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방폐물법·K칩스법·유통개혁법…경제·민생법안은 본회의도 못밟고 폐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29일로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 국민연금 개혁안을 비롯한 민생법안들이 자동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경제계가 고대했던 법안들도 대부분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모두 폐기됐다.

여야는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28일까지 연금 개혁안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모수개혁과 구조개혁 사이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22대 국회로 연금개혁 과제를 넘기게 됐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수차례 당의 방침을 말씀드렸기 때문에 다른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4%를 담은 모수개혁이라도 21대 국회에서 처리하자고 제안했지만 국민의힘은 22대 국회에서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함께 하자는 입장이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여야 정쟁 속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각 상임위원회에 쌓여 있는 민생 법안들도 무더기로 폐기됐다. 28일 기준 법사위에 계류된 법안은 1778개였다. 법사위 고유 법안이 1665개, 여타 상임위를 통과해 회부된 법안이 113개다. 법사위는 2월 29일 전체회의를 열어 법안 30여 개를 의결한 이후, 이달 2일 여야가 수정 합의한 이태원특별법을 원포인트로 처리한 것 외엔 아무런 법안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관련기사

법사위에 묶인 민생 법안의 대표 사례로는 상속인이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을 경우 상속권을 상실케 하는 이른바 구하라법(민법 개정안)이 꼽힌다. 변호사의 금지 광고 유형을 대한변협 내부 규정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는 로톡법(변호사법 개정안), 세종시에 지방법원과 행정법원을 만들도록 한 세종법원법(법원설치법 개정안), 법관 정원을 지금보다 370명(정부 안)~1000명(민주당 이탄희 안) 늘리도록 한 법관증원법(판사정원법 개정안) 등은 그 필요성을 두루 인정받았지만 결국 폐기됐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국회 관계자는 “20대 국회 마지막엔 본회의를 급히 열어 민생법안을 털어냈는데, 이번 국회는 특검 재투표 같은 정치적 사안에만 매몰돼 민생법안을 외면했다”며 “입법 기관으로서의 헌법 책무를 저버린 작태”라고 쓴소리를 했다.

기업들이 기대했던 법안들도 줄줄이 폐기되는 사태를 맞았다.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연장하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K칩스법은 반도체·2차전지·전기차 등 국가전략기술 시설에 기업이 투자하면 세액의 15~25%를 돌려주는 법안으로, 올해 연말 일몰을 앞두고 있다. 반도체 업계는 실망이 크다. 세계 각국이 보조금을 뿌리며 반도체 패권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세제 혜택마저 사라지면 한국의 투자 매력이 확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선 대형마트 의무휴업·영업제한 기준을 완화한 유통법 개정안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을 확보하는 내용의 고준위방폐법이 멈춰섰다.

C커머스(중국 유통업체)의 공세에 흔들리고 있는 유통업계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2012년부터 시행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0시~오전 8시)과 의무휴업일(매월 둘째·넷째 주 일요일) 규제 굴레를 이번 국회에서도 벗지 못해서다.

원전업계는 사용 후 남은 위험물질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저장·처분하는 중간저장시설 및 영구처분장을 짓지 못하면 2030년 주요 원전이 ‘셧다운’될 것으로 우려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