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윤정의 판&펀

선을 넘는다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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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윤정 문화 칼럼니스트

이윤정 문화 칼럼니스트

피식대학(사진)의 영양군 비하 논쟁은 ‘코미디에서 선을 넘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대표적인 예가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이었다. 윌 스미스의 아내가 질병 때문에 삭발한 머리를 가지고 사회자 크리스 록이 “지아이 제인 속편을 기대한다”고 했을 때 윌 스미스가 주먹을 휘두른 일 말이다. 신체적 폭력을 가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은 것으로 비난 받았지만, 크리스 록의 농담 역시 선을 넘었다는 지적도 많았다.

코미디, 관객 눈높이 맞춰 대화
불쾌감 주지 않아야 공감 얻어
다양성, 배려심 등 더 고민해야

미국 시상식 사회자들은 보는 사람마저 조마조마하게 할 정도로 선을 넘는다. 리키 저베이스는 2016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객석에 있는 애플사 팀 쿡 회장에게 “애플 TV가 ‘모닝쇼’라는 품격있고 올바른 드라마를 만들었죠. 중국에서는 노동력을 마구 착취하는 그 회사가 말입니다”라고 하거나 “배우 여러분들은 테러 집단 ISIS가 방송사를 만들어도 출연하려고 줄을 서겠죠. 그러니 제발 수상 소감으로 정치적 발언 따위는 집어치우세요”라며 거침없이 말주먹을 날린다. 여타 감독이나 배우들에게도 한 명씩 칭찬과 조롱을 섞어 던진다. 작은 키를 비하하는 등 선을 수시로 넘지만 그래도 문제적 발언에 대한 용기는 놀랍다.

리키 저베이스는 데이브 샤펠과 함께 몇 년 전 미국에서 ‘펀칭 업(Punching Up) 대 펀칭 다운(Puching Down)’논란을 일으켰다. 펀칭 업은 자신보다 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집단을 향한 농담을 말하고 펀칭 다운은 그 반대다. 우리말로 하면 풍자와 비하의 차이라고 하겠다. 미국 코미디는 전통적으로 ‘펀칭 업’이 좋은 코미디라는데 이견이 없었다. 그런데 넷플릭스 HBO 등에서 코미디쇼 경쟁이 시작되면서 펀칭 다운의 코미디가 자꾸만 늘어났다. 그 주역으로 꼽히는 두 사람의 넷플릭스 쇼 ‘더 클로저’나 ‘수퍼네이처’에서는 트렌스젠더등 성 소수자나 장애인까지 농담의 대상으로 삼는다. 혐오의 요소를 담은 이 코미디에 평론가들은 질색하지만 관객들은 데이브 샤펠을 ‘역대 최고의 스탠딩 코미디언’이라며 열광한다. 아마도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통념에까지 펀치를 날리는 영리한 위악이 주는 쾌감도 있긴 하겠지만, 그 코미디에 희생되는 대상을 생각하면 보기가 매우 불편하다.

우리나라에서도 TV 코미디가 유튜브로 넘어오면서 비슷한 고민을 해야 할 때로 보인다. TV 스타들을 제치고 올해 백상예술대상까지 받은 피식대학은 “우리의 코미디를 위해 스스로 우리만의 판을 만들었다”라고 자부한다. 자유로운 유튜브에서 다양한 코미디를 시도하는 그들에게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선을 넘는 코미디”를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다짐대로 유튜브에서 그들은 TV에서는 할 수 없었던 표현의 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혐오와 배제의 언어들이 확장되었던 것처럼 유튜브 코미디에서도 같은 경향이 나타날 위험은 상존한다. 이번 영양군 논란은 작은 예시처럼 보인다.

모든 농담에는 희생양이 있다.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우습게 만드는 것이 농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미디는 관객과 눈높이를 맞추고 대화를 하는 장르다. 생각지도 못했던 지점을 낚아채며 ‘이런 점도 있지 않아’라고 한방 던질 때 주는 쾌감이 있다. 설사 그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점이 존재하더라도 더 큰 구조의 부조리를 지적해 낼 때 기존 관념에 반전을 주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상상력이다. 그러니 훌륭한 코미디언은 단순히 ‘선을 넘겠다’가 목표가 아니라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선을 넘지 않도록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에 성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매 순간 물어야 한다. 이 농담은 이것을 희생자로 만드는 위험을 무릅쓸 가치가 있는 것인가. 희생은 의미 있는 것인가. 그 희생을 딛고 내가 만들어낼 웃음이 쾌감과 공감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인가.

영양군 에피소드가 실패인 이유는 낙후되고 소멸 위기까지 처한 지방 소도시라는 충분히 공감 가능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용기 있는 질문이나 풍자 없이 치기 어린 납작한 불평과 ‘할머니 살을 뜯는 맛’같은 혐오적 표현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그들이 롤모델로 삼는다는 코난쇼의 한국 방문 에피소드를 보면 얼마나 신중하게 불쾌함의 선을 넘지 않으면서 이방인의 시선을 주제로 웃음을 유발하려 애쓰는지를 알 수 있다.

견고하게 잘 구성된 코미디가 올바른 방식으로 전달 된다면 사실 어떤 주제도 웃음을 유발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관객이 코미디언의 의도와 포인트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드느냐다. 피식쇼는 글로벌 K-코미디쇼를 개척하겠다고 했다. 글로벌 쇼의 꿈은 단지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외국 게스트들을 초청하는 것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다양성과 소수자, 배려심 같은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글로벌 트렌드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소한 실수가 글로벌 진출의 큰 장벽이 될지도 모른다.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