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족으로 태어나 평민으로 산 일본인, '죄책감' 말하는 이유[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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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황족이 본 전쟁
쿠니 쿠니아키 지음

박선술ㆍ세야마 미도리 옮김
고요아침

일본에서 천황으로 불리는 일왕은 일본인에겐 지금도 신비와 경외의 대상이다. 일본인조차 일왕에 대해선 자세히 알지 못한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뒤 연합국총사령부(GHQ)가 일본에 들어서자 당시 쇼와천황은 자신이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의 신’이 아님을 밝히는 인간선언을 했다. 하지만 일왕은 지금도 일본의 상징적 존재이자 일본인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다. 그만큼 일왕이나 그의 친척인 황족에 대해선 공공연하게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저자는 1926년 천황 집안에서 태어났다. 고종의 일곱째 아들 영친왕 이은과 결혼한 일본 황족 출신의 이방자 여사(마사코 여왕)와는 오촌 사이였다. 이은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로 일본 황족이 된 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장성을 지냈다. 저자는 그의 아들 이구와도 황족 교육기관인 가큐슈인을 함께 다니며 절친으로 지냈다.

15세 때 일본해군에 징집됐으나 일본의 패망으로 전쟁 참여를 피했던 그는 GHQ의 황적 박탈 조치로 평민이 된 뒤로 영국과 칠레에서 일본 해운회사의 주재원으로 일했다. 은퇴 후에는 황족 출신이라는 인연을 계기로 일본의 전통 종교인 신도 건축양식의 정수로 꼽히는 이세(伊勢) 신궁의 대궁사를 지냈다. 그의 희귀한 인생역정을 책으로 남기게 된 계기는 국제로터리의 일본 지역 거버너(회장)가 되면서다. 베일에 가려졌던 황족의 얘기를 기록으로 남기자는 권유를 거듭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제로터리 회장을 지낸 이동건 부방 회장과 교류하면서 한국어판도 나오게 됐다.

그는 황족으로서 전쟁을 막지 못한 데 대한 회한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도쿄재판에서 논의가 부족했던 세 가지 포인트를 꼽았다. 천황의 책임이 부각됐지만 A급 전범들이 개전을 실질적으로 최종 결정했다는 점이 첫째다. 둘째는 원자폭탄을 떨어뜨려 민간인을 살상한 것은 미국의 인도적 범죄라는 점이다. 셋째는 식민 지배에 대한 죄책감을 꼽았다. 일본과 한국은 처음부터 제3자의 객관적인 조사체제를 구성해 합리적 배상을 하고 발전적 상호관계를 구축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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