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찍듯 만든 드라마”…웃긴데 설레는 ‘비밀은 없어’

중앙일보

입력

감전 사고로 진실만을 말하게 된 아나운서 송기백(고경표ㆍ왼쪽)가 불러오는 웃픈 현실을 보여주는 드라마 '비밀은 없어'. 사진 JTBC

감전 사고로 진실만을 말하게 된 아나운서 송기백(고경표ㆍ왼쪽)가 불러오는 웃픈 현실을 보여주는 드라마 '비밀은 없어'. 사진 JTBC

사람 고마운 줄 모르면 반드시 사람으로 망한다.”

JTBC 수목극 ‘비밀은 없어’의 한 장면을 꼽는다면 바로 이것. 송기백(고경표)이 예능 ‘뛰는 형님들’에서 만난 안하무인 아이돌 피엔(장원혁)을 보고 분노한 장면이다. 송기백의 통쾌한 ‘참교육’ 덕분에 포털사이트 연관검색어에 드라마 속 캐릭터인 ‘피엔’이 등장했을 정도.

12부작 ‘비밀은 없어’는 감전 사고 이후 진실만을 말하는 아나운서 송기백이 열정 넘치는 예능 작가 온우주(강한나)를 만나며 겪게 되는 유치하고 발칙한 인생 반전 코믹 멜로다. 시청률은 1%로 저조하지만, 넷플릭스에선 브라질ㆍ홍콩ㆍ인도네이사ㆍ말레이시아 등지에서 관심을 끌며 글로벌 톱10(비영어권) 8위까지 올랐다.

진실만을 말하는 송기백(고경표)이 피엔(장원혁)을 참교육하는 장면. 사진 JTBC '비밀은 없어'

진실만을 말하는 송기백(고경표)이 피엔(장원혁)을 참교육하는 장면. 사진 JTBC '비밀은 없어'

공감과 연민의 ‘막말’ 아나운서

진지한 상황에도 참지 못하고 속마음을 꺼내는 송기백의 모습이 재미 포인트. 부탁만 하는 직장 상사에겐 ”귀찮은 건 후배들 다 시키면서, 뒤에선 일 못한다고 욕하는 거 모를 줄 아냐“고 말하고, 맛집 홍보 예능에선 ”보여주기식 세팅이다. 고기가 질기다“고 솔직하게 평가한다. 시상식 MC를 맡고는 ”후보 중에 딱 한 분 참석했다. 누가 수상할 지 뻔하지 않냐“”짧은 수상 소감 요구할 거면 상은 왜 19개나 주냐“며 남발되는 상과 지루한 분위기를 꼬집는다.

과도한 솔직함으로 가는 곳마다 논란을 몰고 다니는 송기백은 결국 사표를 내고 프리랜서가 된다. 이후 예능작가 온우주(강한나)를 만나 본격적인 ‘아나테이너’의 길로 들어선다. 송기백의 ‘막말 스위치’를 제어하는 능력을 가진 온우주는 송기백과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송기백(고경표)은 시상식에서 막말을 쏟아내 논란에 휩싸인다. 사진 JTBC

송기백(고경표)은 시상식에서 막말을 쏟아내 논란에 휩싸인다. 사진 JTBC

거짓말을 못하게 된 주인공의 좌충우돌은 영화 ‘라이어 라이어’(1997)를 떠올리게 한다. 거짓말로 먹고 사는 변호사가 주인공인 ‘라이어 라이어’처럼 ‘비밀은 없어’의 송기백은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해 주변의 대우를 받아 온 인물이다. 지인의 고급 아파트와 외제차를 빌려 쓰며, “가짜 같은 내 삶에서 진짜를 말하는 뉴스가 좋다”며 메인 뉴스 진행을 꿈꿔왔다.

'비밀은 없어'를 연출한 장지연 PD는 중앙일보에 “거짓말로 일가를 이룬 사람이 거짓말을 못해서 추락하는 권선징악 스토리와는 다르다. 송기백은 뭔가를 많이 이루지 못한 인물이라, 자신을 더 부풀리고자 거짓말을 해온 사람이다. ‘어떻게 망하는지 보자’가 아니라, ‘좀 더 잘 됐으면 좋겠다’는 공감과 연민을 부르는 게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예능처럼 찍었다

프리랜서 선언 이후, 송기백은 온우주가 새로 기획한 연애프로그램 ‘커플천국’에 출연한다. ‘커플천국’에선 학창시절 친했다가 멀어진 김정헌(주종혁)을 만난다. 김정헌은 온우주의 전 남자친구이자, 트로트 예능으로 ‘국민 사위’ 반열에 오른 인기 가수다. 이들은 과자 빨리 먹기 게임, 속마음 토크 등 버라이어티한 예능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주고받는다. 온우주를 사이에 둔 송기백과 김정헌의 삼각구도도 공개적으로 드러난다.

'커플천국'에서 재회한 온우주(강한나)와 김정헌(주종혁). 사진 JTBC

'커플천국'에서 재회한 온우주(강한나)와 김정헌(주종혁). 사진 JTBC

드라마 속 ‘커플천국’ 분량은 5~8화가량으로 긴 편이다. 메기녀의 등장, 속마음 문자 보내기, 촬영 후 술자리 등 기존 인기 연애프로그램에서 봤던 장면들도 등장한다. 장 PD는 “연애프로그램이야말로, 로맨스를 정면으로 다룰 수 있는 장치”라면서 “시청자 입장에서 ‘솔로천국’이라는 예능이 거짓말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레퍼런스를 많이 보고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고경표, 강한나, 주종혁은 ‘무한도전’‘런닝맨’‘전지적 참견 시점’ 등 각자 나갔던 예능 현장을 떠올리며 촬영에 몰입했다고. 장 PD는 “실제 예능 스태프를 초빙했다. 여러 대의 카메라로 한 번에 찍은 장면들이라서 사실적이었던 것 같고, 예능용 카메라가 섞이면서 색깔이 들쑥날쑥한 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커플천국' 흥행으로 광고까지 찍은 김정헌(주종혁)과 송기백(고경표). 사진 JTBC

'커플천국' 흥행으로 광고까지 찍은 김정헌(주종혁)과 송기백(고경표). 사진 JTBC

빌런 없는 저자극 드라마
불륜이나 배신 등 도파민을 자극하는 악역은 없다. 주인공 커플서사로 최근 신드롬을 일으킨 tvN ‘선재 업고 튀어’에도 살인사건의 범인이 등장해 극의 긴장감을 더했는데, ‘비밀은 없어’의 긴장은 다른 드라마에 비해 약하거나 짧은 편이다. 톱스타의 외로움에 은퇴까지 생각하는 김정헌, 벼락스타에서 욕받이가 되어 괴로운 송기백, 예능 출연 이후 작가 일자리를 잃은 온우주 등 저마다의 상황에 괴로워하는 모습이 갈등이라면 갈등.

장 PD는 “재미있어 보이는 실험보다는 우리 삶에서 많이 부딪히는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상황을 극적으로 만드는 장치가 없어 연출하는 입장에선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7화의 부제. 숫자 7이 숨겨져 있다. 사진 JTBC

7화의 부제. 숫자 7이 숨겨져 있다. 사진 JTBC

9화의 부제. 사진 JTBC

9화의 부제. 사진 JTBC

제작진은 픽토그램과 같은 CG 요소를 넣거나, 매회 노래 제목에서 인용한 부제로 송기백의 성장 서사를 요약하는 등 디테일에 집중했다. 장PD는 ”부제가 시청의 감상포인트가 됐으면 했다. ‘비밀은 없어’가 가진 판타지와 유머 요소를 동시에 충족하기 위해 마술적 사실주의를 택해 CG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숙명 칼럼니스트는 ”설정은 과장되었지만 인물들의 반응은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게 이 드라마의 매력“이라며 ”고자극 드라마는 아니지만 빠른 템포로 잔잔한 유머와 공감을 담았다“고 분석했다. 내달 6일 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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