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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만에 매진됐다…21년 전 흥행참패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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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원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23년 전 제작된 영화가 예매 시작 3분 만에 매진됐다. 대만 거장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현대 3부작’ 첫 작품 ‘밀레니엄 맘보’(2001·사진)다. 지난 22일 고전영화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제17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2003년 한국 정식 개봉 땐 전국 관객이 2700명(공식 통계 기준)에 그친 흥행 참패작인데, 서울아트시네마에선 회고전을 할 때마다 매진되고 상영 요구가 빗발치는 통에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피켓팅’에 승리한 시네필 틈에 기자도 끼어 앉았다.

지금은 희귀해진 35㎜ 필름판이다. 대학 시절 주연 배우 수치(舒淇·서기)의 독특한 분위기에 넋을 놓고 봤던 영화인데, 다시 보니 기억과 딴판이다. 주인공들과 또래일 땐 고독하되 그저 자유로워만 보였던 청춘의 감각적 장면 너머로 당시 50대인 감독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느껴졌다. 이 눈부신 젊음들이 술·마약, 쉬운 돈벌이에 흥청대다 명멸하지 않기를, 좀 더 소박한 것,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귀한 삶을 깨우치길 바라는 마음. 주인공 비키를 묵묵히 지켜주던 중년 보스 잭 캐릭터가 새삼 감독의 페르소나처럼 겹쳐져 보였다. 영화는 그대로인데, 세월이 시각을 바꿔 놨다. 고전을 다시 보는 의미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매년 ‘친구’로 선정된 영화인·관객들의 ‘마음속 고전’을 틀어주고, 각 추천자가 관객과의 대화도 갖는다. 올해는 김지운·봉준호·변영주·안재훈·이경미·이명세·이옥섭·정성일·미야케 쇼의 추천작을 포함해 총 24편을 내달 9일까지 상영한다. 올해 최고령 상영작은 존 포드 감독의 흑백영화 ‘켄터키 프라이드’(1925)로 무려 99살이다. 개봉 첫 주 안에 관객이 들지 않으면 ‘실패작’으로 낙인 찍는 요즘, 새삼 영화의 수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