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애·희망의 K문학, 해외에 알리고 싶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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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재 수사는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은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이야기다. 고단한 현실이지만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고 평했다. 전민규 기자

안선재 수사는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은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이야기다. 고단한 현실이지만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고 평했다. 전민규 기자

“박노해의 시집 중 『노동의 새벽』을 해외에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프레스 기계에 잘린 손목을 공장 담벼락에 묻는 노동자, 지문이 닳아 주민등록을 못하는 화공 약품 직원들의 이야기죠. 한국은 이제 잘 사는 나라가 됐지만 여전히 곳곳에 어려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화려한 성장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안선재 수사(修士·82)는 자신이 최근 영어로 번역 출간한 『노동의 새벽』(1984)을 “희망의 문학”이라고 표현했다. “고단한 현실이지만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문학이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면서다.

안 수사는 1942년 영국 콘월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중세 시 문학을 전공했고, 1969년 프랑스 유학 중 ‘떼제 공동체’(가톨릭·개신교·정교회를 아우르는 국제공동체)의 수도자가 됐다. 1970년대 프랑스를 방문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제안으로 1980년 한국 땅을 밟았다. 서강대에서는 영문학과 불어를 가르쳤고, 1994년 한국에 귀화했다.

그가 비참한 노동 현실을 담은 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시집 『노동의 새벽』을 냈을 때 노동운동을 하던 박노해 시인은 ‘얼굴 없는 시인’이었다.

시집 『노동의 새벽』을 냈을 때 노동운동을 하던 박노해 시인은 ‘얼굴 없는 시인’이었다.

“박노해 시인은 특별한 삶을 살았습니다. 노동 운동을 하다 감옥에 갔고 석방된 이후에는 전 세계의 전쟁터를 누비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기록했어요. 그래서 박노해의 시에서는 인류애가 느껴집니다.”

『노동의 새벽』은 박노해(67)의 첫 시집이다. 1984년 당시 27살 청년 노동자였던 박노해는 ‘사랑하는 이는 미싱 바늘처럼 꼭꼭 찍혀 오는 가난에 울며 떠났다’(‘그리움’), ‘올 어린이날 만은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은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공장 담벼락에 묻었다’(‘손 무덤’)고 기록했다.

책은 서슬 퍼런 군부 정권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가 발간되며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안 수사는 한국 정착 10년 차에 번역을 시작했다. “떼제 공동체 수사들은 기부금을 받지 않고 스스로 생계를 해결합니다. 먹고 살아야 하니 연세대 어학당에서 한글을 배웠고, 10년 정도 살다 보니 번역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강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동료 교수를 통해 구상 시인을 소개받았고, 그게 한국 문학과 맺은 인연의 시작이었네요.”

노동의 새벽

노동의 새벽

그렇게 쌓인 세월이 34년. 그간 서정주·신경림·천상병·고은·김지하·정호승의 작품 50여 권을 번역했다.

그는 “한국 영화와 음악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서구의 시선이 과거와 달라졌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한국 문학이 인기가 없다. 그 점이 무척 아쉽다”고 말했다.

양국 문화 교류를 증진한 공을 인정받아 한국에서는 2008년 옥관문화훈장을, 영국에서는 2015년 대영제국훈장을 받았다. 여든이 넘은 나이지만 지난 2월 출간된 박노해 에세이 『눈물꽃 소년』을 3개월 만에 영역할 만큼 왕성히 활동 중이다.

문인들과도 막역한 사이가 됐다. 같은 1월 3일생인 정호승 시인과는 동반 생일잔치를 할 정도다. “5년 전부터 같이 생일잔치를 했어요. 올해는 인사동에서 만났지요. 잔치에 여러 작가가 와 주었습니다. 번역으로 연을 맺은 이금이 작가도 왔고, 소리꾼 장사익 선생도 와 주었죠. 무척 행복했어요.”

한국 이름 ‘안선재’는 직접 지었다. 화엄경에 등장하는 구도자 ‘선재 동자’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란다.

“화엄경의 선재 동자는 만나는 사람마다 스승으로 모시고 지혜와 깨달음을 얻는 나그네입니다. 수도자이면서 여러 나라를 떠돌았던 저와 비슷하잖아요. ‘안선재’라는 이름이 원래 이름 ‘앤소니’와도 비슷하고요. 법무부 담당자가 귀화 이유를 묻길래 ‘한국을 사랑해서’라고 대답했어요. 그렇게 답한 사람은 제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번역은 두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는 일”이라고 말하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천상병의 ‘귀천’이다. 시구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의 반복으로 유명한 시다. 안 수사는 이 시의 제목을 ‘Back to heaven’(천국으로 돌아가다)으로 번역했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쓴 시죠. 시인은 1960년대에 간첩으로 몰려 고문을 당했는데요. 그 이후에도 이런 아름다운 시상(詩想)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이 작품을 더 빛나게 합니다. 박노해 시인의 생애가 그의 작품을 더 빛나게 하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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