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특검 부결된 ‘채 상병 수사’, 공수처는 명운 걸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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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채 상병 특검법’이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재차 부결됐다. 공은 이 사건을 수사해 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넘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의 특검 추진은 정치 공세 성격이 짙은 무리수였다. 관련 의혹이 증폭된 계기는 주호주 대사로 임명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공수처의 출국금지였다. 민주당은 이런 공수처를 제쳐놓고 특검으로 몰아갔다. 연간 200억원 넘는 예산을 쓰는 공수처를 의석수로 밀어붙여 출범시킨 당사자가 민주당이란 사실을 짐짓 모른 척했다.

채상병 특검법 재처리를 예고한 본회의가 예정된 28일 오후 국민의힘 의원총회장 앞에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들이 찬성을 촉구하며 입장하는 추경호 원내대표에게 인사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 240528

채상병 특검법 재처리를 예고한 본회의가 예정된 28일 오후 국민의힘 의원총회장 앞에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들이 찬성을 촉구하며 입장하는 추경호 원내대표에게 인사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 240528

그런데도 국민의힘에서 안철수·김웅·유의동·최재형·김근태 의원 등이 공개적으로 찬성 의사를 밝힌 것은 정부·여당과 사건 관련자들의 떳떳하지 못한 대처 탓이다. 진상 규명의 대상은 지난해 7월 31일 윤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한 이후 채 상병 사건 수사와 관련해 벌어진 일련의 조치다. 예정됐던 수사단의 브리핑이 취소됐고, 군은 경찰에 자료를 넘겼다가 다시 회수했다. 이 무렵 이 전 장관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등 군 관계자들과 대통령실 사이에 여러 차례 통화가 오갔다. 이 과정에 불법이 있었는지를 밝혀야 한다.

최근 수사 속도를 내는 공수처는 김 사령관으로부터 “VIP(윤 대통령)가 격노했다”는 얘기를 들은 사람이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이외에도 추가로 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런 통화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도 확보했다.

수사는 만만치 않다. 공수처가 김 사령관과 박 전 단장을 대질조사하려 하자 김 사령관은 “해병대에 더 큰 상처”라는 이유로 거부했다고 한다. 국민의힘 성일종 사무총장은 방송에서 “대통령이 격노한 게 죄인가”라고 말하는 등 사태의 본질과 논점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공수처는 명운을 걸고 이 같은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공수처가 국민 보기에 미진한 수사 결과를 내놓으면 22대 국회에서 추가 특검 수사는 불가피하다. 응답자의 60~70%가 특검 수사에 찬성한다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그때 가선 여당도 더는 특검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 출범 후 3년 간 국민을 실망하게 한 공수처로선 존재 의미를 입증할 기회다. 대통령실과 군은 추가 특검 수사로 국력을 낭비하지 않도록 공수처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