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수주대토(守株待兎)와 한비(韓非)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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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대토

수주대토

우선 4개 한자의 우리말 발음과 뜻을 살펴보자. 수(守)는 ‘지키다’, 주(株)는 ‘그루터기’다. 대(待)는 ‘기다리다’, 토(兎)는 ‘토끼’다.

농부가 하루는 자신의 밭 안에 있는 그루터기에 토끼 한 마리가 큰 소리를 내며 부딪히고 튕겨 나가는 장면을 목격한다. 기록 경신을 추구하는 달리기 선수처럼 빠르게 밭을 가로지르던 토끼였다. 다가가서 보니 목이 부러져 즉사한 상태였다. 이후 그는 농사일을 팽개치고 이 그루터기 근처에 매복하며 다른 토끼를 기다린다. 확률에 대한 센스와 상식이 결여된 행위였다. 결국 소문이 퍼지고 나라 전체의 웃음거리 신세가 되고 만다.

이번 사자성어는 수주대토(守株待兎)다. 앞 두 글자 ‘수주’는 ‘그루터기를 지키다’라는 뜻이다. ‘대토’는 ‘토끼를 기다리다’라는 뜻이다. 이 둘을 결합하면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가 오길 기다린다’는 의미가 된다. ‘수주대토’는 춘추전국시대 송(宋)나라 농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고사에서 유래했다. ‘여기가 칼 빠뜨린 곳이라며, 타고 가던 배에 표식을 새긴다’라는 의미의 ‘각주구검(刻舟求劍)’과 쓰임에서 서로 통한다. 둘 다 주인공의 ‘어리석음’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줄거리의 핵심이다.

한비(韓非)가 저술한 ‘한비자(韓非子)’에 이 ‘수주대토’ 고사가 나온다. 그는 요순(堯舜)시대 등 먼 과거의 이상적인 정치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이 고사를 활용했다. 그는 ‘가뭄에 콩 나듯’ 드문 명군(明君)의 출현을 기다리는 것은 ‘수주대토’하는 농부처럼 어리석다고 여겼다. 명문화된 법률과 제도를 확립하고 그대로 집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한비가 평균 수준의 군주를 염두에 두고 ‘통치권 강화 매뉴얼’도 함께 제시한 이유다.

한비는 한(韓)나라의 공자로 태어났기에 일찌감치 궁정의 이런저런 내막이나 위선 사례를 가까이서 목격했다. 군주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 군주라 할지라도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조언이라면 극도로 꺼린다고 그는 기록했다. 자신보다 높은 지위를 가진 이에게 다가가 유세할 때 실패하는 경우는 대부분 이 핵심을 놓치기 때문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한비자의 ‘세난(說難)’편에 여러 예시가 나온다.

그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나는 한비가 ‘세난’편을 저술하고도 정작 자신은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유독 마음 아프다.” 사마천은 이렇게 그를 애도했다. 한비가 친구로 믿었던 동창생 이사(李斯)의 질투로 인해 진(秦)나라 옥에 갇히고 독살되는 최후를 맞았기 때문이다.

한비는 훗날 한(韓)·조(趙)·위(魏)·초(楚)·연(燕)·제(齊)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 영정과 동시대 인물이다. 영정이 하루는 우연히 ‘고분(孤憤)’편과 ‘오두(五蠹)’편의 일부를 읽고 저자 한비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이윽고 한비는 진나라를 방문하고 영정을 만나 유세를 한다. 하지만 등용되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시야를 조금 확대해볼 필요가 있다. 영정이 이끄는 진나라의 통일 의지는 쉽게 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야망을 숨기지도 않았다. 진나라 전체가 살기(殺氣)를 내뿜었고 결기로 가득했다. 이런 분위기였기에 ‘한나라 공자가 어찌 적국 진나라를 위한 계책을 내겠는가. 그건 불가능하다’라는 이사와 요고(姚賈)의 이간질이 영정에게도 쉽게 통했다.

한비는 ‘적국 인재를 살려두면 후환이 생긴다’는 이사의 독하고 비정한 논리에 따라 진나라 감옥에서 독을 마셔야만 했다. 그의 나이 불과 47세였다. 이 한비의 최후에서 알 수 있듯 당시 진나라를 잠재적으로 위협할만한 적국 인재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진나라에 등용된다, 제거당한다, 철저히 은둔한다’. 이 세 갈래 길뿐이었다. 영정의 진나라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나머지 6국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한 것은 ‘수주대토’나 우연이 아니었다.

한비는 자신의 애독자(愛讀者) 영정과 시기심 많은 이사에 의해 안타까운 최후를 맞았다.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희생됐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유명한 법가였다. 먼 과거의 비극이지만 오늘날에도 법(法)의 양면성엔 늘 주의가 필요함을 각성하게 한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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