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뒤엎고 민정수석실 부활시킨 尹 “사법 리스크 제가 풀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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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에서 사정·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습니다.”

제20대 대선 닷새 뒤인 2022년 3월 14일, 당선인 신분이던 윤석열 대통령은 인수위 사무실 첫 출근 일성으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공언했다. 그러면서 이유로 “과거 사정 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점을 들었다.

이랬던 윤 대통령이 취임 2년만인 7일 민정수석실 부활을 공식화하면서 신임 민정수석에 김주현 전 법무부 차관을 임명했다. 출범 당시 ‘슬림한 용산’을 표방하며 2실장·5수석 체제로 시작했던 대통령실도 3실장(비서실·국가안보실·정책실)·7수석(정무·홍보·시민사회·경제·사회·과학기술·민정) 체제로 확대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인사브리핑에서 신임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에 임명한 김주현 전 법무차관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인사브리핑에서 신임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에 임명한 김주현 전 법무차관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민정수석실 복원 이유로 효능성을 꼽았다. 윤 대통령은 ‘대선 공약을 뒤집은 것이 아니냐’는 취지의 기자 질문에 “사실 정치를 시작하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민정수석실을 설치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며 “그 기조를 지금까지 유지해 왔는데 민심 청취 기능이 너무 취약했다”고 답했다. 이어 “모든 정권에서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것인데, 민정 업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저도 고심을 했고 복원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백성의 뜻·마음을 살핀다’는 뜻의 민정(民情) 업무를 담당하던 수석실 폐지 후 날 것 그대로의 현장 민심을 수집·보고하는 기능이 약화됐다는 의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민심을 제대로 읽고,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윤 대통령의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날 발표한 대통령실 조직개편에선 민정수석실에 기존의 공직기강·법률비서관을 이관하고 민정비서관을 신설하기로 했을 뿐, 사정 기관을 총괄·지휘하는 역할을 어느 수준에서 할지, 인사 검증 기능을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윤 대통령은 ‘(부활하는 민정수석실이) 사정 기관 장악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는 질문에 “국민을 위해서 설치하는 것”이라고만 답했다. 민정수석에 검사 출신을 임명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정보를 다루는 부서는 꼭 법률가가 지휘하면서 법치주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며 “과거 역대 정권에서도 법률가 출신이, 대부분 검사 출신이 민정수석을 맡아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본인의 사법리스크 대응 차원이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선 “사법 리스크가 있다면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저에 대해서 제기되는 게 있다면 제가 설명하고 풀어야지 민정수석이 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 출신인 김주현 신임 민정수석은 서라벌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9년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해 법무부 기조실장과 검찰국장을 거쳐 박근혜 정부 때 법무부 차관과 대검 차장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퇴직해 김앤장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한 인사는 통화에서 “김 수석은 윤 대통령의 서울 법대 2년 후배로 오래전부터 가깝게 지내온 사이”라고 전했다.

김 수석은 인사말을 통해 “각 정책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국민의 불편함이나 문제점 등이 있다면 국정에 잘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앞으로 가감 없이 민심을 청취해서 국정 운영에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수사 정보의 수집 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 정보 내용 등은 이미 공직기강이나 법률비서관실이 운영하고 있었다”며 “민정수석실에서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는 차차 검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 수석은 사법시험 기수로는 윤 대통령보다 다섯 기수 선배다. 여소야대 구도 속 야권이 각종 특검 등을 추진 중인 상황도 김 수석에겐 과제다. 여권 관계자는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한 용산과 검찰조직 간 불화설을 제거해야 하는 책무도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임 민정수석으로 내정한 김주현 전 법무차관을 소개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임 민정수석으로 내정한 김주현 전 법무차관을 소개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여야 반응은 크게 갈렸다. 정희용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번 민정수석실 신설의 모든 초점은 오직 소통”이라며 “오로지 국민을 위해 설치한 것이며, 가감 없이 민심을 청취해 국정 운영에 반영하겠다는 강한 의지”라고 평가했다.

반면 야당은 사정 기관을 장악하려는 의도라고 반발했다. 최민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민정수석을 통해 민심을 청취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민정수석실은 사정 기관 통제와 중앙집권적인 대통령제 강화에 활용돼왔고 이번에도 그렇게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배수진 조국혁신당 대변인은 “이번에 신설된 민정수석은 ‘궁여지책 방탄수석’”이라고 했고, 주이삭 개혁신당 대변인은 “특별감찰관을 임명해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신임 민정비서관에는 이동옥 행정안전부 대변인을, 신임 공직기강비서관에는 검사 출신인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이 내정했다. 특히 지난 4·10 총선에서 경기 용인갑에 출마했었던 이원모 비서관은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이에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총선에서 패배한 검사 출신 복심을 한달만에 재발탁하는 건 결국 검찰 장악력을 높이고 공직사회를 옥죄려는 의도이자, 총선 민의를 거스르는 것”라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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