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조' 9위 재벌, 공동창업 부인과 이혼소송…노소영보다 많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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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뉴스1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뉴스1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재산 중 SK㈜ 주식도 공동재산으로 분할 대상이다.”
최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을 맡은 2심 재판부는 지난달 30일 이렇게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최 회장의 SK㈜ 등 주식을 특유재산으로 봤지만, 2심에서 판단이 뒤집어진 것이다. 재산분할액이 1심 665억원에서 2심 1조3808억원으로 늘어난 핵심 이유다. 특유재산은 혼인 전부터 가진 재산과 혼인 중에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이라 이혼시 분할 대상에서 빠지지만, 혼인 중 함께 형성한 공동재산은 분할 대상이다.

재판부의 이런 판단은 과거 재벌가 이혼소송과 결이 다르다.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혼하면서 이 사장의 재산 약 2조5000억원 중 절반을 분할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2020년 재판부는 재산분할액으로 141억원만 인정했다. 이 사장의 보유 주식 대부분은 혼인 전부터 갖고 있었기 때문에 특유재산으로 분류됐다. 2022년 확정된 조승연(개명 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혼소송에서도 재판부는 조 전 부사장이 전 남편에게 줄 재산분할액으로 13억3000만원만 인정했다. 경영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식 지분은 분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게 기존 법원의 일반적인 판단이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왼쪽)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상임고문. 연합뉴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왼쪽)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상임고문. 연합뉴스

스티브 잡스, 이재용 사례 들며 “주식도 분할 대상”

반면 이번 ‘최태원-노소영’ 2심 재판부는 최 회장의 주식 지분도 분할 대상으로 봤다. SK㈜ 등 주식 재산의 초기 형성 과정에 노 관장의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이 “무형적 도움”이 영향을 줬고, 이후 주식 가치 증가에 배우자로서 노 관장의 기여가 있었다고 재판부가 봤기 때문이다. 최 회장 측 변호인은 주식은 분할 대상이 아니고 보수·상여 등만 분할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연봉으로 1달러만 받았던 미국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와 무보수 경영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례를 들며 보수·상여 등만 분할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번에 달라진 법원 판단이 재산의 대부분을 주식으로 보유한 기업인들의 이혼 소송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현재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최고비전제시책임자(CVO)는 배우자 이모씨와 이혼 소송 중이다. 미국 포브스에 따르면 권 CVO는 국내 9위 부자로 재산은 35억 달러(약 4조 8450억원)에 달한다. 이씨는 권 CVO가 보유한 스마일게이트 홀딩스 지분의 절반을 달라고 요구했다. 노 관장 이상의 재산분할 액수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스마일게이트는 권 CVO와 이씨가 공동창업한 기업이다. 초기엔 권 CVO가 지분의 70%를, 이씨가 30%를 갖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이씨의 재산 기여도가 높게 평가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만 이번 ‘최태원-노소영’ 2심 결과가 권 CVO 부부의 이혼소송에 직접 영향을 줄 가능성은 낮다고 법조계는 보고 있다. 전안나(전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는 “두 사례가 많이 다르다. 노 관장은 현금으로 재산분할을 요구했지만, 이씨는 주식 지분 현물 분할을 요구했다. 지분 분할은 경영권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일부 판사들은 기업 지분을 재산분할 범위에 안 넣는 쪽으로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최고비전제시책임자. 사진 스마일캠퍼스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최고비전제시책임자. 사진 스마일캠퍼스

주식 지분, 재산분할 대상인지 기준 없어 

또 형사 소송과 달리 이혼소송 재산분할은 재판부 재량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어, 이번 판결 결과가 다른 이혼소송의 재산분할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논문 ‘기업경영자의 이혼과 재산분할’에서 “우리 가정법원 재판 실무에서 재산분할은 광범위하게 사실심(1, 2심) 법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며 “(이런 문제 때문에) 분할대상재산의 규모가 매우 크고 이해관계인이 다수이며 법원이 분할의 영향을 예상하기가 어려울 때에는 법원을 포함해 여러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전 변호사도 “재산분할은 판사의 재량이 많이 작용한다”고 말했다.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볼 지에 대한 법적 기준은 없다. 판사마다 판단이 다르고, 학계에서도 통일된 의견이 없다. 이동진 교수는 “기업 경영자의 노무 성과 역시 실질적 공동재산”(논문 ‘기업경영자의 이혼과 재산분할’)이라며 보유 주식 가치의 상승분은 재산분할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논문에서 “경영자의 이혼과 같은 개인사와 무관하게 기업의 지배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여 원활한 경영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업용 재산을 이혼과 재산분할에 따른 위험으로부터 보호 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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