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걸·간호사·트랜스젠더…칸, 여성 영화가 휩쓸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은 숀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아래 사진)가 차지했다. [AFP·로이터=연합뉴스, 사진 칸영화제]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은 숀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아래 사진)가 차지했다. [AFP·로이터=연합뉴스, 사진 칸영화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성 노동자에게 이 상을 바친다.” 25일(현지 시간) 폐막한 제77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아노라’로 황금종려상(최고상)을 받은 미국 독립영화계 스타 숀 베이커(53) 감독의 수상 소감이다. 미국 여성 성매매 노동자가 러시아 갑부와 결혼해 시부모와 갈등을 겪는 신랄한 로맨틱 코미디다. 페미니즘 영화 ‘바비’(2023)의 미국 감독 그레타 거윅,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 9인의 심사위원단은 ‘아노라’에 대해 “에른스트 루비치, 하워드 혹스처럼 관객을 의외의 방향으로 이끄는 고전 영화 느낌을 갖고 있다”고 호평했다. 올해는 여성 영화가 강세를 보였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아노라’. [AFP·로이터=연합뉴스, 사진 칸영화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아노라’. [AFP·로이터=연합뉴스, 사진 칸영화제]

숀 베이커는 아이폰으로 촬영한 선댄스 영화제 화제작 ‘탠저린’(2015), 칸 영화제 초청작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감독주간)·‘레드로켓’(2021, 공식경쟁)에서 트랜스젠더·홈리스·아동 등 사회의 사각지대를 감각적 영상에 담아 컬트 팬덤을 양산해왔다. 칸 수상 무대에서 그는 “매일 극장들이 문 닫는 현실이 무섭다”며 “(이 수상이) 이런 영화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류 관객에게 상기시키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건 테렌스맬릭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2011) 이후 13년 만이다.

인도 감독 파얄 카파디아(맨오른쪽)와 배우들이 수상 무대에서 포옹을 나눴다. [AFP·로이터=연합뉴스, 사진 칸영화제]

인도 감독 파얄 카파디아(맨오른쪽)와 배우들이 수상 무대에서 포옹을 나눴다. [AFP·로이터=연합뉴스, 사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2등상)은 인도 여성 감독 파얄 카파디아의 ‘올 위 이매진 애즈 라이트’가 차지했다. 뭄바이의 두 간호사가 해변 마을로 여행을 떠나는 성장담으로, 인도 영화론 30년 만에 경쟁 부문에 진출해 수상까지 했다. 프랑스 거장 자크 오디아르는 당국의 추적을 피해 성전환 수술을 하려는 범죄단 두목과 그를 돕는 여자들을 그린 ‘에밀리아 페레즈’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영화에 출연한 스페인 트랜스젠더 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등 주연배우 4명이 여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했다. 칸 여우주연상을 받은 첫 트랜스젠더인 가스콘은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 모욕·폄하 당하고 수많은 폭력에 희생됐다”며 “이 상은 권리를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감독상은 ‘그랜드 투어’의 포르투갈 감독 미겔 고메스에 돌아갔다. 1917년 당시 버마의 대영제국 공무원 약혼녀가 결혼식 전날 도망친 신랑을 찾아 아시아를 횡단하는 로드무비다. 각본상은 배우 데미 무어가 한물간 스타 역을 맡아 전라 연기에 도전한 신체 훼손 공포영화 ‘더 서브스턴스’의 시나리오 작가 코랄리파르자가 받았다. 남우주연상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의 미국 배우 제시 플레먼스에게 돌아갔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의 자크 오디아르 감독과 트랜스젠더인 주연 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AFP·로이터=연합뉴스, 사진 칸영화제]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의 자크 오디아르 감독과 트랜스젠더인 주연 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AFP·로이터=연합뉴스, 사진 칸영화제]

외신은 “올해는 정치보다 코미디·인류애가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수상 경향을 분석했다. 이란 정부의 억압을 가족 내 갈등으로 담아낸 이란 감독 모하마드 라술로프의 ‘더 시드 오브 더 새크리드피그’가 12분간 기립박수와 함께 극찬받고도, 특별 각본상에 그친 것이 그 예다.

판사인 아버지의 사형 선고에 반발한 딸들의 대립을 그린 영화인데, 영화 속 여배우들이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역 8년형과 태형 등을 선고받은 라술로프 감독은 유럽에 망명했다. 칸 영화제 상영 중 객석에서 “여성! 생명! 자유!” 등의 시위 슬로건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칸 영화제 간담회에서 라술로프 감독은 “나의 유일한 메시지는 이란 정부의 위협과 검열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통치 능력이 전혀 없고 공포 외에 무기가 없다”고 말했다.

전 부문 출품작 중 최고 데뷔작에 주는 황금카메라상은 노르웨이 감독 하프당 울만 퇸델의 ‘아르망’(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이 받았다. 퇸델은 스웨덴 거장 잉마르 베리만과 노르웨이 배우 리브 울만의 손자다. 명예황금종려상(공로상)은 할리우드 배우 메릴 스트립, 제작자이자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지브리 스튜디오가 공동 수상했다. ‘스타워즈’ 오프닝 음악이 흐른 폐막식 무대에선 명장면도 연출됐다. 경쟁 부문에 신작 SF ‘메갈로폴리스’를 공개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루카스의 수상 때 시상자로 무대에 올랐다.

한편, 올해 한국영화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초대 집행위원장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동호’, 임유리 감독의 ‘메아리’(학생단편경쟁 ‘라 시네프’ 부문) 등 3편이 초청받았지만, 수상작은 없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