅 때문이었다. “당시 PB사업(프라이빗 뱅킹: 거액 자산가의 자산관리를 도와주는 비즈니스)을 막 시작한 은행 쪽에서 은행원의 부동산 교육을 위해 저를 초빙했어요. 우리나라 거액 자산가들은 재산의 80%를 부동산 형태로 보유하고 있는데 정작 은행원들은 부동산 지식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고 대표는 올해부터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우선 ‘고고에듀(GoGoEdu)’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금융인과 건설업계 사람을 대상으로 한 부동산 사이버 전문 교육기관이다. ‘고고’라는 이름은 ‘고시 3관왕’ 출신으로 주식투자가로 이름을 날리는 고승덕 변호사와 자신의 성을 따 붙였다. 또 ‘고고에셋’이라는 회사도 설립했다. 부동산 개발 종합 컨설팅회사로서 사업계획부터 자금조달, 분양까지 책임진다. 벌써 경기도 용인에 프로젝트 관리 수수료만 100억 원짜리 주상복합건물을 수주했다.

진주고 출신 금융업계 종사자 중에서는 정용근 농협중앙회 신용사업 대표의 활약이 눈에 띈다. 지난해 5월 농협의 금융사업을 총괄하는 자리에 오른 정 대표는 지역공동체 성격이 강했던 농협을 명실상부한 종합 금융그룹으로 탈바꿈시키는 청사진을 펼치고 있다. 정 대표는 과거 농협 중앙회장이 수행해 왔던 금융분야 최고경영자의 역할을 위임받아 130조 원대의 자산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정 대표는 경남 하동 출신으로 진주고, 서울대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경영대학원을 나와 경남·서울지역본부 본부장을 역임했다. 신탁부·상호금융기획부·자금부 부장을 비롯해 22년간 금융분야에서 근무한 금융전문가로 통한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시중은행이 지주회사 설립 등을 통해 금융그룹화하는 추세에 발맞춰 농협도 종합 금융그룹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세종증권을 인수해 NH투자증권으로 이름을 바꾸고 ‘한우펀드’ 등 독특한 금융상품을 내놓은 것도 그가 그린 밑그림의 일부다.

그는 평소 ‘농협은 농업과 농촌만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면 된다’는 농협 내부의 일부 시각에 대해 “농민과 농업분야는 수익 창출의 대상이 아니라 지원 대상”이라며 “상업금융을 통해 창출한 수익으로 농업과 농촌을 지원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혀 왔다.

또 경남지역본부장 재직 시절에는 “농산물시장은 언젠가는 결국 개방되고 말 것인 만큼 수입 농산물과 어떻게 싸울지를 미리 고민해야 한다”며 농산물 수출 판로 개척에 나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주식에 관심을 둔 적이 있는 중년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만한 이름인 박종규 현대해상투자자문 사장도 진주고 출신이다. 그는 1990년대 펀드매니저의 요람이던 한국투자신탁에서 1세대 스타 펀드매니저로 명성을 날렸다.

현재 한화투신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영일 상무는 당시 한투에서 박 사장과 함께 드림팀을 이뤘던 멤버. 두 사람은 진주고 선후배 사이다. 박 사장은 최근 메리츠투자자문에서 자리를 옮겨 현대해상화재 계열의 현대해상투자자문 사장에 선임됐다.

펀드매니저로서의 박 사장의 명성은 화려함 그 자체다. 1992년부터 3년간 한투에서 평균수익률 1위, 1997년과 1998년에는 2년 연속 수익률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또 1998년에는 당시 투자신탁협회(현 자산운용협회)로부터 펀드 수익률 1위 펀드매니저로 선정됐다.

16년 동안 몸담았던 한투를 떠나 LG투신운용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자신이 운용한 뮤추얼펀드 ‘트윈스 챌린지 1호’가 최단기 수익률 100%를 달성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에는 펀드매니저 스카우트시장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스타급 펀드매니저로 대우받으며 스카우트되기는 아마도 제가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패션업계에서는 진주고 동문 간 혈투

이 때문에 그가 모 방송사 <신인간시대>라는 휴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펀드매니저라는 직업이 세간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다. 특히 박 사장의 펀드 운용 실력은 요즘과 같은 변동성이 큰 약세장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IMF사태 직후인 1997~98년 당시 지수는 연 25~30% 급락한 시절이었지만 박 사장이 운용한 펀드는 거의 손실을 보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국내 투자시장에서 생소한 개념이었던 가치투자 지표들을 실전에 접목해 그는 ‘저PER(주가수익률) 혁명’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국내 패션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 중인 진주고 출신 CEO들의 활약도 화제다.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과 제환석 FnC코오롱 사장이 주인공. 두 사람은 진주고 동문이고 서울대 상대 출신인데다 평사원으로 출발해 대기업 CEO에 올라 샐러리맨의 성공신화를 보여줬다.

제환석 사장과 제진훈 사장은 각각 진주고 35회와 37회. 제환석 사장은 기획 전문가며 제진훈 사장은 재무 전문가로 분야는 다르지만 전문성을 인정받아 그룹 내 핵심 실세 자리에 올랐다. 두 사람은 모두 공격경영을 선호하는 탓에 국내 1위를 놓고 한치의 양보도 없는 싸움을 연출하고 있다.

제환석 사장은 최근 그룹 임원 인사에서 코오롱패션 대표를 겸직함으로써 코오롱을 움직이는 실세로서의 위상을 재확인했다. 제 사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곧바로 코오롱에 입사해 만 31년을 개근한 전통 코오롱맨. 1997~2001년 경영지원본부장·구조조정TF팀장 등을 거치면서 코오롱상사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기획통이다.

패션에는 문외한이던 제환석 사장은 FnC코오롱을 맡으면서 대기업 계열사이던 회사를 철저한 패션사로 탈바꿈시켰다. 패션 전문사에 걸맞은 사무환경을 조성하라고 특명을 내려 딱딱한 사무실 분위기를 의류매장 분위기로 바꾸었다. 최근에는 1~2일에 불과한 생선 유통에서 그 비결을 배우고자 10여 명의 임원과 경기도의 한 생선가게를 찾기도 했다.

제진훈 사장은 경남 산청 출신으로 부산대 경영학과를 나와 한양대·숭실대에서 경영학 석·박사를 따고 1996년 일본 게이오대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1974년 삼성에서 출세하기 위한 관문인 제일모직 경리과에 입사한 그는 이후 1997년까지 23년간 제일모직의 기획·재무·경영지원을 담당했다. 이후 삼성물산 부사장, 삼성캐피탈 사장을 거쳐 제일모직 사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제진훈 사장은 새벽 4시에 일어나 6시에 출근해 부지런하기로는 국내 CEO 중 단연 으뜸이다. 전임 사장들이 수직적·보수적 경영을 펼친 데 반해 관리형 CEO로서 수평적 팀제 중심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장려해 직원들의 역량을 이끌어내고 있다.

왜 진주고등학교를 주목하나?

주민 피땀으로 직접 건설한 ‘지역공동체’…장학사업도 활발

진주 지역 주민들의 사재출연과 무상노역으로 완공된 진주고 교사.

진주고는 오랜 역사를 지닌 국내 대부분의 학교처럼 일제 강점기 후진 양성을 목적으로 지역 유지들이 뜻을 모으면서 시작됐다. 1919년 3·1운동이 실패로 끝난 뒤 허만식(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장인) 씨 등 진주지역 유지들은 “신지식을 갖춘 인재를 길러야 한다”며 학교를 세우기로 하고 사재를 털었다.

그러나 3·1운동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일제가 학교 설립을 허락하지 않자 이들은 “대신 여성들이라도 가르치게 해 달라”고 요청해 허가를 받아냈고, 이 학교는 현재의 진주여고가 됐다.

수년 뒤 진주지역 유지들은 다시 모여 학교 설립을 재시도했다. 1925년 진주지역 유지들은 일제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사립학교를 세우는 대신 일단 경상남도 공립 사범학교의 교사를 일부 빌려 5년제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로 개교했다. 이듬해 돈이 있는 유지들은 학교터 매입과 공사비를 대고, 내놓을 것이 없던 주민들은 터파기 등에 무료로 노동력을 제공해 마침내 비봉산 자락에 현재의 진주고 교사를 완성했다.

당시의 학생 수는 10학급 500명으로 적지 않은 규모였다. 1938년 조선교육령이 개정되면서 진주공립학교로 바뀌었다가 광복 후 교육법에 따라 6년제 진주중학교로 또 한 번 이름이 바뀐다.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당시 진주중학교 1~3학년 학생들은 진주북중학교로 분리되고, 5~6학년은 고등학교 2~3학년으로 편입됐다.

지역 주민들이 십시일반 힘을 보태 세운 공동체 개념이 강해서인지 진주고는 동문들이 후원하는 장학금 제도가 잘 정비된 학교로 유명하다. 현재 진주고에는 학년별로 3명에게 1년에 120만 원씩 총 1,080만 원을 지급하는 비봉장학회를 비롯해 소금장학회·28/31장학회·우송장학회·한올장학회 외에도 동창회장장학금 등 개인 명의의 장학금을 포함해 10개가 넘는 장학금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이들 중 비봉장학회는 개인의 작은 정성으로 시작돼 동문들이 힘을 보태면서 진주고 장학제도를 대표하는 규모로 성장한 사례다. 비봉장학회는 1990년 33회 졸업생인 재미교포 김병지 씨의 개인적 기부로 시작됐다.

1995년 8월에는 거금 1억 원을 보내 교육청에 정식으로 비봉장학회를 등록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진주고 동문이 앞다퉈 돈을 내놨고, 추후 손길승 전 SK 회장 등 진주고 출신 명사들까지 참여하면서 비봉장학회는 2002년 재단법인으로 등록해 이사회를 구성하는 등 제도를 정비하고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진주고는 유독 검사를 많이 배출한 학교다. 현직 검사 1,573명 중 22명이 진주고 출신으로 경기고·경북고 등에 이어 전국 고등학교 중 다섯 번째로 많다. 특히 경남지역에서는 부산고·경남고 등을 앞지르고 있다.

공부 못지않게 진주고 출신들은 축구실력이 뛰어나기로도 유명하다. 진주고 출신 축구선수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은 조광래 전 FC서울 감독. 80년대 초반까지 국가대표로 이름을 날렸던 조 전 감독은 은퇴 후 지도자로 전향해 선수시절 못지않은 명성을 얻었다. 1993년 대우축구단 감독으로 시작해 1998년부터 2004년까지 FC서울을 지휘한 그는 2000년에는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누렸다.

정일환 월간중앙 기자 [wh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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