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VIP 격노설 캐묻자…김계환 "사령관이 대통령 언급 부적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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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21일 오전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21일 오전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중장)이 두 차례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연루된 ‘VIP 격노설’을 추궁받자 “해병대 사령관인 내가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에 대해 언급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진술을 남긴 것으로 29일 파악됐다. 묵비권 행사의 이유를 설명하는 형식인데 앞서 2월 군사법정에서 VIP 격노설을 적극 부인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현직 사령관으로서 대통령의 격노를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결과로 풀이된다.

공수처 등에 따르면 김 사령관은 통화 녹음파일과 해병대 사령부 관계자 진술 등에 포위돼 격노설을 마냥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김 사령관은 대통령의 격노설을 줄곧 부인해왔지만 지난 4일 공수처의 첫 소환조사 당시 격노설과 관련된 증거를 제시하자 묵비권 행사로 방향을 틀었다. 공수처는 “김 사령관으로부터 ‘VIP 격노설’을 들었다”는 해병대 고위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한 데 이어 김 사령관 스스로 ‘VIP의 질책’을 언급한 휴대전화 통화 녹음파일이란 물증까지 확보해 김 사령관을 압박했다.

또 묵비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김 사령관이 국가안보실 관계자로부터 VIP 격노설을 전달받았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정황도 속속 공개되고 있다.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 보고 및 기록 이첩, 회수가 벌어진 지난해 7월 말부터 나흘간 김 사령관과 용산 국가안보실 관계자들과의 통화기록이 대표적이다. 채 상병 사망사건 기록의 ‘국방부 장관 보고(지난해 7월 30일)→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실 회의(7월 31일)→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기록 경찰 이첩(8월 2일)→국방부 검찰단의 기록 회수(8월 2일)’ 국면에서 김 사령관은 용산 국가안보실 관계자들과 총 16차례에 걸쳐 통화했다. 군 검찰의 수사결과 등에 따르면 그는 나흘간 임종득 당시 국가안보실 2차장과 3차례, 임기훈 국방비서관과 4차례, 국가안보실에 파견됐던 김형래 대령과는 총 9차례에 걸쳐 통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인천항 수로 및 팔미도 근해 노적봉함에서 열린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식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인천항 수로 및 팔미도 근해 노적봉함에서 열린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식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이 채 상병 사망사건 조사 기록이 경찰에 이첩된 직후인 지난해 8월 2일 개인 휴대전화로 당시 우즈베키스탄을 출장 중이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세 차례 통화한 내역까지 공개됐다. 중앙일보가 확보한 이 전 장관의 지난해 8월 통화 내역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2일 오후 12시 7분, 43분, 57분 등 세 차례 걸쳐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 대통령의 첫 통화 이후 1시간 사이에 박정훈 대령은 해병대 수사단장에서 보직해임을 당했고, 군은 경찰에 이첩된 사건을 회수해왔다.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이 통화한 8월 2일은 대통령이 공식 일정으로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개영식에 참석한 날이었다. 이 전 장관과의 통화 당시 윤 대통령은 개막 첫날부터 폭염으로 온열 질환자가 무더기 발생하며 대혼란이 일던 잼버리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해외출장 중이던 이 전 장관에게 3차례나 전화를 건 것은 빠른 대응을 필요로 하는 다급한 현안이 있었다는 의미다.

당시 한덕수 총리를 포함해 각료들도 부산하게 이 전 장관을 찾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해 8월 2일부터 6일까지 이 전 장관과 세 차례 통화했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8월 4일부터 7일 사이 이 전 장관과 다섯 차례 통화와 세 차례 문자를 주고받았다. 같은 기간 이 전 장관은 김용현 대통령 경호처장과도 여덟 차례에 걸쳐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윤 대통령이 이 전 장관과 통화를 했다는 내역이 확인됐을 뿐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채상병 수사외압 의혹과 관련된 주요 국면에서 윤 대통령과 정부 각료가 출장 중인 이 전 장관과 수차례 통화한 사실이 드러난 만큼 공수처의 수사가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을 비롯한 용산 대통령실로 향하는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소환 조사를 검토 중이다. 이 전 장관 측은 “대통령과의 통화 내역 공개가 적법한지 의문이고, 통화 여부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제기되는 의혹들은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격노를 접한 사실도, 대통령실 그 누구로부터도 ‘(이첩 대상에서) 사단장을 빼라’는 말을 들은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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