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돈 묶이고 수익률도 감질나"…청년 외면받는 청년 금융정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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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2호 13면

가입률 10%, 성적 기대 이하 ‘청년 금융’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청년도약계좌가 오는 15일 출시 1년을 맞은 가운데 정부의 청년목돈마련 정책이 당초 기대와는 달리 흥행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긴 납입 기간, 연 5% 미만의 금리와 수익률 등으로 청년들의 투자·저축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청년목돈마련 정책으로 예금형인 청년도약계좌, 펀드형인 청년소득공제장기펀드, 청약형인 청년주택드림청약통장을 출시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세 상품의 가입 대상자(19~34세 청년) 대비 가입률은 10% 수준에 그친다.

비과세 혜택 확대 등 세 차례 정책 수정

이 세 상품 중 금융당국이 가장 공을 들인 건 문재인 정부 때 흥행했던 ‘청년희망저축’과 유사한 ‘청년도약계좌’다. 이 상품은 19~34세 청년이 5년(60개월)간 월 최대 70만원을 저축하면 만기에 약 5000만원 내외를 수령할 수 있는 상품이다. 비과세 혜택을 포함해 이 상품의 실질 금리는 연 8~10%에 이른다. 하지만 가입자는 정부 예상치(300만 명)의 절반(123만 명, 4월 말 기준)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세 가지 상품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없는 건 연간 납입액의 40%(최대 240만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청년소득공제장기펀드(이하 소장펀)다. 소장펀은 총급여 5000만원 이하 청년이 최소 3~5년간 원하는 펀드에 가입해 투자하는 상품으로, 소득공제 폭만 보면 금융상품 가운데 가장 크다. 하지만 청년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28일 KG제로인에 따르면 27개의 소장펀 중 운용설정액이 10억원 이상인 펀드는 KB지속가능배당50(채권혼합) 등 4개에 불과했다. 9개는 설정액이 1억원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관심을 끌고 있는 상품은 올해 초 출시된 청년주택드림 청약통장이다. 기존 주택청약상품 대비 높은 이율(최고 4.5%)과 연 2%대에 담보인정비율(LTV) 80%까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월 출시 이후 지난달 16일까지 약 3개월간 105만 명이 이 상품에 가입했다. 하지만 이 상품은 주택청약통장 역할을 병행하기에 가입자가 많은 것뿐이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청년들에게 목돈을 만들어주겠다며 공들여 준비한 상품들이 정작 청년들에게 외면 받는 이유는 뭘까. 우선 가장 큰 이유는 가입 기간이 너무 길다는 점이다. 청년희망적금은 만기가 2년이였다. 하지만 청년도약계좌는 결혼이나 주택 마련, 출산 등으로 목돈이 필요한 시기에 3~5년간 자금을 묶어 둬야 하는 게 부담이다. 3년 전 청년희망적금에 가입했지만 청년도약계좌로 전환하지 않은 이모(28)씨는 “2년간 약 1300만원이 묶여 있는 청년희망적금도 유지하기가 힘들었는데, 5년을 더 묵히라는 건 과하다”며 “언제 목돈이 필요할지 몰라 수시입출금이 가능한 파킹통장 등으로 자금을 분산했다”고 말했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3년 후 해지가 가능하다고 해도, 5년이라는 심리적 허들이 마련된 이상 선뜻 가입하기가 쉽지 않다”며 “같은 투자 기간이어도 보다 유연한 투자가 가능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더 많은 청년이 몰리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자산증식’을 목표로 한 상품인데, 투자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외면받는 이유 중 하나다. 소장펀의 경우 펀드 자산총액의 40% 이상을 무조건 국내 증시에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일본 증시가 고공행진을 하는 동안 국내 증시는 게걸음만 하고 있다. 해외 주식투자가 보편화한 상황에서 청년들이 수익률이 낮은 국내 증시 투자 상품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지난해 소장펀에 가입한 최모(27)씨는 “요즘 청년들은 연평균 수익률이 5%대인 국내 주식으론 자산을 증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위험도가 높더라도 고수익을 낼 수 있는 해외주식, 가상화폐 등에 투자하는 걸 선호하는데 소장펀은 상품 종류가 한정적이다 보니 가입을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주택드림 청약통장도 마찬가지다. 이 상품의 가장 큰 장점인 청년주택드림대출을 받으려면 분양가 6억원 이하,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을 분양받아야 한다. 그런데,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서울 민간 아파트 분양가는 3.3㎡당 평균 3884만1000원이었다. 84㎡로 환산하면 약 13억4000만원이다. 수도권 평균 또한 약 6억6276만원으로, 서울·수도권에서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청년에게는 소용없는 셈이다. 지난달 기존 청약통장을 청년주택드림 청약통장으로 전환한 직장인 이미나(32)씨는 “기존 청약통장보다 이율이 높아 전환은 했지만, 출산 시 추가 금리 혜택이나 대출 혜택을 받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며 “청약통장으로 돈을 모으기보단 최소금액만 납부하며 유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청년들 자금은 주식·코인 투자로 쏠려

애초에 설계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정부도 상품 출시 이후 1년간 기준중위 소득 확대(180%→250%)로 가입대상을 늘리고, 3년 유지 후 결혼·출산으로 중도 해지해도 비과세 혜택을 적용하는 등 세 차례에 걸쳐 정책을 수정하기도 했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기는 생애 주기상 가장 적극적으로 자산을 운용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에 단순한 저축 장려보다는 효율적인 포트폴리오로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저소득 청년들이 단순 예금보다는 다양한 상품으로 적극적인 자산형성을 할 수 있도록 투자 확대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정책 금융상품을 외면한 청년들의 자금은 주식·가상화폐 등 투자 대기 자금으로 쏠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3월 통화 및 유동성’에 따르면 3월 M2(시중통화량)는 3994조원으로 통계 작성 이래 전월 대비 최대폭으로 증가했다. 이지선 한국은행 금융통계팀 과장은 “약 20조원 규모의 청년희망적금 만기가 도래하면서 자금이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등 투자 대기상품으로 유입됐다”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미국 등 주요국의 피벗(통화정책 전환)이 다가오는 가운데 국내·외 증시가 강세를 보이자 청년들도 투자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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