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에 꽂힌 프랑스 교수 “올림픽 넣자” 쿠베르탱 설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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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2호 23면

올림픽, 전설의 순간들  ① 마라톤의 탄생

1896년 첫 근대올림픽의 주경기장이자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마라톤 골인 지점인 판아테나이코 스타디온. [사진 위키피디아]

1896년 첫 근대올림픽의 주경기장이자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마라톤 골인 지점인 판아테나이코 스타디온. [사진 위키피디아]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큰 기대를 한 것 같지 않다. 흙부스러기나 돌멩이, 나뭇가지 등 흔한 재료를 사용해 만들었다. 그리스 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는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 대홍수로 인간이 멸종하자 이번엔 돌을 등 뒤로 던져 신인류를 만들었다. 성경 속 하느님이나 중국신화 속의 여와도 흙을 사용했다.

과학은 더 냉정하다. 인간은 원숭이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원숭이가 인간이 되려면 나무에서 내려와야 했다. 땅에 발을 디딘 원숭이는 어떤 행동을 했을까? 고 이어령 선생은 ‘브로드-캐스팅’이었다고 했다. ‘멀리(Broad) 던지기(Casting)’, 호신술로 짱돌을 집어 던졌다는 것이다. 신박하지만 과학적으론 검증하기 어렵다. 나무에 매달려 지내는 원숭이의 팔은 당기는 근육이 발달했다. 던지기는 익숙하지 않다. 유도 선수는 역도 선수보다 멀리 던지기 어렵다.

이집트 람세스 2세, 경쟁자가 없어도 달려

인간의 싸움 실력은 형편없다. 종합격투기 선수도 사자나 하이에나에겐 한입거리다. 나무에서는 내려왔는데 던지기는 서툴고, 살아날 방법은? 줄행랑뿐이다. 최초의 인간은 달리기 선수였으리라. 그렇기에 고대 세계에서 잘 달리는 능력은 신성(神性)을 내포했다. 호메로스가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읊은 서사시 「일리아스」의 주인공, 신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아킬레우스도 스프린터였다. 그는 최강의 전사다. 창을 휘두르며 지나가면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피가 내를 이룬다. 그런데 호메로스는 그를 ‘싸움짱’이 아니라 ‘발이 빠른’ 영웅으로 표현했다.

아킬레우스가 죽인 수많은 영웅 가운데 가장 큰 인물이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다. 둘도 없는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원수다. 헥토르는 잘 싸우다가 마지막 순간 두려움에 빠져 도망치다 붙들려 죽는다. 호메로스는 이렇게 읊었다. “헥토르가 성벽 밑에서 달아나자 발이 빠른 아킬레우스는 그의 뒤를 쫓았다. 독수리가 달아나는 비둘기를 덮치려 하듯. 이 달리기엔 말 잘 타는 장수 헥토르의 생명이 걸려 있었다. 두 장수는 트로이 성의 주변을 세 바퀴나 돌았다.”

필리피데스가 마라톤 평원을 달려 아테네의 승리를 전한 뒤 숨지는 장면을 그린 뤽 올리비에 메르송의 ‘마라톤의 병사’. [사진 위키피디아]

필리피데스가 마라톤 평원을 달려 아테네의 승리를 전한 뒤 숨지는 장면을 그린 뤽 올리비에 메르송의 ‘마라톤의 병사’. [사진 위키피디아]

아킬레우스는 개선하여 파트로클로스의 장례를 거행한 뒤 잔치를 연다. 그 잔치란 달리기, 마차경주, 레슬링, 권투, 창던지기, 검술, 포환던지기, 활쏘기 같은 운동 경기다. 아킬레우스가 연 운동 대회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신들에게 바친 제사다. 젊은 사나이들의 잘 발달한 신체는 신들을 기쁘게 할 제물이었다. 올림픽을 제전(祭典)이라고 일컫는 이유도 신들을 위한 잔치이기 때문이다.

고대올림픽은 올림피아에 신전을 둔 올림푸스의 주신 제우스에게 바치는 제전이었다. 기원전 776년에서 서기 393년 사이에 4년마다 개최되어 제293회까지 계속되었다고 본다. 초기에는 경기장 끝에서 끝까지 달리는 스타디온(Stadion) 경기만 열렸다. 스타디온은 거리의 단위다. 200m에 채 못 미친다. 스타디온 경기가 열리는 장소도 스타디온이라고 했다. 라틴어로는 스타디움(Stadium)이다.

올림픽에는 남자만 참가했다. 여자는 구경도 할 수 없었다. 몰래 보다가 발각되면 죽음을 면치 못했다. 선수들은 알몸으로 달렸다. 덜렁덜렁…. 기원전 724년 제14회 대회부터 경기장을 왕복하는 경주가 추가됐다. 기원전 708년 제18회 대회부터 레슬링과 5종경기(멀리뛰기·창던지기·단거리경주·원반던지기·레슬링) 등 종목이 점차 늘어 전성기에는 13종목에 이르렀다. 그래도 달리기는 가장 중요한 경기로 꼽혔다.

마케도니아의 정복왕 알렉산드로스도 발이 빠른 사나이였다. 그는 자신이 아킬레우스의 직계 후손이라고 믿었다. 누군가 달리기 경주에서 일부러 자신에게 져주자 엄청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일을 계기로 달리기를 그만두었지만 운동과 경기의 정치·사회적 기능에 대한 통찰은 남달랐다. 한번은 올림피아 대회에 참가해 달라는 초청을 받자 이렇게 대답했다. “나와 겨룰 만한 왕이 나온다면 참가하겠다.”

알렉산드로스와 겨룰 만한 왕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집트의 람세스 2세는 경쟁자가 없어도 달려야 했다. 무려 66년 동안 이집트를 지배한 그는 대관식에 앞서 파라오가 될 자격을 입증하기 위해 150m 길이의 트랙을 날듯이 달렸다. 잘 달리기 위하여 강장제를 마시고 신성한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약물검사를 했다면 통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30년 뒤에도 통치자로서 능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백성들 앞에서 같은 거리를 달렸다.

‘빠르기’는 신성만을 암시하지 않았다. 속도는 고대 세계에서 매우 현실적인 문제였다. 특히 군사력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됐다. 고대 지중해 세계의 지배자 그리스와 그 뒤를 잇는 로마의 군사력은 보병이 중심이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보병들은 눈부신 스피드로 상대를 압도해 승리를 거두곤 했다. 마라톤 전투가 그랬다.

당시 전령, 40㎞ 뛰고 죽을 만큼 약하지 않아

나라를 통치할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백성 앞에서 달렸다는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왼쪽). 올림픽 마라톤 첫 우승자인 스피리돈 루이스. [사진 픽사베이, 위키피디아]

나라를 통치할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백성 앞에서 달렸다는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왼쪽). 올림픽 마라톤 첫 우승자인 스피리돈 루이스. [사진 픽사베이, 위키피디아]

2004년에 아테네에서 올림픽이 열렸을 때, 필자는 중앙일보 올림픽 취재팀장을 맡아 후배들과 함께 현지에 파견되었다. 우리는 서울에서 그리스 신화를 외고 고대사를 공부했다. 아테네 행 비행기에서 한 후배가 말했다. “마라톤이 승전보를 전하고 기진해 죽은 전령을 기리는 경기라니 말이 안 돼요. 겨우 40㎞ 뛰고 죽는 전령이 어딨어요?” 우리는 모두 크게 웃었지만 아테네에 도착한 다음 생각을 바꿨다.

판아테나이코 스타디온은 1896년 첫 근대올림픽의 주경기장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열렸을 때는 마라톤 경기의 골인 지점이었다. 햇볕은 뜨겁고 공기는 건조했다. 조금만 걸어도 피부에 허옇게 소금 결정이 맺혔다. 마라톤 평원으로부터 아테네까지의 거리는 40㎞남짓. 9월 12일로 추정되는 전투가 벌어진 그 날 한낮의 대지를 달렸다면 탈수증이나 일사병에 걸려 목숨을 잃었을 수 있다.

마라톤은 아테네 북동쪽에 있다. 기원전 490년에 페르시아군 2만5000명이 이곳에 상륙했다. 아테네에서는 밀티아데스가 지휘하는 보병 1만 명을 보냈다. 밀티아데스는 높은 지대에 진을 친 다음 선제공격으로 승부를 걸었다. 아테네군은 언덕에서 내려가는 탄력을 이용해 보통 때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진격했다. 마지막엔 스프린터처럼 달렸다. 아테네군은 192명의 전사자만 내고 페르시아군 6400명을 살상했다. 이 역사적인 전투를 통하여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달리기, 마라톤 경기의 기원과 관련한 전설이 시작된다. 승전보를 전하려 아테네까지 쉼 없이 달린 전령 필리피데스(또는 페이디피데스)를 기리고자 마라톤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필리피데스가 마라톤에서 아테네로 돌아온 경로를 설명한 고대 문헌은 찾기 어렵다. 전령들은 훈련된 병사였을 것이다. 40㎞ 정도 달리고 죽을 만큼 약하지 않았다. 역사는 마라톤에서 승리를 거둔 밀티아데스의 보병이 해상을 통한 페르시아군의 공격에 대비해 33㎏나 되는 군장을 지고 3시간을 달려 아테네로 복귀했다고 전한다. 한 명도 죽지 않고.

필리피데스가 승전보를 전하고 죽었다는 이야기와 흡사한 고사(故事)는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지 500년 뒤 플루타르크의 「윤리론」에 등장한다. 현재의 마라톤 기원설과 흡사한 이야기는 2세기쯤 루키아노스가 썼다. 전쟁이 끝난 지 600년이나 지난 뒤다. 미국의 아테네 고전연구학회 이사였던 고고학자 제임스 머리는 루키아노스가 쓴 「진실된 역사」는 역사적 가치가 없다고 단언했다.

피에르 쿠베르탱의 회고에 따르면, 그리스 역사에 심취한 프랑스 소르본 대학의 미셸 브레알 교수가 1894년 쿠베르탱에게 마라톤 경기를 올림픽 종목으로 제안하였다. 브레알 교수는 마라톤에 ‘꽂힌’ 사람이었다. 쿠베르탱은 소극적이었지만, 브레알은 자기가 우승컵을 기증하겠다며 열성을 보였다. 올림픽 마라톤의 첫 우승자인 그리스 목동 스피리돈 루이스가 받은 이 컵을 ‘브레알 컵’이라고 한다. 마라톤은 브레알의 노력으로 올림픽 종목이 되었다. 그러니 마라톤 경기의 탄생지는 옛 그리스의 전쟁터가 아니라 프랑스 파리인 셈이다.

7월 25일 파리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올림픽의 역사와 의미를 새겨보는 기획 연재를 시작합니다. 여러 차례 올림픽 취재 경험을 가진 허진석 교수가 올림픽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해박한 인문 지식과 함께 풀어냅니다. 스포츠 기자로 30여년간 경기장 안팎을 누빈 허 교수는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지냈으며 2023년 한국시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기도 합니다. 2019년부터 한체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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