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준호의 직격인터뷰

“뉴 스페이스, 삼성·현대차 같은 대기업도 참여 기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윤영빈 초대 우주항공청장 내정자

최준호 과학전문기자, 논설위원

최준호 과학전문기자, 논설위원

판이 바뀌고 있다. 최근 들어 인공지능(AI)이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있는 것처럼, 우주 또한 그럴 기세다. 우주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우주의 기원 같은 순수과학 탐구나 국력 과시 대상을 넘어서 첨단 미래산업을 일으키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의 도래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달 13일 경남 사천에서 열린 대한민국 우주산업 클러스터 출범 행사에 참석해 “세계가 치열한 우주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우주에 국가의 미래,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기 때문”이라며 “머지않은 미래에는 우주 경제를 선도하는 우주 강국이 세계를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경제의 규모는 2040년 2조7000억 달러(약 3363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 성장 동력 우주서 찾아야
정부·민간 역할 분담 재정립
한국판 스페이스X 키워낼 것

달탐사 기획, NASA와 역할 협의
우주인 배출·재사용발사체 등
대표 프로젝트 조만간 발표 예정

오는 27일 말 많고 탈 많았던 대한민국 우주항공청(KASA·Korea AeroSpace Administration)이 출범한다. 초대 우주항공청의 수장은 윤영빈(61)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다. ‘대한민국 초대 우주항공청장’이란 타이틀 속 ‘초대’라는 상징의 무게는 무겁다. 뉴 스페이스 시대 한국의 우주 정책을 이끌 조직을 누가 어떤 철학으로 구성하느냐에 따라 한국 우주 산업과 연구의 방향성과 경쟁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연구·개발(R&D) 불모지였던 1960년대 과학기술 발전과 산업화의 초석을 놓는다는 신념과 강단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7년간 이끈 최형섭(1920~2004) 초대 원장의 역할이 떠올랐다.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사무실에서 아직은 우주항공청장 내정자 신분인 김 교수를 만났다. 부담감 때문일까. 안질환 후유증으로 인터뷰를 이틀 미뤄 잡은 날이었다.

우주 추진체 분야 대표 연구자

윤영빈 우주항공청 초대 청장 내정자는 국내 우주 추진체 연구분야에서 대표 연구자다. 서울대에서 차세대우주추진연구센터의 센터장 등을 맡으면서 첨단 액체로켓엔진에 대해 연구하고 제자들을 길러냈다. 김성룡 기자

윤영빈 우주항공청 초대 청장 내정자는 국내 우주 추진체 연구분야에서 대표 연구자다. 서울대에서 차세대우주추진연구센터의 센터장 등을 맡으면서 첨단 액체로켓엔진에 대해 연구하고 제자들을 길러냈다. 김성룡 기자

언제 어떻게 우주항공청장 제의를 받았나.
“3월 중순쯤 대통령실로부터 우주항공청장 제의를 받았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자리라 놀랐다. 게다가 초대 청장은 해야 할 일도 많고 과중한 자리라, 나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 고사했다. ‘그래도 꼭 한 번 생각해달라’고 거듭 요청하기에, 고민하다 ‘국가의 부름’이라 생각하고 응했다. 이후에 여러 청장 후보 중 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잊고 지냈는데, 내정자 공식 발표 나흘 전에 최종 통보를 받았다. 면접은 따로 없었지만, 대통령실에서 저에 대해 주변 지인들에게 많이 물어본 것으로 안다.”

윤 청장 내정자는 우주 추진체 분야의 우리나라 대표 연구자로 평가받는다. 미국 미시간대 항공우주공학과에서 음속의 6~7배에 달하는 스크램제트(Scramjet) 엔진의 초음속 연소현상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에는 국가지정연구실사업(NRL)에 선정돼 액체로켓엔진의 분사기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 선정 공학연구센터(ERC)인 서울대 차세대우주추진연구센터의 센터장을 맡으면서 저비용·고효율 액체로켓엔진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

우주항공청 설립 의의가 무엇인가.
“우주 분야는 기존의 기술적 영역을 넘어서 이제는 경제와 안보 분야 등으로 그 영역이 확대되고 중요도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각 국가들의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우주 경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 산업 분야다. 우주항공청 설립은 단순히 하나의 정부조직 신설이 아닌, 미래의 성장동력을 우주에서 찾고자 하는 취지다.”
지난16일 오후 경남 창원 의창구 경남도청 외벽에 우주항공청 개청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우주항공청은 경남 사천시 사남면 사천 제2일반산업단지에 위치한 아론비행선박산업 사옥에서 오는 27일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뉴스1]

지난16일 오후 경남 창원 의창구 경남도청 외벽에 우주항공청 개청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우주항공청은 경남 사천시 사남면 사천 제2일반산업단지에 위치한 아론비행선박산업 사옥에서 오는 27일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뉴스1]

세계 5대 우주항공 강국 도약

우주항공 정책의 기본방향을 말한다면.
“기본 방향의 목표는 G5, 즉 세계 5대 우주항공 강국 도약이다. 이를 위해 우주항공청은 기존의 정부주도 사업 방식에서 벗어나 민간과의 역할 분담을 재정립하고자 한다. 정부가 소유한 우주기술을 민간으로 이전해 민간이 상용 우주개발을 주도하고, 정부 출연연구기관과 대학은 고위험·장기 미래우주 개발사업에 집중하는 형태가 되도록 지원하는 것이 우주항공청의 기본정책 방향이 되어야 한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스페이스X의 팔콘9을 키워낸 것처럼, 우리도 여러 가지 국가 우주사업을 통해 민간 우주기업들이 성장할 기회를 만들겠다.”
개청과 함께 획기적인 프로젝트를 발표한다는 얘기가 돈다.
“우주항공청의 비전과 핵심 임무를 발굴하기 위해 산학연 전문가로 구성된 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현재 마무리 논의를 한창 진행 중에 있다. 라그랑주 포인트 탐사나 재사용 발사체 개발, 우주인 배출 등도 대표 프로젝트로 고민할 수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조만간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거다.”

(라그랑주 포인트는 흔히 태양과 지구의 중력이 균형을 이루는 곳을 말한다. 중력 균형 덕에 인공위성 등이 안정된 위치에 머무를 수 있고, 연료도 절약할 수 있다. 인류 최대 망원경으로 평가받는 제임스웹우주망원경(JWST)이 지구에서 150만㎞ 떨어진 라그랑주 포인트 L2 지점에서 활동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열린 대한민국 우주산업 클러스터 출범식에서 출범 기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열린 대한민국 우주산업 클러스터 출범식에서 출범 기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6위와도 차이 큰 7위의 한국 우주기술

우리나라 현실에 국제 경쟁력을 갖춘 우주산업이 가능할까.
“우리나라는 최초의 달 궤도선 다누리와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3차 발사의 성공으로 자체 우주개발 역량을 갖췄지만, 주요 우주 선도국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기술력과 산업 규모 측면에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7대 우주강국을 자처하고 있지만, 6위인 인도와 기술력 차이도 꽤 크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주개발에는 기본적으로 발사체·위성·발사장 세 요소가 필요한데, 다행히 우리는 이 세 가지를 다 보유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자동차·배터리·인공지능(AI)·바이오 등 다양한 첨단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우리나라의 강점이 우주항공 산업과 융합되고 새로운 시너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확신한다.”
국내에 우주 스타트업은 좀 보이는데, 대기업은 한화 외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뉴 스페이스는 스타트업만으로 안 된다. 개인적으로 삼성과 현대차 같은 대기업들의 참여를 기대한다. 앞으로 10년 후를 예측해보면 우주기술이 지금의 몇 배 이상 발전해 있을 거다. 대기업이 우주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외국 대기업들은 이미 우주에 뛰어들었는데, 우리 대기업이 여기에 투자하지 않으면 미래 먹거리를 찾기 어려울 거라 본다. 기존 산업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도 우주가 연계될 필요가 있다. 지금은 한화가 유일하게 우주발사체와 인공위성 산업에 막 뛰어든 정도다.”
 일본의 달 탐사선을 실은 H2A 우주로켓이 지난해 9월 큐슈 최남단 가고시마현의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EPA=연합뉴스]

일본의 달 탐사선을 실은 H2A 우주로켓이 지난해 9월 큐슈 최남단 가고시마현의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EPA=연합뉴스]

롤모델 일본 JAXA 예산, 한국의 7배

한국이 우주발사체와 인공위성으로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추더라도, 미국의 국제무기거래규정(ITAR)에 따라 우리는 외국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 줄 수 없는데.
“우주항공청이 풀어야 할 아주 중요한 숙제 중 하나다. 우리 우주발사체가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부정적 시각 때문에 미국이 ITAR 문제를 여전히 잡고 있다. 하지만 지난 정부에서 미사일 사거리 문제가 풀린 것처럼 ITAR도 조만간 해결될 거라 생각한다. 현 정부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계속 노력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우주항공청의 현실적 롤모델이 어디인가. NASA는 너무 높이 있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어떤가.
“JAXA 인원이 1500여 명 규모다. 우리 우주항공청(293명)과 산하기관인 항공우주연구원, 천문연구원까지 합치면 규모가 비슷하다. 그간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우주발사체 개발은 물론 우주과학, 소행성 탐사 등에서 국제적인 역량과 지위를 갖고 있다. 이런 장점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다만 JAXA의 예산이 우리보다 7배 이상 많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달 탐사 등 우리의 우주계획이 아르테미스와 같은 국제 프로젝트와 무관한데.
“당연히 우리나라 달 탐사 2단계도 독자적인 탐사가 아닌 아르테미스 협약국의 일원으로서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우주항공청이 NASA와 협의를 통해 역할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나라가 윤석열 대통령과 윤영빈 청장 내정자의 말처럼 ‘G5 우주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KIST와 미국 NASA의 성공에 그 답이 있을지 모른다. KIST는 박정희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과 연구진의 헌신의 합작품이었다. NASA는 공화당 소속의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시작돼 민주당인 케네디 대통령 때 세계 최초 유인 달탐사인 아폴로 계획을 출범시킬 정도로 초당적 지지를 받았다. KIST와 NASA처럼 정쟁에 휘둘리지 않고 국가적 역량을 결집할 수 있어야 우주로 가는 길을 제대로 열 수 있다.

◆윤영빈=1962년생.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학·석사를 마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항공우주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캠퍼스 박사후 연구원을 거쳐 1996년 서울대 교수에 부임됐다. 서울대 차세대우주추진연구센터 센터장과 과기정통부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달 탐사 개발사업의 추진위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