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권까지 휘두르겠다는 이재명의 거야…위헌 논란 불붙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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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이 행사할 수 있는 입법권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4·10 총선에서 171석을 거머쥔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공식석상에서 ‘처분적 법률’을 강조하자 정치권은 물론 헌법학계도 그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찬대 원내대표는 7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전국민 대상 25만원 지원금에 대해 “(정부에서) 거부됐을 때 당 정책위원회 등에서 처분적 법률 효과를 통해서 법안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날 동아일보 인터뷰에서도 “제일 좋은 방법은 협의를 통해서 추경(추가경정예산안)을 하는 것이지만, 윤석열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하면 입법부로서 처분적 법률의 효과를 통해 할 수 있는지도 당연히 검토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의 발언이 끝나자 웃고 있다. 강정현 기자 / 240508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의 발언이 끝나자 웃고 있다. 강정현 기자 / 240508

‘처분적 법률’이란 행정부의 집행이나 사법부의 재판 없이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권리나 의무를 발생시키는 법률을 뜻한다. 국회가 정부를 거치지 않고 법률로써 행정 권한을 행사하는 일종의 우회로인데, 그간 처분적 법률은 특정 사람이나 사건에만 적용해 왔다. ‘전두환 은닉재산 추징법’이나 특정인을 겨냥한 특검법 등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에선 법률가 출신인 이재명 대표가 처음 이 용어를 꺼냈다. 이 대표는 지난달 17일 열린 당 긴급경제상황점검회의에서 “신용사면 이런 건 정부가 안 하니, 입법으로 해도 될 것 같다”며 “이 정부는 완전히 마이동풍이고 앞으로도 그럴(야당과 협의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에 처분적 법률 형태를 통해서라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실질적 조치를 하도록 방안을 찾아달라”고 당부했다.

민주당 정책위는 최근 민생회복지원금 이외 이 대표가 언급한 신용사면, 횡재세 등을 처분적 법률 형태로 입법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정책위 관계자는 “사전적인 의미의 처분적 법률이라기보다는 국회가 법을 만들어서 정부로 하여금 그 법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정부ㆍ여당과 제대로 협의가 안 되니 이런 것을 검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8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행정부가 실질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고 집행을 해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는다면, 행정부가 못하는 부분을 입법부가 보완해야 되고 필요하다면 견제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4. 4.29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겨레 윤운식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4. 4.29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겨레 윤운식

민주당이 처분적 법률을 고려하는 배경엔 22대 총선 압승이 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총선 민심은 입법부가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8일 국회의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중진들도 같은 의지를 드러냈다. 추미애 당선인은 “국민의 미래먹거리와 민생 관련 입법은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이 대표가 제안한 신용사면 등 처분적 법률 입법도 지원하겠다”고 했고, 정성호 의원도 “국회 본회의, 상임위, 특위 등을 통해 민생과 안보 등 정책 형성과정부터 점검하고 개입해 국정을 견인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처분적 법률에는 위헌 논란이 따라붙는다. 대한민국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40조),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66조 4항),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101조 1항) 등 삼권분립을 규정하고 있는데, 처분적 법률이 이런 헌법 규정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있어서다. 민주당 지도부는 “법을 만들더라도 예산 편성권 등은 정부에 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조계는 ▶삼권분립 원칙 ▶평등의 원칙 측면에서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다.

당장 민주당이 입법을 공언한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해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구체적인 상황을 보고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건 행정부의 역할인데 법률로써 반드시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건 권한 침해”라고 했다.

신용사면이나 횡재세 부과를 놓고선 “범위와 기준이 명확지 않아 평등의 원칙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처분적 법률은 대상이 정확하게 특정돼야 한다”며 “신용사면이나 횡재세의 경우 이유와 대상의 범위가 명백해야 하는데, 그 논거를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 교수도 횡재세에 대해 “경기가 좋아져서 혹은 금리가 올라서 일시적으로 정유사 등이 이익을 많이 볼 수 있지만, 반대로 손해를 본다고 해서 국가가 그걸 지원해주지는 않지 않느냐”며 “조세평등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했다.

여권에선 민주당이 실제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등을 입법으로 강제하려 할 경우 “헌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지난달 19일 ”국회가 해야 할 일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이 구분돼있다. 선거에 이겼다고 해서 오랫동안 (이어온) 국정운영의 기본적인 원칙이나 상식을 넘어서는 그런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상황에 따라서 위헌성이 있는 법은 헌재에 제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대통령 권한을 침해하려 든다”는 분석도 있다. 나경원 국민의힘 당선인은 지난 6일 채널A 인터뷰에서 “사실 용산 대통령 따로 있고 여의도 대통령 따로 있는 그런 정국 아닌가”라며 “국회의 권한이 굉장히 강해서 대통령께서 내놓으신 많은 공약을 지금 실현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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