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단칸방의 추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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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2호 30면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과거 자수성가한 사람의 성공 스토리는 보통 이렇게 시작했다. 사실, 과거뿐 아니라 요즘도 마찬가지다. 가수 임영웅의 ‘월세 단칸방’이나,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의 ‘여덟 식구 단칸방’ 스토리가 대표적인 예다. 단칸방은 그러나 성공한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수많은 삶이 단칸방에서 시작했다. 그만큼 가장 저렴하게, 가장 쉽게 얻을 수 있었던 주택이었다.

하지만 요즘 청년이나 서민은 이 단칸방을 얻는 것조차도 힘들다. 전세 사기 논란 속에 원룸·투룸으로 불리는 빌라(다가구·다세대주택) 전세는 사라지다시피 했다. 전세가 사라진 자리는 월세가 차지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임대차계약 중 비(非)아파트의 월세 비중은 70%가 넘는다. 서울에서 웬만한 원룸을 얻어 살려면 월세로만 매달 100만원을 내야 한다. 청년·서민의 주거비 부담이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다.

빌라 임대·공급 생태계 붕괴에
청년·서민 주거비 부담만 가중

앞으로가 더 문제다. 국토교통부 집계 결과 지난해 주택 인허가 물량 중 88%가 아파트였다. 그동안 그래도 빌라와 같은 비아파트 비중이 20~30% 정도 됐지만, 이제는 아파트만 짓는다. 올해 들어서는 이 같은 현상이 더 심화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서울의 빌라 착공 실적은 909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1762가구)에 비해 절반가량 줄었다. 수도권도 같은 3513가구에서 1858가구로 쪼그라들었다. 빌라에서 전·월세로 시작해 아파트로 내 집 마련을 하는 ‘주거 사다리’의 첫 발판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빌라의 공급 축소 원인은 한둘이 아니다. 빌라는 재개발 구역이라는 특수성이 없는 한 가격이 잘 오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매매가와 전셋값이 비슷해도 사지 않고 그냥 세 들어 살려는 임대주택 성격이 강하다. 그럼 그동안 빌라를 사들여 청년·서민에게 공급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주택임대사업자나 임대수익으로 노후를 보내려는 다주택자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주택임대사업자를 규제하고, 종합부동산세 폭탄을 던지면서 이 생태계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주택임대사업자의 주택담보대출을 막고, 법인과 다주택자의 주택 취득세율을 최고 12%까지 끌어올렸다. 30일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결정한 종부세는 또 어떤가. 3주택 이상 임대인에게 거둔 종부세는 2018년 2500억원에서 2021년 2조1775억원으로 확 불어났다. 황당하게도 공공임대를 운용하는 서울시 산하 SH공사는 2017년 종부세로 117억원을 냈는데, 2021년에는 462억원을 납부했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이든 민간이든 ‘집’으로 먹고 사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 인해 빌라를 매입할 수요가 줄면서 자연스레 공급이 줄고 있다. 이 혼란한 틈을 타 전셋값을 떼먹기 위해 접근하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근래 ‘전세 사기’로 묶인 사건 중에는 무거워진 세금이나 막힌 대출로 인해 임대를 놓던 빌라가 경·공매로 넘어간 예가 적지 않다. 이는 빌라시장에서 전세의 소멸을 앞당겼고, 결과적으로 청년·서민 임대주택시장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2+2년’ 임대차보호법 시행 4년을 앞두고 아파트 전세시장이 들썩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빌라 또한 필요한 만큼 공급하지 않으면 아파트로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고, 그러면 아파트 전셋값뿐 아니라 매매가격까지 오르게 된다.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인 전세사기특별법도 마찬가지다. 야당은 피해자 구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의도치 않은 가해자·피해자가 계속 나오고 있는 만큼 그 원인을 찾아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달으면, 결국 진짜 집이 필요한 사람의 내 집 마련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아파트 전세난이나 청년·서민의 주거 부담 완화를 위해서는 빌라시장의 생태계를 다시 복원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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