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찰위성 발사 실패, 겁먹지 말자" 문책도 없었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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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찰위성 2호기 발사 실패 하루 만에 공식석상에 나타나 질책 대신 독려에 나섰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식의 논리를 펼치면서다. 이번 발사를 '정상적 우주 개발' 과정에서 모든 나라가 겪는 시험적 시행착오인 것처럼 포장하며 정당화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9일 김정은이 지난 28일 국방과학원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9일 김정은이 지난 28일 국방과학원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덤덤하게 "자폭체계" 소개 왜

29일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은 전날(28일) 북한 국방과학원 창립 60주년 연설에서 지난 27일 실시한 위성 발사 실패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김정은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은 국가의 방위력 건설 목표에 따라 예정대로 또 한 차례 정찰위성발사를 단행했다”며 “이번 발사는 1계단(단계) 발동기(엔진)의 비정상으로 인한 자폭체계에 의해 실패했다”고 밝혔다.

김정은이 언급한 자폭체계는 '비행 종단 시스템(FTS·Flight Termination System)’으로도 불리는데, 보통 위성이나 미사일 각 단에 탑재돼 비행 중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작동한다. 지상에 피해를 주거나 주변국이 수거해 분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번 북한 위성의 경우 군 당국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1단의 연소가 멈추고 수초 뒤에 화염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김정은의 주장대로라면 연소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위성이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자 자폭체계를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두 차례 실패한 위성 발사 때도 북한은 해당 시스템을 활용해 발사체를 폭파시켰다고 했다.

군 안팎에선 자폭체계 자체는 새롭진 않지만, 이를 김정은이 직접 거론할 걸 주목하는 분위기다. 최종 결정권자인 김정은이 신형 엔진을 처음 적용한 이번 발사가 실패할 확률이 크다는 점을 이해하면서도 도전에 의미를 뒀기 때문에 스스로 이런 경위를 설명하는 게 가능하다는 맥락에서다.

일각에선 애초에 북한이 이번에는 ‘시험발사’에 중점을 둔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권용수 국방대 명예교수는 “세계적으로 위성에 새 발사 체계를 처음 적용하고 완전 비행을 실시하는 사례는 드물다”며 “1단을 우선 시험해봤을 가능성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지난 28일 창립 60주년을 맞은 국방과학원 방문 연설에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이 지난 27일 정찰위성 2호기를 발사했지만 1단 추진체 엔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실패했다고 밝힌 내용을 29일 북한 주민들이 시청하는 조선중앙TV로 보도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김정은이 지난 28일 창립 60주년을 맞은 국방과학원 방문 연설에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이 지난 27일 정찰위성 2호기를 발사했지만 1단 추진체 엔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실패했다고 밝힌 내용을 29일 북한 주민들이 시청하는 조선중앙TV로 보도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이번 발사 시도가 지난해 11월 우주궤도에 올린 1호기 발사 때와 비슷한 시간대에 이뤄졌다는 점도 시험발사설에 힘을 싣는다. 북한이 이번에 사전 통보한 낙하체 예상 지역을 보면 위성의 궤도도 당시와 유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군 관계자는 “이미 지구를 돌고 있는 1호기와 유사한 시간과 궤적으로 추가 위성을 운용하겠다는 건데, 의아한 면이 있다”며 “정찰 능력을 높이려면 복수 위성의 특정 지역 방문 시간을 달리해 재방문 주기를 단축시키는 게 상식”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문책 없이 "겁먹지 말자“

김정은은 또 이번 연설에서 “정찰위성 발사가 목표했던 결실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실패에 겁을 먹고 위축될 것이 아니라 더 크게 분발하게 될 것”이라며 “실패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크게 발전하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통상적인 무기와 달리 정찰위성 개발의 지난한 과정을 의도적으로 부각하면서 우주개발 사업을 합리화하려는 의도로 해석한다. 주민들이 볼 수 있는 노동신문에 이날 연설을 게재한 것도 우주개발 과정의 실패를 뼈아픈 타격처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뜻이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두 차례 실패 때엔 관련 보도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조선중앙방송 등 대내 매체가 아닌, 대외 매체 조선중앙통신에만 실렸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다른 나라도 위성 사업에서 실패를 많이 겪었으니 우리의 실패도 이상할 게 아니다’는 뜻”이라며 “정상적인 우주개발국처럼 시행착오를 보편화하려는 듯 보인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기술 지원을 염두에 두고 김정은이 향후 성공 가능성을 크게 본 것이란 시각도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9일 김정은이 지난 28일 국방과학원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9일 김정은이 지난 28일 국방과학원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자위권 행사 확실하게 할 것”

김정은은 정찰위성 보유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과제로 다시 강조했다. “자위적 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고 잠재적인 위협들로부터 국가주권과 안전을 수호하는 데서 선결필수적인 과업”이라고 주장하면서다.

김정은은 또 “당장에 실용적이며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통신위성이나 기상관측위성, 자원탐사위성이 아니라 정찰위성 보유를 선점목표로 정하고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은 이를 획득함이 우리 국가의 안전과 직결된 초미의 과제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정찰위성 보유를 최우선 군사과업으로 놓고 실패와 관계없이 이전보다 더 빈번히 위성을 발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정은은 또 북한 위성 발사에 대응한 군 당국의 공중 타격훈련을 “히스테리적 광기”, “용서 못할 불장난” 등으로 규정하고 “압도적인 단호한 행동으로써 자위권의 행사는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 전 영토를 점령하겠다는 ‘영토완정수호’ 구호를 꺼내든 뒤 “군사적 보복력을 가동시키는 건 우리 헌법과 기타 법률이 승인한 공화국 무력의 제일 가는 사명”이라고 위협했다. 정찰위성 개발을 계속하며 동시에 각종 핵·미사일 고도화에도 집중하겠다는 뜻이라 추가 도발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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