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자료삭제’ 산업부 공무원들 무죄 확정…“감사방해 아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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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월성원전 관련 자료를 삭제해 감사원의 감사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산업통상자원부 전 공무원들에 대해 9일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했다. 감사원은 “만약 이번 사건에서 감사 방해가 인정되지 않으면 감사원 감사가 무력화된다”며 유죄 판단을 촉구해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애초에 적법 절차에 따른 자료 요구로 볼 수 없으므로 이를 방해했다는 혐의 역시 인정될 수 없다’는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9일 감사원법 위반,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방실침입 등 혐의로 기소된 전 산업부 국장 A씨와 과장 B씨, 서기관 C씨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A씨 등의 공소사실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고 무뵈를 선고한 원심 판결에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10월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 대한 감사를 벌였으나 감사보고서가 감사위원회 심의 통과를 하지 못했다. 그러자 2020년 재감사를 진행해 같은 해 10월 “2018년 6월 월성원전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서 경제성이 지나치게 낮게 평가됐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유병호 감사위원이 당시 공공기관감사 국장으로 재감사를 지휘했다. 감사원은 7000쪽 분량의 수사자료와 산업부 공무원들이 삭제한 자료를 포렌식 해 복구한 것을 검찰에 전달했다.

이후 12월 검찰은 A·B씨를 감사원의 자료 제출 요구 직전인 2019년 11월께 월성원전 관련 자료 삭제를 지시하거나 이를 묵인·방조한 혐의로, C씨는 2019년 12월 1일 밤 11시께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사무실에 들어가 월성원전 관련 자료 530건을 지운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화면 캡처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화면 캡처

1심에서는 감사원법 위반, 공용전자기록 손상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세 사람 모두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 됐다. 세 사람은 1심 선고 이후인 작년 6월 해임됐다.

반면 지난 1월 2심 법원은 전부 무죄로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자료는 담당 공무원이 개별적으로 보관한 내용으로 공용전자기록 손상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공공기록물에 해당하는 중요 문서는 문서관리 등록 시스템에 등록돼 있고, 상당수 파일은 다른 공무원의 컴퓨터에도 저장돼 있어 손상죄 객체가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감사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법령에서 정한 절차에 따른 감사 활동으로 보기 어렵고, 디지털 포렌식 또한 적법하게 실시되지 않은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며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C씨에게 자료제출을 요구한 것은 실지감사 통보 등 법 절차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임의적 요구’였기에 응하지 않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을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감사원이 ‘필요한 최소한도’를 넘어서 디지털 포렌식을 실시하며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았다고 봤다.

▶감사원법 제51조(감사방해죄)가 규정하는 ‘감사원법에 따른 감사’란 감사원이 행하는 모든 감사 전반이 아니라. 적법 절차를 따라 이뤄진 감사만을 의미하며 ▶월성원전 1호기 감사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감사’라고 볼 수 없으므로 ‘감사 방해’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감사원은 2020년 10월 20일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 타당성'감사 결론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감사원은 2020년 10월 20일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 타당성'감사 결론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이에 반발한 감사원은 3월 말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3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해달라”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감사원은 “감사 방해 처벌 조항은 강제 조사권이 없는 감사원이 실효성 있는 감사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그리고 최소한의 장치”라며 “이번 사건에서 감사 방해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특히 권력자의 지시로 법과 원칙에 맞지 않는 행위를 한 경우일수록 관련자들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삭제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감사원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감사원은 감사원법 및 관련 내규, 감사 관행 등을 고려할 때 판결 내용을 납득하기 어려우나,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로 감사원을 겨냥한 야권 공세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배수진 조국혁신당 대변인은 이날 선고 직후 논평에서 “감사원의 감사가 ‘정치질’에 불과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며 “정치감사의 주모자 유병호 감사위원은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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