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윤병세의 한반도평화워치

중반기에 들어선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의 도전과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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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서울국제법연구원 이사장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서울국제법연구원 이사장

한국의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가 탄력을 받고 있다. 한국은 민주주의 정상회의(3월)와 지난주 AI 정상회의뿐만 아니라 한·일·중 3국 정상회의(26~27일), 다음주엔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1년에 1~2차례도 개최하기 힘든 다자 정상회의를 상반기에만 벌써 몇 개나 치렀다. 또 오는 9월 군사적 분야의 책임 있는 AI 사용에 관한 제2차 정상회의 등 대형 외교행사도 예정돼 있다.

글로벌 의제를 논의하는 국제회의 유치와 개최는 외교력의 척도이자 리더십의 핵심이다. 그래서 이런 대규모 국제회의는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강대국들의 몫이었다. 선진 7개국(G7)과 주요 20개국(G20) 국가 중엔 인도 정도가 회의 주최 역량(convening power)과 의제 설정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그 반열에 들기 시작했고,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외교 역량이 커진 것이다.

한국, 잇단 대형 국제회의 주최
글로벌 리더십 발휘하는 핵심
한·중관계 안정적 관리도 필요
다양한 변수에 미리 대비해야

G7·유엔 안보리, 글로벌 외교 견인차

한반도평화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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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범세계적 지도력과 유엔의 역할이 약화되고, 세계 질서가 파편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G7을 확대할 경우 한국을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도 우리가 글로벌 외교를 적극 펼친 결과다. 이달 초 이탈리아에서 처음 열린 ‘G7과 한국 간 협력에 관한 트랙2 회의’에서 여러 참석자들은 한국의 G7 정상회담 상시 초청 및 회원국 가입을 주문했다. 주최 측인 이탈리아 연구소 대표가 동 회의 폐회 발언에서 다음 달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한국을 초청하지 않은 이탈리아 정부를 향해 ‘중대한 전략적 실책’ 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이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 미국의 주요 연구소들은 한국의 G7 가입을 적극 건의한 상황이다.

한국은 내일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 역할을 맡는다. 북핵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리가 분열돼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안보리는 여전히 국제 평화·안보 의제를 논의하는 장으로서 의미가 크다. 한국은 향후 북한 핵, 중동 전쟁, 우크라이나 문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을 통칭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관심사 등 의제 설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한국은 탈냉전 시기 말인 2013~17년간 안보리 이사국 등 10여 개의 다양한 유엔 관련 기구의 의장직을 동시에 수임해 다자 외교에서 리더십을 발휘한 바 있다. 신냉전으로도 불리는 강대국 간 대립 구도 속에서 한국이 안보리 의장국을 맡게 돼 고도의 외교 역량 발휘가 요구되고 한반도 안보에 미치는 함의도 크다.

한·미동맹, 글로벌 협력과 상호 보완적

이러한 글로벌 중추 외교를 가능하게 하는 추동력은 우리의 국력 신장과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성장한 한·미동맹이다. 한·미는 지난해 4월 한·미 정상 회담에서 발표한 워싱턴 선언과 동맹 70주년 공동성명에서 핵 협의 그룹 창설과 글로벌 의제 협력에 합의했다. 지난해 8월 한·미·일 3국 정상 회담 공동성명에선 인·태 지역의 ‘도전, 도발, 위협’에 신속히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쿼드(Quad, 미·일·인도·호주 안보회의), 오커스(AUKUS, 호주·영국·미국 안보협력체) 등 미국의 새로운 격자형 동맹체제와 조화를 이루게 됐다.

오는 7월 초 워싱턴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우리는 인·태 지역 협력국으로서 3년 연속 초청될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러 간 전략적 협력이 강화되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4년 만에 방북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NATO 정상회의는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한·NATO 관계를 강화하는 계기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9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지는 UN 총회, 아세안 정상회담, 동아시아정상회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G20 정상회의도 한국의 지역 및 글로벌 역할을 위한 중요한 계기들이다.

향후 예상되는 도전과 과제

글로벌 중추 국가 외교 성과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첫 번째 변수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선 결과다. “미국이 최대의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우려에서 예상되듯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선다면 바이든 행정부 내내 다자주의와 동맹 간 협력에 방점을 찍어온 미 외교 정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다자주의보다 자국 중심주의가 강화되고, 북·러에 대한 정책뿐 아니라 NATO 등 미국의 동맹국들과의 관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초래될 수 있다. 우리에게도 방위비 분담 등 파장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도전은 한·중 관계의 원만한 관리다. 한·일·중 3국 정상회의가 4년 5개월 만에 재개된 건 한국이 의장국으로서 외교 역량을 크게 발휘한 결과다. 중국으로서도 EU와 한·일 등 미국의 동맹국들을 견인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중 관계가 외교, 군사, 경제, 기술, 이념, 가치 등 전 분야에서 구조적 긴장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일단 충돌이 발생하면 그 여파가 즉각 확산될 것이다. 한국은 미·일 등 유사한 입장을 가진 나라들과 보조를 맞추면서도 한·일·중, 한·중 정상 협의의 모멘텀을 잘 살려가야 한다.

셋째, 글로벌 사우스의 역할을 염두에 둬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불구하고 서방측에 대한 이들의 태도는 진영 간 양다리를 걸치는 추세다. 1차 확대된 브릭스(BRICs) 국가 중 상당수는 한국과 서방국들의 전략적 동반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들 국가에 대한 전략적 공적개발원조(ODA)를 대폭 늘린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넷째, 한국이 G7 플러스로 참여하게 될 경우 광범위한 글로벌 의제에 대해 유엔안보리 이사국 역할보다 더 큰 외교력과 경제적 역량을 요구받을 것이다. G7은 글로벌 공공재 공급을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인·태 지역에서 한·미·일 공동 협력도 큰 틀과 기준을 마련해 실행 가능한 분야부터 확대해 나가는 것이 좋다. 미국의 동맹전략이 격자형 체제로 전환함에 따라 인·태 지역 소다자 협의체들과의 관계에 대해 미리 입장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다섯째, 복합 위기와 전쟁에 따른 집중력 분산을 북한과 러시아가 악용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대만 해협 상황이나 미국 대선 시기를 활용해서 전술·전략적 도발을 할 경우 한국의 글로벌 중추 외교 노력도 약화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중국이 북·러 간 군사 협력에 동참하지 않도록 유관 국가들과 공동보조를 맞춰야 한다.

한반도 문제가 글로벌 경제·기술·안보와 상호 연계되는 초연결 시대로 바뀌고 있다.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과 인·태 전략은 복합 위기의 시대에 국익을 통합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시도로 평가된다. 최빈국에서 ‘G7 플러스’를 지향하는 나라로 성장한 한국이 인류에 기여하는 국가전략을 계속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서울국제법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