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세 할머니 간첩, 이선실…포섭 타깃은 김부겸이었다 [간첩전쟁 1부-남파간첩 ④]

  • 카드 발행 일시2024.05.22

〈제1부〉 ‘공화국영웅’ 남파간첩 김동식의 인생유전

4화. 남한 침투, 접선 성공과 포섭 실패

남조선에 남파된 ‘북악산’을 접선해 대동(帶同) 복귀하고, ‘백암산’을 접촉해 지하당 조직을 구축하라.

1990년 4월, 공작 명령이 하달됐다. 노동당 연락부 부부장(차관급) 이원국이 조장 권중현-조원 김동식으로 구성된 2인조 남파 공작조를 찾아와 직접 지시했다.

동지들에 대한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신임과 배려가 큰 만큼 공작 임무를 성과적으로 완수해 반드시 보답하기 바랍니다.

공작대호(코드 네임)는 ‘오성산’으로 명명됐다. 두 개의 격렬한 감정이 김동식을 지배했다.

해방감이 우선 몰려왔다. 금성정치군사대학(현 김정일정치군사대학) 4년, 밀봉 교육과·적구화 교육 5년 등 1981년부터 장장 9년에 걸친 세뇌적 사상무장과 냉혹한 지옥훈련을 견뎌냈다. 그 인고의 세월에서 벗어나 실전에 투입된다는 자기실현감이었다.

남파 공작의 짐이 짓누르는 압박감이 교차했다. 공작대호 ‘북악산’과 ‘백암산’라고 불리는 생면부지의 낯선 인물들을 상대로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야 하는 28세 청년의 심리적 부담감이 무거웠다.

북악산·백암산 정체 담긴 극비 파일 열람

김동식은 대외비 파일에 접근했다. 북악산은 10년 동안 남한에서 암약해 온 여성 고정간첩이었고, 백암산은 북악산이 포섭했다는 남한 운동권 출신 30대 정치인 K라는 사실이 담겨 있었다. 김동식은 ‘남북 간첩전쟁’ 취재팀에게 이렇게 증언했다.

공작 임무를 부여 받을 당시 공작부서에서 북악산과 백암산의 실명 등 인적 사항과 활동 내용이 기록된 인물파일을 가져다 줘 그들의 실체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공작대호는 포섭 대상 또는 공작원·공작조의 이름이나 조직 명칭을 대신해 보안 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암호명, 즉 코드 네임이다. 북한은 ‘북악산’ ‘성남천’ 등 산과 강 이름을 자주 붙인다. ‘광명성’ ‘봉화1호’처럼 상징적인 명칭을 쓰기도 한다. ‘운동권’이란 표현은 당시 북한 대남공작부에서 사용하는 용어였다

김동식 공작조는 전술안, 즉 액션 플랜 짜기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북악산과 백암산의 정체는 이 기사 뒷부분에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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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씨가 2월 말 서울 중구 중앙일보 사무실에서 남파 공작원 시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상 기자

김동식씨가 2월 말 서울 중구 중앙일보 사무실에서 남파 공작원 시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상 기자

작은 빈틈에 자칫 목숨이 날아갈 수 있다. 침투 시 직면할 각종 돌발 상황에 대비한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대응책을 반복해 실습했다. 신분 위장, 침투, 접선, 포섭, 지하당 건설, 무전 통신 등 공작 활동에 요구되는 필수사항부터 신분 노출 시 행동, 현지 물가를 고려한 하루 생활비 등 세세한 항목까지 챙겼다.

공작조가 세운 액션 플랜은 담당 지도원→과장→부부장 라인에서 단계별로 치열한 토론과 합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완성됐다. 손글씨로 쓴 액션 플랜은 300여 쪽에 달했다.

장비가 지급됐다. 침투 복장, 총과 실탄, 수류탄, 공작금, 위조 신분증 등을 고무풍선에 하나씩 넣어 방수 포장을 마쳤다. 남파 D-Day만 남았다.

침투 장기화와 성적 욕구의 충돌  

액션 플랜에 담기는 사항 중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여자 문제, 즉 성욕을 어떻게 자율적으로 통제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