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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하현옥의 세계경제전망

미국 피벗 늦어지자…ECB는 내리고 BOJ는 올릴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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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마이웨이 가는 각국 중앙은행

하현옥 논설위원

하현옥 논설위원

각자도생. 올해 각국 중앙은행의 행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40여 년 만에 찾아온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급습에 미 연방준비제도(Fed)를 중심으로 긴축 대오에 합류했던 중앙은행들이 각자의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주요국 통화 정책의 탈동조화(디커플링)를 언급했다.

돈은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흘러간다. 미국이 금리를 올려 특정 국가와의 금리 차가 줄어들거나 역전되면 더 높은 금리를 좇는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해당국의 통화 가치는 하락(환율 상승)한다.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입 물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 돌입했던 각국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일이다. Fed의 통화 정책에 발을 맞춰온 이유다.

스위스·스웨덴 깜짝 금리 인하
영란은행, 이르면 6월 내릴 듯

17년 만에 정책금리 올린 일본
‘수퍼 엔저’로 인상 압력 커져

한국, 인하 시점 원점 재검토
중국, 경기 살리려 통화 완화

미국, ‘끈적한 물가’에 고금리 장기화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상황이 달라진 건 미국 경제가 생각보다 강한 면모를 보이면서다. 고용 시장은 뜨겁고, 물가는 끈적끈적하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임대료 등으로 인해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을 기세다. 올해 1분기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는 전년 대비 3.4% 상승했다. 전 분기(1.8%)보다 상승 폭이 커졌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PCE 물가는 1년 전보다 3.7% 뛰며 시장 전망치(3.4%)를 웃돌았다. 1분기 성장률(1.6%·전 분기 대비 연율)이 전 분기(3.4%)와 시장 전망치(2.4%)를 밑돌며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 우려까지 고개를 들고 있지만, 물가가 안정되지 않으면 금리를 낮추기는 쉽지 않다. Fed의 피벗(Pivot·통화 정책 전환)이 지연되며 고금리와의 동거가 보다 길어질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완고하게 높은 임대료 때문에 Fed가 인플레와의 싸움을 끝내지 못한다”고 지난 12일 보도했다.

피벗을 향한 Fed의 발걸음이 느려지면서 전 세계 통화 정책과 엇박자가 나기 시작했다. Fed가 지난해부터 피벗의 시그널을 보내자 각국 중앙은행은 돌아설 준비 자세를 취해왔다. 게다가 물가와 경기 둔화 수준이 제각각인 탓에 나라마다 경제의 온도 차는 상당하다. 마냥 Fed의 움직임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각국 중앙은행 통화 정책에 균열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NH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2024년은 미국 예외주의를 인정하고 경기 여건이 ‘목에 찬’ 국가들부터 서서히 Fed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지적했다.

유럽, 경기 침체 우려에 속속 금리 인하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주요국 중앙은행 중 피벗의 첫 테이프를 끊은 곳은 스위스 중앙은행이다. 지난 3월 기준금리를 1.75%에서 1.5%로 낮췄다. 지난 2년 반의 인플레이션 싸움이 효과적이었다는 게 인하의 변이다. 지난 8일에는 스웨덴 중앙은행인 릭스방크가 ‘깜짝 인하’에 나섰다. 기준금리를 3.75%로 0.25%포인트 낮췄다. 8년 만의 인하다. 올해 1분기(-0.1%)까지 4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경기 침체에 빠진 만큼, 물가보다는 성장으로 무게 중심을 옮긴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도 다음 달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ECB가 Fed보다 먼저 금리를 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유로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0.7%로 0.1%포인트 상향 조정했지만,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Fed의 피벗을 기다렸다가는 경착륙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영란은행(BOE)도 이르면 다음 달 금리를 낮출 것으로 전망된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도 경기 부양을 위해 인하 카드를 꺼내들 것으로 예상된다.

Fed보다 앞서 금리를 내리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미국과의 금리 차가 확대되며 자본 유출이나 통화 가치가 하락할 수 있어서다. 수입 물가가 오르며 여전히 높은 수준의 물가를 자극할 수 있지만, 경기 침체가 더 두려운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통화 가치 하락을 감수하고도 경기 부양을 택하는 것”이라며 “유럽이 미국과 다른 길을 가려는 의지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일본, 연내 2회 금리 인상 가능성도

ECB와 영란은행은 Fed보다 앞서 발걸음을 뗀 것일 뿐 일단 방향은 같다. 반면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 선택지에는 금리 인상이 놓일 전망이다. Fed와는 정반대 방향이다. 일본은 지난 3월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하며 17년 만에 금리 인상에 나섰다. 하지만 엔화 가치가 급락하며 추가 인상 압력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말 엔화 가치는 달러당 160엔대까지 밀리며 3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 등으로 달러당 155엔 수준에 거래되고 있지만 여전히 위태롭다. ‘수퍼 엔저’의 근본 원인은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BOJ는 일단 수퍼 엔저를 용인하는 분위기다. 엔화 가치를 낮게 유지해 수출 기업의 실적을 개선하고 이를 통해 수익성을 끌어올린 뒤 임금 상승과 그에 따른 소비 회복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포석이다. 엔화 약세로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인플레이션 기대감이 낮아지는 것도 막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관건은 수퍼 엔저를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느냐다.

우에다 가즈오(植田和男) BOJ 총재는 지난 8일 “만일 물가 전망이 상승하거나 상승 위험이 커졌을 경우 금리를 보다 빨리 조정해 나가는 것이 적절해진다”고 말했다. 엔저로 물가가 예상보다 더 뛰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시장은 연내 2회 정도의 금리 인상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일본 재무성 차관보 출신인 이토 다카토시 컬럼비아대 교수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엔화 약세가 지속하고 물가 상승률이 크게 높아질 경우 BOJ가 올해 말까지 금리를 0.5%까지 두 번 올릴 수도 있다”며 “빠르면 올해 가을쯤 추가 인상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미국과 일본의 통화 정책은 아시아 각국의 중앙은행에는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미국 달러 강세 속 엔화 가치가 바닥을 향해 가면서 아시아 국가의 통화 가치 절하 압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통화 가치 하락 폭이 확대될수록 한국 등 아시아 국가의 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될 위험도 커진다”고 지적했다. 금리 인하가 통화 가치 하락에 기름을 부을 수 있는 만큼, 완화적 통화 정책으로의 전환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통화 정책 ‘왝더독’ 현상 나타날까

당장 한국의 계산도 복잡해지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 2일 금리 인하 시점을 사실상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미국의 피벗이 지연되는 데다, 1분기 ‘깜짝 성장’과 국제 유가·환율 변동성 확대 등 통화 정책의 전제로 삼을 수 있는 모든 기준이 바뀐 것을 이유로 꼽았다. 미국과의 금리가 역전된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에 나서 격차를 더 벌리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 시장의 분석이다. 대출 규제와 고금리가 지속하며 가계 부채 증가세가 둔화한 것도 한은이 속도 조절을 할 수 있는 이유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8.9%로 100% 아래로 떨어졌다.

다만 내수 감소세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는 것은 통화 정책 완화 압력을 키울 수 있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소득 3분위(소득 상위 41~60%)와 4분위(소득 상위 21~40%) 가구의 건전성은 악화하는 모습이다. 3분위 적자 가구 비율은 2022년 18.0%에서 지난해 19.2%로, 같은 기간 4분위 적자 가구 비율은 13.6%에서 14.5%로 높아졌다. 주택 구매를 위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에 나섰던 중산층이 고금리 장기화 속에 지갑이 얇아지면서 소비 여력이 더 떨어질 수 있고, 이는 경기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은 통화 완화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GDP의 20%가량을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해 내수 위축이 이어지는 만큼 소비 심리 개선을 위해 돈을 풀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가 1조 위안(약 189조원) 규모의 초장기채를 발행할 예정인 데다, 중국인민은행(PBOC)이 2분기에 기준금리 격인 대출우대금리(LPR)를 인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각국 중앙은행이 마이웨이에 나서며 뚜렷해지는 통화 정책 탈동조화 현상은 결국 Fed의 움직임에 따라 그 강도가 달라질 전망이다. 물가 목표치(2%)를 향한 싸움에서 ‘라스트 마일(Last mile·목표 지점에 이르기 전 마지막 구간)’이 얼마나 울퉁불퉁할지 알 수 없지만, 시장은 Fed가 연내 2회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흥국과 유럽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미국의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왝더독(Wag the dog·꼬리가 몸통을 흔든다)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공개될 점도표에서 내년과 내후년 인하 횟수가 유의미하게 변화하지 않을 경우 다음 달 ECB 인하 시행과 함께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가 금융 시장을 리드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