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은 영화계 마피아, 77년 역사를 읽어야 뚫을 수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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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2호 17면

오동진의 전지적 시네마 시점

지난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7회 칸 영화제 폐막식에서 ‘아노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션 베이커 감독. [AFP=연합뉴스]

지난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7회 칸 영화제 폐막식에서 ‘아노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션 베이커 감독. [AFP=연합뉴스]

영화를 잘 만들어야 칸 영화제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영화만 잘 만들어서는 딱 한번만 갈 수 있을 뿐이다. 칸을 계속, 아니 자주 가려면, 그래서 경쟁이든 비경쟁이든 꾸준히 초청을 받으려면, ‘영화만’ 잘 만들어서는 갈 수가 없다. 거기에는 뭔가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있다. 칸 영화제는 세계 영화권의 가장 강력한 마피아다.

그건 마치 마틴 스콜세이지의 영화 ‘좋은 친구들, Goodfellas’(1991)의 내용과 흡사하다. 일개 조무라기 깡패였던 헨리(레이 리오타)와 토미(조 페시)는 조직원인 지미(로버트 드 니로)의 후원으로 정식 입문 과정을 거쳐 마피아의 멤버가 된다. 이후 그들은 호의호식한다. 그러나 곧 서로 죽고 죽이는, 혈전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칸도 패밀리에 대한 예우와 멤버 챙기기가 극심할 정도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마피아와는 다르게 칸은 후대를 발굴하고, 새로 챙기고, 세대교체에 앞장 선다. 올드&뉴를 동시에 쥐고 흔든다. 전통과 새로움을 동시에 구현한다.

칸에 입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심사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칸은 한 번 수하로 받아 들이면 웬만해서는 평생 내치지 않는다.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마다 거의 매번 칸 경쟁부문에 초청을 받았다. 켄 로치는 마지막 작품 ‘나의 올드 오크’를 만든 후 “이제 그만 은퇴하겠다, 지쳤다”는 말을 칸을 통해서 할 정도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칸이 ‘최애’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칸은 그를 통해 일본 영화와의 고리를 단단히 조인다. 그의 작품은 남우주연상(‘아무도 모른다’ 2004), 심사위원상(‘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3)을 거쳐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어느 가족’ 2018)을 거머쥐었다. 20년 동안 칸은 고레에다와 함께 했다. 일본의 작가주의는 칸이 보장한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그런 과정의 결과가 이제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화려한 등극으로 나타난다.

홍상수는 칸 대신 베니스·베를린 선택

칸 영화 제의 로고이자 트로피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잎사귀. [로이터=연합뉴스]

칸 영화 제의 로고이자 트로피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잎사귀. [로이터=연합뉴스]

박찬욱, 봉준호도 일단은 칸과 가깝게 지낸다. 박찬욱도 고레에다처럼 칸에서 세 번을 수상(심사위원 대상, 심사위원상, 감독상)했다. ‘올드 보이’(2005)로 시작해 ‘박쥐’(2010)를 거쳐 ‘헤어질 결심’(2022)까지 근 20년 동안 칸과 박찬욱은 같이 했다. 이보다 늦은 봉준호는 새 작품 ‘미키17’을 올해 칸 경쟁으로 보내려 했으나 제작 일정을 맞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공정이 맞았다면 이번에도 ‘기생충’에 이어 또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칸은 그런 곳이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자신들이 대우하려고 한 인물이 ‘배신’을 하면(다른 영화제를 가거나 기웃거리기라도 하면) 가차없이 그에게 등을 돌린다. 홍상수 감독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으로 칸의 주요 감독 리스트에 올랐지만, 자신에게 상을 주는 베니스와 베를린을 선택했다. 최근 5년간 그는 베를린영화제에서 여러 번 수상을 했다. 베를린과 홍상수 양 측 모두 전략적 선택을 한 결과다.

국내에서 칸 영화제에 관한 한 최고 전문가라 할 수 있는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은 세계 영화제를 칸과 칸이 아닌 것, 곧 기타 영화제로 이분화 할 정도다. 영화제들은 대체로 단일 조직 체제를 지향한다. 조직위원회가 있으며 그 밑에 집행부와 사무국을 둔다. 프로그래머들은 집행위원장의 관리 하에 활동한다. 수직 체계이고 정관과 내규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칸은 다르다. 칸 안에는 수평적 조직이 다수 존재한다. 그게 언론지상을 통해 자주 듣게 되는 ‘주목할 만한 시선’, ‘비평가 주간’, ‘감독 주간’ 등이다. 여기에 경쟁 섹션이 있고 비경쟁 부문인 ‘미드나잇’과 ‘칸 클래식’ ‘칸 프리미어’ 등이 있다. 모두 공식 부문에 포함되는 것이다. 칸은 이를 통해 한 지붕 네 가족, 혹은 다섯 가족을 형성한다. 이들은 수직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수평 구조를 이루어 낸다. 복잡하고 때론 난삽해 보여도 칸은 이 ‘평등성’을 버리지 않는다.

제77회 칸 영화제 주요 수상자들. [로이터=연합뉴스]

제77회 칸 영화제 주요 수상자들. [로이터=연합뉴스]

이는 곧 왕가 정치(부르봉 왕조)에서 사회주의 혁명(파리 꼬뮨)까지 겪어 낸 프랑스식 역사의 산물이다. 궁정 정치의 유산은 막후와 타협, 조율의 행태로 나타난다. 왕가에 충성을 바치면 후한 대우를 받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래서 다소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칸에 초청을 받고, 주 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에 입장할 때 모두들 턱시도와 넥타이, 이브닝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그 ‘거추장스러운’ 드레스 코드를 고집하는 것, 그렇게나 비판을 받으면서도 그 전통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로 프랑스 특유의, 그리고 칸 고유의 ‘혁명적 근성’은 늘 새로운 트렌드를 가장 앞장 서서 찾아내게 하고 자신의 영화제에 투입시키며 그럼으로써 세계 영화 문화를 선도해 내게 한다. 중국의 5세대 감독(첸 카이거, 장이모우)과 6세대 감독(로우 예), 중국내 반체제적 독립영화감독(지아장커)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 칸이었다. 이란의 그 무수한 감독들(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모흐센 마흐발바프), 한국의 뉴 코리안 시네마 감독들(이창동·홍상수·박찬욱·봉준호 등)은 칸을 통해 세계적 위상을 구축해 냈다.

봉준호 새 작품 ‘미키17’은 일정 못맞춰

2019년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왼쪽)과 배우 송강호. [EPA=연합뉴스]

2019년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왼쪽)과 배우 송강호. [EPA=연합뉴스]

칸의 조직 구성은 시간과 세월이 흐르며 차곡차곡 쌓여진 것이다. 감독 조합이 만들어진 후 칸은 감독주간 부문을 파트너로 받아 들였으며 비평가 주간은 6·8 혁명의 과정에서 평론가들의 영화적 정신, 영화가 지녀야 할 저항과 개혁의 모토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지난 77년간 겪었던 사건, 전쟁과 경제 불황, 혁명과 반혁명, 수없이 일어난 정치사회적 변화를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영화제는 그 나라 영화의 역사이며 그 나라 역사 그 자체이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은 영화제가 갖고 있는, 시대를 관통하는 바로 그 통시성(通時性)이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칸이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예각을 지녔다는 점은 지난 10년의 경쟁작 리스트를 봐도 잘 알 수가 있다. 2015년 토드 헤인즈의 ‘캐롤’은 1950, 60년대 억압받았던 레즈비언의 사랑 얘기를 다룬 작품이었고 2016년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유럽사회의 노동복지 문제를, 2017년 봉준호의 ‘옥자’는 동물권과 인권의 가치를 옹호한 것이었다. 2018년의 ‘가버나움’은 현 세계의 핵심 문제인 시리아 난민 문제을 얘기한 것이었다. 2022년에는 이란 내의 매춘과 살인극을 다룬 ‘성스러운 거미’의 여배우 자르 아미르 에브라하미에게 여우주연상을 타게 했다. 올해 황금종려상은 놀랍게도 ‘아노라’를 만든 미국 감독 션 베이커에게 돌아 갔는데 칸이 미국 감독에게 상을 주는 것은 드문 일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작가주의 감독 테렌스 맬릭이 ‘트리 오브 라이프’로 그랑프리를 받은 것이 2011년이었다. 13년만의 일이다. ‘아노라’는 스트립 쇼걸이 러시아 부호와 결혼하며 겪는 해프닝을 그린 내용이다. 여우 주연상 도 한 작품에 출연한 여배우 네 명에게 공동으로 주는 이변이 벌어졌는데 칸이 사랑하는 자국 감독 자크 오디아르의 ‘에밀리아 페레스’의 여배우들이다. 트랜스젠더의 얘기를 다룬 작품이며 그 중 한 명은 실제 성전환 여배우이다. 올해 칸은 여성의 가치, 트랜스젠더의 인권, 성차별의 문제에 주목한 것이다.

한국영화는 류승완의 ‘베테랑2’가 미드나잇 부문에서 상영됐다. 비경쟁이고 상업영화가 상영되는 섹션이다. 김동호 부산영화제 전 이사장의 영화 인생을 다룬 ‘영화 청년 동호’는 칸 클래식에서 상영됐다. 패밀리를 극진하게 대하는 칸의 면모를 다시 한번 보여준 셈이다. 어쨌든 올해 경쟁부문에 진출하지 못한 한국영화는 지금 칸이 추구하는 영화적 모토를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며, 영화 정신을 갖춘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영화는 영화를 잘 만드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올해의 칸이 주는 반면교사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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